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세대교체, 교회연합, 2세 사역, 부흥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들고 시카고 지역 목회자 40인을 만난다. 이 인터뷰를 통해 시카고 한인교회의 여론을 수렴하고 한인교회의 미래와 나아갈 바를 조명하고자 함이다. 40인 인터뷰는 시카고 교계의 발전을 위한, 가능한 모든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목회자들이 시무하는 교회의 교세, 목회자의 교단적 배경, 목회 연수 등에 관계없는 순으로 게재된다.
서른일곱번째 인터뷰는 시카고 지역의 유일한 한인 성공회인 한마음교회의 주인돈 신부다. 한국 초기 선교기, 타 교단과의 경쟁적 선교를 피하고 한국 전통 문화의 기독교적 승화를 추구했던 성공회가 선교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은 바로 복음이 한번도 전파된 적이 없던 강화도였다. 주 신부는 강화도의 성공회 집안에서 태어나 15세 때 성령체험을 하고 당시 성공회 신부로부터 영적, 인격적 감화를 받고 성직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연세대학교 신학과로 진학해 신학을 공부하고 한국 성공회 산하 사목신학연구원(현 한국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M.Div.를 마치며 신부로 서품받았다. 현재는 에반스톤에 소재한 미국 성공회 산하 신학교인 Seabury Wester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회 회중의 개발과 발전”을 주제로 목회학 박사 과정에 있다.
한국에서는 3년간 서울주교좌대성당에서 보좌사제를 지냈으며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교무국 선교교육원에서 교육 프로그램과 교재 등을 제작하며 3년간 사역했다. 이 기간동안 대한성공회 1백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간사직을 맡기도 했다. 그후 당시 서울교구와 자매결연 관계에 있던 캐나다 토론토교구에서 한인교회를 지원하기 위해 목회자 파송을 요청했고 주 신부가 토론토로 파송돼 이민목회의 길에 접어 들었다. 그곳에서 약 3년간 목회하고 성공회 한마음교회로 청빙받았으며 시카고로 와 현재 12년째 목회 중이다.
-성공회는 개신교임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과 자주 혼동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보통 기독교를 3개 분파로 말하는데 동방정교회, 로마 가톨릭, 개신교 등입니다. 개신교는 또 칼빈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교회와 루터를 중심으로 하는 루터교회, 그리고 성공회로 나뉩니다. 나머지 개신교회는 모두 다 이 세 개신교회에 뿌리를 둡니다. 즉, 성공회는 개신교의 한 분파입니다. 성공회의 특징은 많은 개신교단 중에서도 초대교회의 역사와 전통을 종교개혁 후에도 가장 잘 유지하면서 담보하고 있는 교회라는 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어떤 분들은 성공회가 가톨릭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실제로 성공회 미사가 가톨릭 미사와 형식상 비슷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가톨릭 미사가 성공회 미사와 비슷한 것입니다.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가톨릭은 중세기 스타일의 미사를 고집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미사의 형식을 대대적으로 변화시켰고 그 모델로 삼은 것이 성공회 미사였습니다.
-성찬의 전례나 말씀의 전례에 대한 시각도 타 교단들과 차이가 크지요?
가톨릭 신자에게 왜 교회 가느냐고 물으면 미사 보러 간다, 성체 영하러 간다고 합니다. 성체를 받은 후에는 미사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교회를 떠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성체성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에게 왜 교회 가느냐고 물으면 말씀 들으러 간다, 설교 들으러 간다고 합니다. 말씀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공회는 성찬의 전례와 말씀의 전례를 동일하게 강조합니다. 단순히 설교의 길이만 비교해 보면 가톨릭은 약 10분, 개신교는 약 30-45분, 성공회는 약 15-20분입니다. 성경은 1970년대 가톨릭, 개신교, 성공회가 함께 번역한 공동번역 성서를 사용합니다.
-길이뿐만 아니라 가톨릭의 말씀 강론과 개신교의 말씀 선포는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성공회의 설교는 어떻습니까?
성공회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3가지 근거를 이렇게 제시합니다. 먼저는 성경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전통입니다. 저는 전통이 단순히 역사 속에서 내려 오는 관습이 아니라 역사와 공간을 초월한, 공동체의 축적된 지혜라고 믿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만나고 섬겼던 신앙의 선조들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바로 그 전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신교가 ‘오직 성경’이라고 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세번째는 이성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성을 주셨는데 하나님의 뜻은 이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시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성을 초월하지만 비이성적이거나 몰이성적이진 않습니다. 성경 속의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날 사회와 과학, 정치, 역사, 문화 속에서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찾는 것입니다.
저는 1980년대 초 가톨릭,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감리교 등의 성서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자는 취지로 만든 성서정과(Lectionary)에 따라 설교합니다. 성서정과의 특징은 그리스도 중심이며 그것은 언제나 복음에 초점을 둡니다. 이 성서정과는 구약, 시편, 서신, 복음서에서 네 가지 말씀을 매주일 읽게 되며 3년 주기로 성서 전체를 읽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서정과의 또 다른 특징은 성서의 통시성과 통일성을 잘 구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성서를 통일성있게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으로 보게 됩니다. 현 개신교 설교는 강해 설교 위주로 가다 보니 성서가 갖고 있는 통시적 이해를 놓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성서정과에 따라 설교하다 보면 3년 주기로 같은 성서본문을 만나게 되어 늘 같은 설교를 하게 될 것 같지만 오늘날 교회가 처한 상황이 날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설교 역시 성서의 통시성과 성서의 현장성을 놓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신비성입니다.
-가톨릭이 받아들이는 제2 정경 중, 개신교는 외경이라고 분류해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성공회는 개신교인데 이 외경을 정경으로 사용하고 있지요?
외경을 교리의 근본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삶에 신앙적, 윤리적, 도덕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가르침이라고 이해하고 사용합니다. 이것을 아까 언급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해 주는 ‘전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신교에서 가장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역시 고해성사일 것입니다. 사제가 과연 죄를 사해 줄 권세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성공회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성체성사에 대한 입장도 약간 차이가 있지요?
어반 홈즈 3세라는 성공회 신학자는 “모든 사람이 죄를 고백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이기를 “나의 문제는 죄의 고백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체성사에 관해서도 가톨릭은 “언제 어디서 누가 미사를 집전하건 반드시 살과 피로 변한다”고 가르칩니다. 개신교는 “이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며, 절대로 살과 피로 변할 수 없다”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공회는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 자에게는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며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상징성을 가진다”고 가르칩니다.
-논란이 될만한 내용은 다 피하고 있는 설명이 아닌가요?
성공회 신학의 특징은 열린 포용성입니다. 성공회 자체가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 속에서 이 갈등을 어떻게 통합하느냐, 어떻게 한 신앙으로 살아가느냐는 고민 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공회는 가톨릭의 전통적인 예전들을 대부분 수용하면서 종교개혁의 유산까지 갖고 있습니다. 양 극단을 포용하면서 동시에 양 극단을 배제하는 것이 성공회 신학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모호성을 초래하기도 하고 이 모호성이 성공회 신학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점이기도 합니다.
-성공회는 산하 교회에 갈등이 발생했을 시 어떻게 중재해 나갑니까?
교회에 갈등이 있으면 목회자(관할사제) 또는 교회 평신도 지도자(교회 신자회장)가 주교에게 보고하고 주교는 교구 안의 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중재를 합니다. 성공회는 공동체의 지혜와 전통을 굉장히 중요시 하기 때문에 이 갈등 문제를 놓고 공동체가 끊임없이 대화합니다. 결코 서두르지 않습니다.
-신부님은 시카고 지역에 일고 있는 교회 갈등 문제에 관해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우선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봅니다. 문제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이냐”에 있습니다. 저는 갈등을 겪을 때 3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이 갈등 속에서 나는 계속 기독교 신앙인으로 남을 것인가”입니다. 갈등을 신앙적인 방법으로, 기독교적인 방법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현재 교회에 갈등이 일어나면 대부분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극단적인 원수가 되어 싸웁니다.
둘째, “이 교회 공동체에서 계속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입니다. 교회는 공동체이고 공동체에는 공동체의 룰이 있습니다. 갈등이 생기더라도 룰을 지켜 가면서 해결해 가야 합니다. 그런데 갈등의 당사자들이 많은 경우에 룰을 어깁니다. 이 룰을 어기면 더 이상 그 공동체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을 뿐더러 공동체가 존재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대화의 룰, 교회법, 일반 상식을 지키지 않습니다. 대화를 하지 않고 교회법을 무시하고 일반 상식에 벗어난 방법으로 갈등을 증폭시켜 가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셋째, “이 사람과 더불어 신앙생활, 인간적 관계를 지속해 갈 것인가”입니다. 갈등의 주역들은 상대방이 목사건, 장로건 서로를 사탄, 도무지 상종 못할 자로 몰아 세우며 공격합니다. 갈등을 겪으며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존엄마저 무너뜨리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갈등이 해소될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저는 하버드대학교의 다나 힉스 교수가 인도하는 교회갈등과 화해에 관한 컨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그녀는 국제 분쟁 가운데 갈등을 겪던 당사자들이 오랜 대화와 타협 끝에 최종 중재안을 작성하더라도 마지막 서명을 앞두고 상당히 망설이거나 서명을 하지 않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도대체 왜 타협에 동의하지 않는가?” 고민하고 연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들 안에 서로간에 인격과 존엄성을 무시당한 상처로 인해 화해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상처를 치유하고 그것을 회복함으로 갈등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교회의 모든 갈등의 밑바닥에는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는 폭력성이 공통적으로 있습니다. 교회의 분쟁도 상대방이 가진 최소한의 인격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형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 갑니다. 관계는 곧 책임을 의미합니다. 갈등을 빚고 있는 상대방과 계속 신앙적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스스로 질문하면서 기독교 신앙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할 것이라 봅니다.
제가 교회 갈등 문제를 보면서 발견한 사실 중 하나는, 많은 경우, 목회자들이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 조직을 이해하지 못해 갈등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교회는 조직이고 조직에는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시스템은 역동적인 행동 양식을 갖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학문적으로 Family System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시스템 안에는 소위 행동양식(Pattern of Behavior)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갈등이 이는 교회는 늘 주기적으로 갈등이 생깁니다. 어떤 교회는 3년마다 목회자를 교체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보면 평신도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으며 신앙생활도 잘 하는데 이상하게 목회자는 3년마다 바뀝니다. 그것은 목회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 교회의 시스템 때문입니다. 그 교회의 행동양식의 패턴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스템이란, 교회의 역사 속에서 존재하는, 교회를 음직이는 역동적인 힘, 관계, 존재양식 등입니다. 이런 것들을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해 나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갈등을 점차적으로 해소해 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교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교회는 그 시스템을 바꾸기 전에는 계속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과의 갈등을 반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는 공정한 제3자가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 교회의 갈등을 묻어 두려다가 더 큰 문제로 곪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정한 제3자가 양측의 입장을 듣고 조율해 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합니다. 교회 컨설턴트의 조언을 받는 것입니다. 성공회는 교구 주교를 포함한 전문가들이 갈등 문제에 나서서 해결을 도와 줍니다.
한국인들은 무의식의 원형 속에서 갈등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좁은 땅에서 부족국가, 삼국시대 이후로 지역 간에 싸우는 가운데 갈등의 역사를 살았고 교육 과정 중에도 남을 존중하는 대화와 토론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조차 대화의 훈련과 건전한 시민교육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한국 기독교의 역사나, 한인 이민교회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신앙적으로 성숙한 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교회 구성원들이 사랑과 평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내가 속한 공동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말, 행동이 교회에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책임지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강단에서도 그런 교육이 이뤄져야 하겠습니다. 인간 존엄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면, 상대방을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비난하고 공격해서 갈등을 심화시키는 일이 줄어들 것입니다. 서로의 실패와 실수를 용서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성장하고 발전해 가는 관용의 정신도 자리잡으면 좋겠습니다.
-성공회 신부로서 한인사회에서 목회하시는 데에 어려움은 없으셨습니까?
‘성공회가 개신교회’라는 인식이 아직 한인사회에 낮은 것은 사실입니다. 성공회(聖公會)라는 이름 자체가 “거룩한 보편적(공번된, 公番) 교회”라는 “the Holy Catholic Church”의 줄임말입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이름에 교회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그런 면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민교회가 대부분 한국의 장로교 성도는 이민 후, 장로교회로, 감리교 성도는 감리교회로 가는 현상이 있는데 한국에서도 소수에 속하는 성공회 성도가 시카고로 이민 오는 경우가 상당히 드물기도 합니다.
제 전임자가 미국인 신부였기 때문인 점도 있습니다. 영국 성공회의 영향을 받은 한국 성공회는 파송제이지만 미국 성공회를 포함한 세계 성공회는 대부분 청빙제입니다. 성도들이 2세 교육 문제를 염두에 두고 미국인 백인 여성 신부님을 청빙했고 그분이 12년간 목회하시면서 성공회가 한인교계에 많이 알려질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도 12년간 이 지역에서 목회하면서 목회와 학업 등으로 바빠 사회나 교계에 참여를 많이 못했습니다.
그 백인 신부님이 한국어를 배워 1세 목회를 하시고 영어로 2세들을 가르치면서 2세 목회에 있어서는 상당한 진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한인 2세들이 다 성장해서 대학에 진학하며 타주로 이동하자 교회는 다시 1세 한인 목회자의 필요성을 느끼고 캐나다에 있던 저를 청빙했습니다.
-백인 여성 신부와 한인 남성 신부를 대하는 성도들의 차이는 없었습니까?
백인 신부에 대한 기대와 한인 신부에 대한 기대가 다른 것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백인 신부일 때는 미국교회처럼 교회의 많은 일들을 평신도 중심이 되어 진행했습니다. 백인 신부님이 매년 한달씩 가는 휴가에 관해서도 성도들이 관대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임한 후, 성도들은 교회의 많은 일을 제게 위임하고 의지했으며 제가 1주일 가는 휴가도 제 마음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한인 신부에 대해 한인들이 갖는 한국적 정서가 있을 것입니다. 신부로부터 사랑과 위로를 받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것입니다.
-다른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어떻게 해결해 가셨습니까?
역시 성도들과 느끼는 세대 차이, 그리고 문화차이였습니다. 제가 여기 부임했을 때 34살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가정이 저보다 15년에서 30년 이상 연세가 있는 분들이었고 저보다 나이가 어린 가정은 한 가정 뿐이었습니다. 미국 생활을 오래하신 분들은 어떨 때는 한국적 방식으로, 또 어떨 때는 미국적 방식으로 저에게 목회적 요구를 해 오셨기 때문에 그것을 제가 이해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저도 다른 목회자들이 그러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기도하면서 목회의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특히 시편을 매일 소리내서 읽었습니다. 문제와 갈등 속에 있을 때 매일의 시편은 저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또 주변 사람들과 활발히 대화하고 자문을 구하면서 지혜를 얻어 갔습니다. 특별히 영적인 멘토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조언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 나름대로 취미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소명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취미는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책을 계속 써나갔고 일간지에 일상의 느낌을 기고하면서 저도 많은 점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성공회 크레도(Credo) 컨퍼런스에 7박8일간 참여하며 목회의 소명, 목회자의 영성과 건강, 재정적 문제에 대해 상담받고 훈련받고 교제하면서 큰 위로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볼 때, 교단이 목회자들의 웰빙, 웰니스를 위해 이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끝으로 저의 아내가 옆에서 위로해 주고 저를 지켜 주었습니다. 가족의 사랑과 도움으로 저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백인 신부가 이끌어 오던 2세들을 이끄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저는 부임한 후, 성도들의 신앙 교육 특히, 성서 교육과 기독교 교육에 집중했습니다. 당시 2세들을 위해서는 유스그룹 리더를 청빙하고 2세들이 모이고 활동할 수 있는 예산을 지원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2세 문제는 정말 풀기 어려운 과제입니다. 저는 2세 교육의 초점이 2세들이 이 험난한 인생에서 신앙인으로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야성적 신앙인’으로 키우는 데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2세들은 미국의 다민족들과 살아가야 하므로 그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많은 경험을 쌓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작은 교회의 2세 사역은 재정적 어려움, 그보다 인적 자원의 제약이 크기 때문에 여러 교회가 연합해서 힘을 모으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1세들이 생각하는 2세의 성공은 그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구해서 돈을 잘 버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 보면 인생은 상당히 소박, 단순한 것입니다. 1세들의 왜곡된 어메리칸 드림을 2세들에게 투영시켜서 그들의 성공을 제약하지 말고 그들이 행복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 성공의 기준이 이동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미국 성공회 안에서 한인교회의 인식은 어떻습니까?
일단 이 지역에서는 우리가 유일한 한인교회입니다. 우리가 속한 시카고 교구에서는 “참 넓은 지역에 분포한 한인들이 신앙을 하기 위해 모이고 있구나”라는 점을 놀라워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교회에서는 성공회 교단에서 추진하는 지역사회 봉사나, 선교 구제에 잘 참여해 왔기 때문에 교단에서 인식도 좋습니다. 이번에 프로스팩트 하이츠의 Hintz와 Schoenbeck이 만나는 곳(307 W. Hintz Rd, Prospect Heights, IL 60070)에, 현재 파크릿지 성전의 두배 규모가 되는 세인트 힐러리 성당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도록 교구에서 승인해 주었습니다. 곧 교회가 8월 경에 이전할 예정입니다. 성공회는 모든 재산이 교단 소속인데, 우리 교구에서는 그동안 우리 교회의 역사와 선교, 발전을 평가한 후, 그 교회를 우리 교회가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었습니다.
-시카고 교구 안에서 타민족 목회자의 활동은 어떻습니까?
히스패닉 목회자를 포함해 필리핀, 인도, 스리랑카, 일본인 신부 등이 있습니다. 또 교구 안에 제가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아시안선교위원회가 있습니다. 이 모임의 역할은 아시안 교회의 발전 전략을 짜는 것과 백인교회에서 목회하는 아시안 신부들, 백인교회에 속한 아시안 성도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성공회는 타민족 목회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고 성직자들이 연합하길 장려합니다. 함께 모여서 대화하고 토론하며 공동의 과제를 해결해 가라고 격려하고 도와 줍니다.
-네. 신부님. 오늘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서른일곱번째 인터뷰는 시카고 지역의 유일한 한인 성공회인 한마음교회의 주인돈 신부다. 한국 초기 선교기, 타 교단과의 경쟁적 선교를 피하고 한국 전통 문화의 기독교적 승화를 추구했던 성공회가 선교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은 바로 복음이 한번도 전파된 적이 없던 강화도였다. 주 신부는 강화도의 성공회 집안에서 태어나 15세 때 성령체험을 하고 당시 성공회 신부로부터 영적, 인격적 감화를 받고 성직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연세대학교 신학과로 진학해 신학을 공부하고 한국 성공회 산하 사목신학연구원(현 한국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M.Div.를 마치며 신부로 서품받았다. 현재는 에반스톤에 소재한 미국 성공회 산하 신학교인 Seabury Wester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회 회중의 개발과 발전”을 주제로 목회학 박사 과정에 있다.
한국에서는 3년간 서울주교좌대성당에서 보좌사제를 지냈으며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교무국 선교교육원에서 교육 프로그램과 교재 등을 제작하며 3년간 사역했다. 이 기간동안 대한성공회 1백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간사직을 맡기도 했다. 그후 당시 서울교구와 자매결연 관계에 있던 캐나다 토론토교구에서 한인교회를 지원하기 위해 목회자 파송을 요청했고 주 신부가 토론토로 파송돼 이민목회의 길에 접어 들었다. 그곳에서 약 3년간 목회하고 성공회 한마음교회로 청빙받았으며 시카고로 와 현재 12년째 목회 중이다.
-성공회는 개신교임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과 자주 혼동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보통 기독교를 3개 분파로 말하는데 동방정교회, 로마 가톨릭, 개신교 등입니다. 개신교는 또 칼빈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교회와 루터를 중심으로 하는 루터교회, 그리고 성공회로 나뉩니다. 나머지 개신교회는 모두 다 이 세 개신교회에 뿌리를 둡니다. 즉, 성공회는 개신교의 한 분파입니다. 성공회의 특징은 많은 개신교단 중에서도 초대교회의 역사와 전통을 종교개혁 후에도 가장 잘 유지하면서 담보하고 있는 교회라는 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어떤 분들은 성공회가 가톨릭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실제로 성공회 미사가 가톨릭 미사와 형식상 비슷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가톨릭 미사가 성공회 미사와 비슷한 것입니다.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가톨릭은 중세기 스타일의 미사를 고집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미사의 형식을 대대적으로 변화시켰고 그 모델로 삼은 것이 성공회 미사였습니다.
-성찬의 전례나 말씀의 전례에 대한 시각도 타 교단들과 차이가 크지요?
가톨릭 신자에게 왜 교회 가느냐고 물으면 미사 보러 간다, 성체 영하러 간다고 합니다. 성체를 받은 후에는 미사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교회를 떠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성체성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에게 왜 교회 가느냐고 물으면 말씀 들으러 간다, 설교 들으러 간다고 합니다. 말씀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공회는 성찬의 전례와 말씀의 전례를 동일하게 강조합니다. 단순히 설교의 길이만 비교해 보면 가톨릭은 약 10분, 개신교는 약 30-45분, 성공회는 약 15-20분입니다. 성경은 1970년대 가톨릭, 개신교, 성공회가 함께 번역한 공동번역 성서를 사용합니다.
-길이뿐만 아니라 가톨릭의 말씀 강론과 개신교의 말씀 선포는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성공회의 설교는 어떻습니까?
성공회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3가지 근거를 이렇게 제시합니다. 먼저는 성경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전통입니다. 저는 전통이 단순히 역사 속에서 내려 오는 관습이 아니라 역사와 공간을 초월한, 공동체의 축적된 지혜라고 믿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만나고 섬겼던 신앙의 선조들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바로 그 전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신교가 ‘오직 성경’이라고 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세번째는 이성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성을 주셨는데 하나님의 뜻은 이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시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성을 초월하지만 비이성적이거나 몰이성적이진 않습니다. 성경 속의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날 사회와 과학, 정치, 역사, 문화 속에서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찾는 것입니다.
저는 1980년대 초 가톨릭,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감리교 등의 성서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자는 취지로 만든 성서정과(Lectionary)에 따라 설교합니다. 성서정과의 특징은 그리스도 중심이며 그것은 언제나 복음에 초점을 둡니다. 이 성서정과는 구약, 시편, 서신, 복음서에서 네 가지 말씀을 매주일 읽게 되며 3년 주기로 성서 전체를 읽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서정과의 또 다른 특징은 성서의 통시성과 통일성을 잘 구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성서를 통일성있게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으로 보게 됩니다. 현 개신교 설교는 강해 설교 위주로 가다 보니 성서가 갖고 있는 통시적 이해를 놓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성서정과에 따라 설교하다 보면 3년 주기로 같은 성서본문을 만나게 되어 늘 같은 설교를 하게 될 것 같지만 오늘날 교회가 처한 상황이 날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설교 역시 성서의 통시성과 성서의 현장성을 놓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신비성입니다.
-가톨릭이 받아들이는 제2 정경 중, 개신교는 외경이라고 분류해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성공회는 개신교인데 이 외경을 정경으로 사용하고 있지요?
외경을 교리의 근본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삶에 신앙적, 윤리적, 도덕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가르침이라고 이해하고 사용합니다. 이것을 아까 언급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해 주는 ‘전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신교에서 가장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역시 고해성사일 것입니다. 사제가 과연 죄를 사해 줄 권세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성공회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성체성사에 대한 입장도 약간 차이가 있지요?
어반 홈즈 3세라는 성공회 신학자는 “모든 사람이 죄를 고백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이기를 “나의 문제는 죄의 고백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체성사에 관해서도 가톨릭은 “언제 어디서 누가 미사를 집전하건 반드시 살과 피로 변한다”고 가르칩니다. 개신교는 “이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며, 절대로 살과 피로 변할 수 없다”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공회는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 자에게는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며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상징성을 가진다”고 가르칩니다.
-논란이 될만한 내용은 다 피하고 있는 설명이 아닌가요?
성공회 신학의 특징은 열린 포용성입니다. 성공회 자체가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 속에서 이 갈등을 어떻게 통합하느냐, 어떻게 한 신앙으로 살아가느냐는 고민 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공회는 가톨릭의 전통적인 예전들을 대부분 수용하면서 종교개혁의 유산까지 갖고 있습니다. 양 극단을 포용하면서 동시에 양 극단을 배제하는 것이 성공회 신학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모호성을 초래하기도 하고 이 모호성이 성공회 신학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점이기도 합니다.
-성공회는 산하 교회에 갈등이 발생했을 시 어떻게 중재해 나갑니까?
교회에 갈등이 있으면 목회자(관할사제) 또는 교회 평신도 지도자(교회 신자회장)가 주교에게 보고하고 주교는 교구 안의 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중재를 합니다. 성공회는 공동체의 지혜와 전통을 굉장히 중요시 하기 때문에 이 갈등 문제를 놓고 공동체가 끊임없이 대화합니다. 결코 서두르지 않습니다.
-신부님은 시카고 지역에 일고 있는 교회 갈등 문제에 관해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우선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봅니다. 문제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이냐”에 있습니다. 저는 갈등을 겪을 때 3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이 갈등 속에서 나는 계속 기독교 신앙인으로 남을 것인가”입니다. 갈등을 신앙적인 방법으로, 기독교적인 방법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현재 교회에 갈등이 일어나면 대부분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극단적인 원수가 되어 싸웁니다.
둘째, “이 교회 공동체에서 계속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입니다. 교회는 공동체이고 공동체에는 공동체의 룰이 있습니다. 갈등이 생기더라도 룰을 지켜 가면서 해결해 가야 합니다. 그런데 갈등의 당사자들이 많은 경우에 룰을 어깁니다. 이 룰을 어기면 더 이상 그 공동체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을 뿐더러 공동체가 존재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대화의 룰, 교회법, 일반 상식을 지키지 않습니다. 대화를 하지 않고 교회법을 무시하고 일반 상식에 벗어난 방법으로 갈등을 증폭시켜 가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셋째, “이 사람과 더불어 신앙생활, 인간적 관계를 지속해 갈 것인가”입니다. 갈등의 주역들은 상대방이 목사건, 장로건 서로를 사탄, 도무지 상종 못할 자로 몰아 세우며 공격합니다. 갈등을 겪으며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존엄마저 무너뜨리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갈등이 해소될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저는 하버드대학교의 다나 힉스 교수가 인도하는 교회갈등과 화해에 관한 컨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그녀는 국제 분쟁 가운데 갈등을 겪던 당사자들이 오랜 대화와 타협 끝에 최종 중재안을 작성하더라도 마지막 서명을 앞두고 상당히 망설이거나 서명을 하지 않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도대체 왜 타협에 동의하지 않는가?” 고민하고 연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들 안에 서로간에 인격과 존엄성을 무시당한 상처로 인해 화해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상처를 치유하고 그것을 회복함으로 갈등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교회의 모든 갈등의 밑바닥에는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는 폭력성이 공통적으로 있습니다. 교회의 분쟁도 상대방이 가진 최소한의 인격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형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 갑니다. 관계는 곧 책임을 의미합니다. 갈등을 빚고 있는 상대방과 계속 신앙적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스스로 질문하면서 기독교 신앙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할 것이라 봅니다.
제가 교회 갈등 문제를 보면서 발견한 사실 중 하나는, 많은 경우, 목회자들이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 조직을 이해하지 못해 갈등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교회는 조직이고 조직에는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시스템은 역동적인 행동 양식을 갖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학문적으로 Family System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시스템 안에는 소위 행동양식(Pattern of Behavior)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갈등이 이는 교회는 늘 주기적으로 갈등이 생깁니다. 어떤 교회는 3년마다 목회자를 교체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보면 평신도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으며 신앙생활도 잘 하는데 이상하게 목회자는 3년마다 바뀝니다. 그것은 목회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 교회의 시스템 때문입니다. 그 교회의 행동양식의 패턴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스템이란, 교회의 역사 속에서 존재하는, 교회를 음직이는 역동적인 힘, 관계, 존재양식 등입니다. 이런 것들을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해 나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갈등을 점차적으로 해소해 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교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교회는 그 시스템을 바꾸기 전에는 계속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과의 갈등을 반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는 공정한 제3자가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 교회의 갈등을 묻어 두려다가 더 큰 문제로 곪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정한 제3자가 양측의 입장을 듣고 조율해 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합니다. 교회 컨설턴트의 조언을 받는 것입니다. 성공회는 교구 주교를 포함한 전문가들이 갈등 문제에 나서서 해결을 도와 줍니다.
한국인들은 무의식의 원형 속에서 갈등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좁은 땅에서 부족국가, 삼국시대 이후로 지역 간에 싸우는 가운데 갈등의 역사를 살았고 교육 과정 중에도 남을 존중하는 대화와 토론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조차 대화의 훈련과 건전한 시민교육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한국 기독교의 역사나, 한인 이민교회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신앙적으로 성숙한 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교회 구성원들이 사랑과 평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내가 속한 공동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말, 행동이 교회에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책임지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강단에서도 그런 교육이 이뤄져야 하겠습니다. 인간 존엄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면, 상대방을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비난하고 공격해서 갈등을 심화시키는 일이 줄어들 것입니다. 서로의 실패와 실수를 용서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성장하고 발전해 가는 관용의 정신도 자리잡으면 좋겠습니다.
-성공회 신부로서 한인사회에서 목회하시는 데에 어려움은 없으셨습니까?
‘성공회가 개신교회’라는 인식이 아직 한인사회에 낮은 것은 사실입니다. 성공회(聖公會)라는 이름 자체가 “거룩한 보편적(공번된, 公番) 교회”라는 “the Holy Catholic Church”의 줄임말입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이름에 교회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그런 면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민교회가 대부분 한국의 장로교 성도는 이민 후, 장로교회로, 감리교 성도는 감리교회로 가는 현상이 있는데 한국에서도 소수에 속하는 성공회 성도가 시카고로 이민 오는 경우가 상당히 드물기도 합니다.
제 전임자가 미국인 신부였기 때문인 점도 있습니다. 영국 성공회의 영향을 받은 한국 성공회는 파송제이지만 미국 성공회를 포함한 세계 성공회는 대부분 청빙제입니다. 성도들이 2세 교육 문제를 염두에 두고 미국인 백인 여성 신부님을 청빙했고 그분이 12년간 목회하시면서 성공회가 한인교계에 많이 알려질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도 12년간 이 지역에서 목회하면서 목회와 학업 등으로 바빠 사회나 교계에 참여를 많이 못했습니다.
그 백인 신부님이 한국어를 배워 1세 목회를 하시고 영어로 2세들을 가르치면서 2세 목회에 있어서는 상당한 진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한인 2세들이 다 성장해서 대학에 진학하며 타주로 이동하자 교회는 다시 1세 한인 목회자의 필요성을 느끼고 캐나다에 있던 저를 청빙했습니다.
-백인 여성 신부와 한인 남성 신부를 대하는 성도들의 차이는 없었습니까?
백인 신부에 대한 기대와 한인 신부에 대한 기대가 다른 것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백인 신부일 때는 미국교회처럼 교회의 많은 일들을 평신도 중심이 되어 진행했습니다. 백인 신부님이 매년 한달씩 가는 휴가에 관해서도 성도들이 관대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임한 후, 성도들은 교회의 많은 일을 제게 위임하고 의지했으며 제가 1주일 가는 휴가도 제 마음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한인 신부에 대해 한인들이 갖는 한국적 정서가 있을 것입니다. 신부로부터 사랑과 위로를 받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것입니다.
-다른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어떻게 해결해 가셨습니까?
역시 성도들과 느끼는 세대 차이, 그리고 문화차이였습니다. 제가 여기 부임했을 때 34살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가정이 저보다 15년에서 30년 이상 연세가 있는 분들이었고 저보다 나이가 어린 가정은 한 가정 뿐이었습니다. 미국 생활을 오래하신 분들은 어떨 때는 한국적 방식으로, 또 어떨 때는 미국적 방식으로 저에게 목회적 요구를 해 오셨기 때문에 그것을 제가 이해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저도 다른 목회자들이 그러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기도하면서 목회의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특히 시편을 매일 소리내서 읽었습니다. 문제와 갈등 속에 있을 때 매일의 시편은 저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또 주변 사람들과 활발히 대화하고 자문을 구하면서 지혜를 얻어 갔습니다. 특별히 영적인 멘토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조언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 나름대로 취미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소명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취미는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책을 계속 써나갔고 일간지에 일상의 느낌을 기고하면서 저도 많은 점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성공회 크레도(Credo) 컨퍼런스에 7박8일간 참여하며 목회의 소명, 목회자의 영성과 건강, 재정적 문제에 대해 상담받고 훈련받고 교제하면서 큰 위로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볼 때, 교단이 목회자들의 웰빙, 웰니스를 위해 이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끝으로 저의 아내가 옆에서 위로해 주고 저를 지켜 주었습니다. 가족의 사랑과 도움으로 저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백인 신부가 이끌어 오던 2세들을 이끄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저는 부임한 후, 성도들의 신앙 교육 특히, 성서 교육과 기독교 교육에 집중했습니다. 당시 2세들을 위해서는 유스그룹 리더를 청빙하고 2세들이 모이고 활동할 수 있는 예산을 지원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2세 문제는 정말 풀기 어려운 과제입니다. 저는 2세 교육의 초점이 2세들이 이 험난한 인생에서 신앙인으로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야성적 신앙인’으로 키우는 데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2세들은 미국의 다민족들과 살아가야 하므로 그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많은 경험을 쌓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작은 교회의 2세 사역은 재정적 어려움, 그보다 인적 자원의 제약이 크기 때문에 여러 교회가 연합해서 힘을 모으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1세들이 생각하는 2세의 성공은 그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구해서 돈을 잘 버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 보면 인생은 상당히 소박, 단순한 것입니다. 1세들의 왜곡된 어메리칸 드림을 2세들에게 투영시켜서 그들의 성공을 제약하지 말고 그들이 행복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 성공의 기준이 이동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미국 성공회 안에서 한인교회의 인식은 어떻습니까?
일단 이 지역에서는 우리가 유일한 한인교회입니다. 우리가 속한 시카고 교구에서는 “참 넓은 지역에 분포한 한인들이 신앙을 하기 위해 모이고 있구나”라는 점을 놀라워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교회에서는 성공회 교단에서 추진하는 지역사회 봉사나, 선교 구제에 잘 참여해 왔기 때문에 교단에서 인식도 좋습니다. 이번에 프로스팩트 하이츠의 Hintz와 Schoenbeck이 만나는 곳(307 W. Hintz Rd, Prospect Heights, IL 60070)에, 현재 파크릿지 성전의 두배 규모가 되는 세인트 힐러리 성당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도록 교구에서 승인해 주었습니다. 곧 교회가 8월 경에 이전할 예정입니다. 성공회는 모든 재산이 교단 소속인데, 우리 교구에서는 그동안 우리 교회의 역사와 선교, 발전을 평가한 후, 그 교회를 우리 교회가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었습니다.
-시카고 교구 안에서 타민족 목회자의 활동은 어떻습니까?
히스패닉 목회자를 포함해 필리핀, 인도, 스리랑카, 일본인 신부 등이 있습니다. 또 교구 안에 제가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아시안선교위원회가 있습니다. 이 모임의 역할은 아시안 교회의 발전 전략을 짜는 것과 백인교회에서 목회하는 아시안 신부들, 백인교회에 속한 아시안 성도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성공회는 타민족 목회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고 성직자들이 연합하길 장려합니다. 함께 모여서 대화하고 토론하며 공동의 과제를 해결해 가라고 격려하고 도와 줍니다.
-네. 신부님. 오늘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