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총회 참석차 한 주간의 일정으로 시애틀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자 마자 접한 소식이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지내신 분이 자살로 인해 서거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고 가슴이 아파오던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고인의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노 전대통령께서 서거하시고 그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을 조사하여 발표하는 보도들이 줄을 잇는 가운데 제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정치적인 내용이야 저 같은 무지랭이가 알 수 없는 부분입니다만 남기신 말들 중에 “가족들을 비리 가족으로 만들어 너무 너무 미안하고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비리가족’ 한참 뇌물 수수에 대하여 조사를 받던 과정이시니 이런 일, 저런 일 얼마나 많은 기가 막힌 일들을 겪으셨겠습니까? 일국의 대통령을 지내신 분이신데… 그런데 이 말, 저 말 보다 아내가 그 사건에 연루되어 검찰에 조사를 받고, 아들도 미국에서 불려가 조사를 받고, 심지어 딸까지 조사를 받는 실정이었으니 그 마음이야 오직 하셨겠습니까?

요즘 들어 주변에 자살에 대한 이야기들이 분분합니다. 그것이 바르냐 그르냐를 떠나 자살률이 과거 어느 때보다 심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살률을 살펴보면 여성들보다 남성들이 많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아마도 의무감과 책임감에 의한 압박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창세 이후로 하나님은 여자를 남자의 갈비를 취하여 만드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다 보니 남자는 여자를 책임져야 하고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강한 남자가 여러 여자와 종족들을 지배하고 부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강한 남자를 여자들도 선택해 왔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암암리에 현대의 사고 속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요즘 같이 남편들과 남성들에게 도전이 많았던 때도 없습니다. 세월의 흐름에 약해져 가는 심신, 문명의 발전과 발달로 급변하는 사회 속에 적응해야 하는 일들, 가정의 권위 붕괴로 인한 허탈감들, 그뿐입니까 자신의 무력감을 스스로 극복할 수 없도록 방치된 것 같은 신에 대한 오해. 이런 수 많은 요소들이 남편들과 남성들을 인생에 낙오자로 좌절하게 만듭니다.

결국 자신 때문에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힘들어 한다는 자괴감으로 인생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무엇이 쓰러져가는 남편들을 다시 세울 수 있을까요 ? 그것은 바로 곁에 동역자요, 조력자로 세우신 아내들의 몫입니다. 아내는 의무감이나 책임감을 져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일체감을 누리며, 서로 세워야 할 지체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아내를 남편과 분리할 수 없는 하나로 말씀합니다. 세상에서 좌절하고 낙심해도 아내를 만나고, 아내가 있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관계가 부부인데 요즘은 그 ‘아내 때문에 못살겠다, 부담스러워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옵니다.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을 든든이 세우는 일은 아내가 남편을 바로 인식하고 대할 때 가능해 집니다. 아내는 남편을 위하여 식지 않고, 변하지 않는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변함이 없음 같이 남편에 대한 사랑도 그와 같아야 합니다. 또한 신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세상이 다 의심하고 책임을 전가해도 아내는 남편을 믿어주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먹는 남편도 신뢰하고 따른 여인이 등장합니다. 사라입니다. 그녀는 남편 아브라함이 힘있는 왕 앞에 자신을 누이라 속여 위기를 모면하는 모습을 보며 원망하고 욕하지 않습니다. ‘지지리도 못난 인간이라 욕도 할 만 한데 그런 구석이 전혀 없습니다. 끝까지 믿어주었기에 그의 말을 따릅니다. 결국 구원의 손길은 남편을 신뢰한 사라를 향해 하나님이 베푸셨습니다.

남편이 할 수 없는 일은 욕하고 구박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신뢰하고 그의 뜻을 존중하는 아내의 모습을 통해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뿐 아니라 아내는 남편을 이해하고 서로 소통해야 합니다. ‘비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자녀들을 키우다 보면 자녀들이 가장 싫어하고 상처 받는 것이 비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른 집 애들은 안 그런데, 너는 왜 그러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내들도 마찬가지고, 남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비교의식은 남편을 무력하게 만들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조금 부족함이 있어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대화’에서 이루어 집니다. 대화가 서로 공격적이거나 자신의 목표에 동의를 얻어내는 수단으로만 사용된다고 하면 한 쪽은 패배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부간의 대화는 ‘동의’가 아니라 ‘이해’입니다. 서로 틀리고 안 맞아도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둘만의 대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부부간의 대화가 필요에 의한 것으로 바뀌어 갑니다. 자신들의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해를 구하는 대화도 없습니다. 삭막해져 갔습니다. 그러니 남편들은 겉돌게 됩니다. 그러다 조금 자신을 이해해 주는 여자를 만나면 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지 못하면 늘 고개 숙인 남편으로 살다가 인생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들에게 부탁합니다. 남편을 위하는 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몫임을 기억합시다. 수 없이 많은 부담과 책임감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남편들을 사랑으로 끌어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뢰와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고 이해의 통로를 만들어 봅시다. 남편의 성공,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어디서든 자신있는 남자로, 가장으로 되돌아 올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 하나님은 그 가정 속에서 작은 천국을 이루시고, 세상에 흔들림 없는 행복의 동산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