짱이란 말은 원래 부사로 얼음장이나 굳은 물질 따위가 갑자기 갈라질 때 나는 소리, 또는 그 모양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두머리를 뜻하는 속어로 통용되더니 이제는 일반화되어 스스럼없이 목사를 향해서도 목사님 짱이예요! 라고 성도들이 불러주면 헤벌쩍 좋아라 하는 애칭이 되었으니 참 기가 찰 노릇이다.

사실 알고보면 이 짱이란 말은 학교에서 싸움에 능한 아이들에게 붙인 말이니 싸움 짱을 줄여 짱이라 부른 것인데 이제는 아무나 기분 내키는대로 선생님 짱! 아빠 짱! 하고 남발하니 싸움 짱의 품격이 승격된 것인지 아니면 짱이라 불리운 고상한 분들의 품격이 절하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이나 저나 서거한 노 전 대통령에게도 노짱이란 별칭이 따라 다녔음은 세인들이 잘 아는 일이다. 노짱을 연호한 사람들은 노사모들이 틀림없을 터인데 자신들의 짱을 잃은 슬픔이야 오죽하겠는가 마는 어떻든 짱을 보호하지 못한 자책감으로 한 동안은 불면의 밤을 보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짱의 속성을 알게 된다면 마음속의 짱을 연모함은 어쩔수 없는 노릇이지만 짱에 사로잡혀 자신의 일생을 망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짱의 속성은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란 말이 있듯 한번 짱은 영원한 짱이 되기 원함이 그 제일 가는 특징이다. 이것을 위해서라면 짱은 그 목숨도 불사한다. 에집트의 파라오들은 죽어서라도 이 짱자리를 내놓지 않기 위해서 수십만 아니 수백만의 백성들을 노역에 동원하여 피라미드를 지어 그 미로의 어느 곳에 영면하고 있다. 중국의 진시황도 마찬가지이다. 박정희씨도 그 대권을 내놓기 싫어 유신이니 뭐니 하다가 결국은 타의로 그 짱자리에서 내려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안에서 그 어떤 짱도 영원한 짱이 없었음을 잘 알면서도 한번 짱 맛을 본 자들은 짱의 환상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정치인만이 아니다. 敎權(교회권력)을 드려다 보면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웬 짱들이 그렇게 많은지 마치 투계장의 싸움닭들처럼 푸닥거려 피를 보아야 끝장 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더 가관인 것은 어떤 짱이 이기는 지 관전하는 潛짱(潛龍이 있으니 潛짱도 있을 터이다)들이 수두룩하여 줄행랑 친 짱에게는 리턴매치의 기회도 주지않고 서로 투계장에 들어서려고 아우성이다.

아무튼 대한민국은 짱자리에서 내려온 짱이 평범한 소시민으로 태평가를 부를 자유를 줄 만큼 성숙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는 짱도 그 자리에서 내려오면 자유롭게 헤비타트의 일원으로 가난한 자들의 집을 지어 주기 위해 허리에 연장집을 두르고 망치질을 할 수 있는 멋쟁이가 될 수도 있어야 하고 하다못해 밀짚모자 쓰고 바지 걷어 올려 김 매다가 논두렁에 퍼질러 앉아 새참을 맛있게 먹을 수도 있어야 한다. 짱의 悲劇은 노짱의 희생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