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세대교체, 교회연합, 2세 사역, 부흥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들고 시카고 지역 목회자 40인을 만난다. 이 인터뷰를 통해 시카고 한인교회의 여론을 수렴하고 한인교회의 미래와 나아갈 바를 조명하고자 함이다. 40인 인터뷰는 시카고 교계의 발전을 위한, 가능한 모든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목회자들이 시무하는 교회의 교세, 목회자의 교단적 배경, 목회 연수 등에 관계없는 순으로 게재된다.

서른아홉번째 인터뷰는 시카고 지역의 유일한 한국화교교회인 시카고은혜교회(Chicago Grace Church) 손선지 목사다. 손 목사의 부모는 중국이 공산화 되던 때, 공산주의로부터 피난하다 한국으로 이주했고 한국에서 손 목사를 낳았다. 손 목사는 6-70년대 한국의 폐쇄적인 외국인 관련 규정에 의해 공립학교와 한국 대학을 다니지 못하고 서울의 화교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후, 국립대만대학으로 진학해 대학을 마쳤다. 대만에서 한국인 여성 유학생을 만나 결혼했고 미국으로 이민왔다. 한미암환우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손경미 사모가 바로 그녀다. 미국에서는 10년간 사업을 하다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오클라호마의 바틀스빌에 중국인교회를 개척해 1년 반을 시무하다 털사한인교회로 청빙받아 3년 반동안 시무했다. 오클라호마 시티(Oklahoma City)에서 가장 규모가 있는 중국인교회에서 청빙이 들어 왔으나 시카고 지역의 한국화교들을 위해 부흥회를 인도하다 화교들의 영적 갈급함을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시카고로 와 화교교회를 개척해 현재까지 4년간 목회해 오고 있다. 그는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에서 M.Div.를 마치고 남침례회에서 안수받았으며 현재 캘리포니아의 골든게이트침례신학교에서 D.Min. 과정 중이다. 그는 한국에서 중국인 이민자 2세로서, 미국에서 화교 이민자 1세로서의 경험과 고민을 살려 이민목회에 독특한 비전과 사명을 찾아가고 있으며 현재는 한인교회와 중국인교회의 상호 교류와 협력에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한인목회, 중국인목회, 화교목회를 다 해 보셨는데 어느 것이 더 어렵던가요?

목회를 하는 데에 어느 민족이라고 쉬운 건 없습니다. 다만 각각의 특징은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 문화와 정서를 잘 아는 편입니다. 한국인들은 목회자의 권위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잘 섬깁니다. 대신 그만큼 목회자를 향한 성도들의 기대치도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인 커뮤니티 안에는 교회와 기독교가 문화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설령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교회에 관해서 잘 알고 교회에 대한 큰 반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인 커뮤니티에는 이러한 기독교적 문화 배경이 없습니다. 교회라면 외국인들의 것이고 목사도 일종의 직업처럼 여깁니다. 물론 성직자라고 존중하긴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에 대한 존중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리고 한국은 존댓말이 있기 때문에 사람 간의 갈등을 좀더 자제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존댓말을 쓰다 보면 서로에 대해 말조심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어는 그런 존댓말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갈등이 표출되기가 좀더 쉽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중국인교회에도 한인교회만큼 갈등이 자주 발생되고 표출됩니까?

제가 이곳에서 목회한지 4년 정도 되었는데 아직 이 지역 중국인교회에 그런 갈등은 없었습니다. 중국인들은 교회 안의 일을 교회 안에서 조용하게 잘 처리하는 편입니다. 아직 시끄럽게 싸우거나 분열되는 교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중국인들은 교회에 문제가 생길 때 “싫으면 내가 떠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분열이 극도로 심각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한인교회 성도들이 대부분 한국에서 신앙을 하다가 미국으로 와서 교회를 세웠기 때문에 한인교회는 한국적 특징이 강합니다. 그러나 중국인교회 성도들은 미국에 온 후 신앙을 배우고 교회를 나가기 때문에 한국과는 그 모습이 많이 다를 수 밖에 없고 문제나 갈등의 발발 역시 한인교회와는 양상이 많이 다르다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인들의 교회는 과거 캔토니즈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주로 많은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대만에서 온 중국인들이 이민오면서 만다린과 대만 말을 사용하는 교회도 생겼습니다. 2세들이 태어나면서 교회에서 영어도 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캔토니즈, 만다린, 영어가 중국인교회 안에서 공존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를 청빙할 때도 캔토니즈를 쓰거나 만다린을 쓰는 목회자를 구분합니다. 아직 상당히 드물긴 하지만 중국 본토에서 온 중국인을 청빙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한인교회는 한국어권과 영어권 간에 어려움을 종종 빚는다고 하는데 중국인교회에는 3~4개 언어가 있으니 그 어려움이 한인교회 못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중국인들은 인내하고 서로를 존중합니다. 가능하면 ‘사고’를 만들지 않고 충돌할 기회를 사전에 예방합니다. 물론 불만이 있으면 표현을 하지만 상당히 조심스러운 방법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갈등이 심화되면 조용히 교회를 떠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갈등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얼굴을 보지 않게 되니 겉으로 볼 때는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한국인처럼 화끈하게 한번 만나서 싸우고 화해하는 일은 없습니다. 중국인들은 문제를 가능한 만들지 않지만 결국 문제가 생길 경우엔 서로를 피해서 갈등을 차단해 버리고 마음에 그 문제를 오래 담아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 이민자 2세 사역에 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2세들의 주류사회 진출과 같은 문제는 어떻게 해 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여러 목사님들의 의견을 들어 보면 ‘2세’라는 개념을 너무 강조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2세라는 단어보다는 ‘이민자’라는 단어 안에 1세와 2세를 함께 넣어 보고 싶습니다. 1세건 2세건 우린 모두 이민자입니다. 다만 한쪽은 영어를 잘 못하고, 또 한쪽은 영어를 잘할 뿐입니다. 우리 2세들이 아무리 영어를 뛰어나게 잘해도 그들이 미국 사회에 나가면 “당신은 아시안이 어떻게 이렇게 영어를 잘하느냐”는 질문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미국사회에서 한인 2세들은 영어를 잘하는 이민자로 대우 받습니다.

이것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입니다. 저는 화교입니다. 한국사회가 외국인에 상당히 폐쇄적이던 때에 한국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녔습니다. 부모님은 1세 이민자였고 저는 한국에서 태어난 2세였습니다. 한국말도 잘하고 한국인처럼 살더라도 신분 자체가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집도, 땅도 살 수 없었고 대학 입학도, 취직도 아주 어려웠습니다. 중국인과 한국인의 외모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 살았고 한국말 공부도 열심히 했으니 한국인과 똑같은 억양으로 말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외국인일 뿐이고 어렵사리 취직을 하더라도 몇 달만 지나면 동료들은 그가 화교임을 알게 됩니다. 문화 때문입니다. 다른 건 다 숨겨도 중국인 가정의 문화에서 자란 것은 감출 수 없습니다. 그처럼 우리 2세들이 미국 시민권을 갖고 미국인처럼 영어를 잘하고 공부도 잘해도 그들이 자랄 때 받은 한국문화의 영향과 동양적 외모는 그들을 이민자로 대우 받게 합니다.

이 문제를 다시 정리해 보면 2세들이 겪는 이민자적 갈등을 “그것은 너희 문제다”라고 방관해서는 안되고 “그것은 1세들이 겪는 문제다”라고 축소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1세와 2세가 하나되어 해결해 가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1세와 2세가 서로의 마음을 열고 한 뜻 안에서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이민자로서의 거친 삶을 승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목사님은 한국에서 이민자로 태어나서 이민자로 살다가 미국으로 또 이민와 이민자로 살고 있는 독특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고충이 심하셨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아마 제가 한국화교라서 그럴 것입니다. 말레이시아 화교나 인도네시아 화교는 그 땅에서 태어나면 그 나라 국적을 주기 때문에 좀더 삶이 자유롭지만 한국은 국적은 커녕 공립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한국에 살 때는 사람들이 저를 중국인이라고 하고 대학을 대만에서 다녔는데 그 곳에서는 ‘한국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말 그대로 여기서도 차이고 저기서도 차였습니다.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오니 여기서도 이민자입니다. 그러나 한국이나 대만에서 겪은 것보다는 그 어려움이 적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화교들은 저처럼 긴장 속에서 삶을 살아 오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에 적응하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다만 감사한 것은 이 땅에서는 제가 누구인지 모르고 살아 가지만 하나님은 저를 당신의 자녀로 받아 주시고 품어 주신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 화교들에게는 복음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찾아 주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한국화교로 살아가는 사람이 이 지역에 2백여명이 있고 저는 그들을 선교 대상으로 보고 교회를 개척해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화교 선교를 제 소명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2006년부터 미주 한국화교들을 대상으로 순회 부흥회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화교 사회는 닫힌 곳입니다. 한국에서도 차별로 인해 닫힌 삶을 살 수 밖에 없었고 오직 돈을 버는 것 외에는 여가도 여유도 즐길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미국에 와서도 한국에서 당한 차별에 상처를 입어 한국에서 그러했듯이 돈 버는 일만 합니다. 누군가 뚫고 들어갈 수도 없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뚫고 나올 수도 없는 단단한 벽이 있는 상처입은 존재가 한국화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국화교 출신인 제가 선교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이들에게 전략적으로 다가가 복음을 전할 것인가 고민하다 저는 7-80년대 한국교회에 부흥을 일으켰던 부흥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좀 시대가 지난 방법 같지만 아직 한국화교들에겐 가장 효율적이란 판단을 했습니다. 2006년에는 남가주에서, 2007년에는 아틀란타에서, 2008년에는 시카고에서 했고, 올해는 샌프란시스코에서 7월 4일과 5일에 합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해 1년 반 전부터 한달에 한번씩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해 그 지역의 한국화교들을 모으고 행사 준비를 해 가고 있습니다. 참 고된 사역이지만 주님께서 강렬히 저에게 이 일을 명령하셨기에 힘들어도, 지쳐도 순종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국화교 사역에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고 계시는군요.

네. 저는 바틀스빌에서 중국인 목회를 하다가 당시 교회가 양분된 한인교회로 청빙을 받았습니다. 분열돼 나온 쪽은 목회자를 청빙하지 못해 너무 큰 영적 고통을 겪고 있었고 목회자가 구해지지 않자 중국인이지만 한국어를 하는 저라도 붙잡은 것입니다. 그곳에서 목회하다 저는 교회에 “나는 중국인이므로 중국인에게 결국 돌아가야 합니다. 교회는 목회자를 찾으십시오. 저는 목회지를 찾겠습니다”라고 공포했습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사임하면서 떠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교회와 제가 동시에 시작해서 교회가 새로운 목회자를 찾는 데에 1년이 걸렸고 저 역시 새로운 목회지를 찾는 데에 1년이 걸렸습니다. 그때 저는 그 지역에서 제일 규모가 큰 중국인 교회에서 청빙이 들어 왔습니다. 안정적으로 목회를 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그즈음 우연히 시카고 지역의 한국화교들이 부흥회를 해 달라는 요청을 해 왔고 저는 부흥회를 은혜 가운데 인도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시카고에는 한국화교교회가 없었고 목회자도 없었습니다. 이제 부흥회가 끝나고 돌아오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데 차 안에서 저를 배웅하던 한 한국화교가 “목사님. 저희는 이제 어쩌죠”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며칠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로 주님의 뜻을 구했고 한국화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제 소명이라 믿고 시카고로 와서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시카고 지역 중국인교회와 한인교회의 교류에 물꼬를 트고 계시지요?

작년부터 이 일을 해 왔는데 사실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교회가 연합할 수 있는 좋은 주제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인교회 쪽에서는 김광태 목사님을 중심으로 교회협의회가 노력했고 중국인교회 쪽에서는 매달 한번씩 모이는 연합모임에서 이 일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중국인교회 쪽이 조금 수동적이었는데 요즘은 좀더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고 있습니다. 한인교회 쪽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섬겨 주시면 좋은 협력관계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중국인교회와 한인교회의 연합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양 교회가 하나되어야 할 필요성으론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제일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선교입니다. 선교라는 것은 정의가 상당히 폭넓지만 시카고 내에서도 얼마든지 선교가 이뤄질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교회가 전세계 선교에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고 그만큼 많은 선교의 리소스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 속의 선교대국 한국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지역이 바로 중국입니다. 선교 열정이 뜨거운 한국과 그 한국이 가장 중요하게 선교하고자 하는 곳이 중국입니다. 자. 생각해 봅시다. 이 두 나라가 하나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한인교회와 중국인교회입니다. 한인교회와 중국인교회가 하나되어 중국 선교의 비전을 나누고 선교 자원과 경험, 지식을 공유해 가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중국 선교는 효율성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중국을 잘 알지 못하고 선교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선교사를 파송해 어느 지역부터 어떻게 선교해 가야 할지 모르고 무작정 들어가면 실패하기 쉽습니다. 중국인교회와 조금만 연구하면 최선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인교회는 이런 일을 통해서 한인교회의 장점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선교에 대한 열심은 물론이거니와 뜨거운 기도 정성과 교회를 향한 헌신은 중국인교회가 한인교회로부터 배우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교류하지 않으면 배울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두 나라 교회가 잘 연합했을 때, 이것을 더욱 폭넓게 확장시키면 미국의 다른 이민교회들과 하나되어 그 이민자들의 모국을 선교하는 데에 한인교회가 더 크게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한인교회와 중국인교회가 좋은 모델을 하나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세계교회 가운데 분명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귀하게 쓰시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주목하는 한국교회가 그 에너지를 좀더 세계를 향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인교회들이 초석을 놓아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보는 한인교회는 바람이 너무 가득 찬 풍선 같습니다. 안에 에너지가 넘쳐서 터지기 직전이고 어디로든지 그 에너지를 발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을 가장 잘 분출할 곳이 바로 선교입니다. 시카고 한인교회들이 이 에너지를 발산시켜 주는 창구 역할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선교하러 너무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바로 중국인교회가 한인교회의 영성을 배우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고 중국교회가 선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연합을 통해서 2세 지도자 양성에 있어서도 많은 자원을 공유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중국인교회에도 영어를 사용하는 2세 목회자가 많습니다. 이들이 한인 2세 목회자들과 교류하고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면 시카고 교계의 지형도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그런데 2세들이 교류하기 위해서는 우리 1세들이 먼저 나서야 합니다. 제가 한국화교 출신이므로 하나님이 제게 한인교회와 중국인교회를 연합시킬 소명을 주셨고 저는 최선을 다해 따르고자 합니다.

-네. 목사님. 오늘 인터뷰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