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세대교체, 교회연합, 2세 사역, 부흥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들고 시카고 지역 목회자 40인을 만난다. 이 인터뷰를 통해 시카고 한인교회의 여론을 수렴하고 한인교회의 미래와 나아갈 바를 조명하고자 함이다. 40인 인터뷰는 시카고 교계의 발전을 위한, 가능한 모든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목회자들이 시무하는 교회의 교세, 목회자의 교단적 배경, 목회 연수 등에 관계없는 순으로 게재된다.
서른여섯번째 인터뷰는 제자들의교회 김기철 목사다. 김 목사는 현재 나이스크 예배회복운동의 중부본부장이며 고센리서치인스티튜트의 교수다. 남침례교단 한인총회의 실행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시카고지역 교역자회 회장도 역임했다. 김 목사는 하나님의성회시카고신학교, 베다니신학교, GTS 등에서 공부했으며 양문교회, 은혜복음교회에서 시무하다 현재 제자들의교회를 개척해 시무하고 있다.
-시카고 지역의 많은 목회자들이 시카고 교계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교회의 권위 실추 문제를 꼽습니다. 이런 견해에 동감하십니까? 문제의 시작과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교회의 권위가 실추됐다는 말은 곧 예배가 무너졌다는 말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예배에 각종 유형과 특징이 있지만 지금의 모습들은 초대교회 때와는 달리 많은 면에서 변질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배에 필요한 요소가 생략되기도 하고 형식화 되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본질을 잃은 상태에서 예배가 엔터테인먼트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많은 교회들이 열린 예배나 구도자 예배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부흥을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 예배는 믿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예배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것인데 그 포커스가 대중에게 맞추어졌습니다.
예배의 무너짐에 관해서는 그 구심점이 강단이기에 곧 강단의 권위가 실추됐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교회 안으로 전달하는 것이며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수단입니다. 즉 예배를 드린 성도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올바른 길을 걸어 가게 됩니다. 그러나 예배가 불신자를 위한 전도집회처럼 되면서 예배에 말씀의 권위와 경건이 사라진 것입니다. 결국 예배를 부흥의 수단으로 보게 되면서 기독교라는 신앙이 종교화 되어 갔습니다. 신앙과 종교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예배의 문제를 형식적 변질에서 찾고 계신 것 같습니다.
로마서 12장에서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사실 예배는 형식이나 모양이 아니라 어떻게 드려지느냐의 문제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예배는 육체와 영혼이 함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육체가 움직이지 않으면 예배를 드리러 갈 수 없지 않습니까? 많은 분들이 신앙이 좋다고 자처하며 십일조도 잘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지만 주일 예배를 지키지 않는 오류를 범합니다. 이런 현상들이 사람을 예배에 둔감하게 만들고 예배의 본질을 잊게 합니다.
그러나 형식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는 삶 전체를 말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가장 기본인 형식적 예배를 놓치면 삶 전체로 드리는 예배 역시 본질을 잃게 됩니다. 아모스서 5장을 보면 회복이란 단어를 사용하면서 무너진 것을 세우라고 합니다. 당시도 제사를 드렸는데 무너진 것을 세우라고 합니다. 형식은 있었지만 이 형식이 세상적으로 변질되면서 본질을 잊게 했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예배 중 불필요한 세상적 음악이나 요소가 많이 들어와 있고 이것이 우리 삶의 예배를 무너뜨렸습니다. 그것을 다시 세우고자 하는 운동이 나이스크입니다. 이렇게 세워진 삶의 예배가 집약되어 나타나는 것이 주일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카고 교계의 문제를 그렇게 찾는다면 결국 문제의 시작이 목회자라고 보시는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제가 언급한 문제 외에도 목회자들이 직분자를 남발한 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직분자는 성경이 가르치는 바에 입각해 세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직분자들을, 말로 밝히기도 부끄러운 이유들로 세웠으니, 그렇게 세워진 직분자가 그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시카고 교계의 문제의 대부분은 목회자와 직분자 간의 갈등입니다. 주의 종들에게는 순종과 거룩이 양대산맥처럼 자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앞에 보이는 현실, 교회 부흥, 헌금액 등에 얽매여 그런 성품들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부흥도 그렇습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 어느 교회는 교인이 1백명, 어느 교회는 1천명이라 합시다. 그런데 이 중 구원을 받는 자가 1백명 교회는 1백명, 1천명 교회는 3백명이라 했을 때, 주님은 이것을 어떻게 보실까요? 물론 3백명이 더 많지만 저 교회는 100% 구원이고 이 교회는 30% 구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목회자들이 목회를 바라보고 질적인 성장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사명감을 느껴야 합니다. 목회자부터 자성해야 합니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들보부터 봐야 합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권위는 하나님이 주시지만 자신들의 문제는 고칠 생각도 않고 양들 보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흔히 지적하는 1세와 2세의 차이나 갈등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도 예배의 문제로 볼 수 있습니까?
최근 한 통계에서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는 이유, 교회가 감소하는 첫번째 이유가 교육 부족이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 안의 1세와 2세의 갈등을 예로 들 때, 2세가 1세에게 먼저 인사하지 않은 것을 꼽습니다. 인사 그게 뭐 대수인가 생각하고 인사 좀 안하면 어떻고 또 1세가 먼저 인사하면 된다는 분도 있지만 우리 2세들에게 인사를 가르치지 않은 책임은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문안하라고 합니다. 자녀들이 어른, 즉 믿음의 선배들에게 인사하는 것 자체가 거룩한 입맞춤입니다. 이것은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나이스크 패밀리 컨퍼런스에 가면 2세들에게 제일 먼저 시키는 것이 인사 연습입니다. 이것이 끝난 후 청소년들의 간증을 들어 보면, “왜 이런 데 억지로 와야 하나, 뭘 하루종일 인사 연습만 시키나”라고 불만을 갖던 그들이 인사 속에서 경건 훈련을 깨닫고 자기 정체성을 찾는다고 합니다. 인사 훈련을 하고 난 2세들은 컨퍼런스 둘째날부터 90도로 인사합니다. 그러면서 인사 이상의 것을 배웁니다. 우리는 2세들을 키우면서 경건 훈련을 너무 경시했습니다.
우리 2세들은 미국적 사고방식과 토론문화 속에서 자라서 질문을 많이 합니다. 물론 이것은 좋은 것이지만 무엇인가 지시할 때면 “왜요”라고 되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묻는 말 안에 “왜 해야 합니까? 하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것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목회자가 본질적인 부분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경우도 있고 목회 자체가 성도들을 설득하는 과정이긴 하지만 2세들의 이런 태도는 종종 1세와 2세의 갈등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순종의 훈련도 신앙 훈련이므로 우리 2세들에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1세와 2세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한국어로 예배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세들이 한국어를 잘 못읽고 잘 못알아 듣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어를 계속 멀리하게 하면 2세들은 계속 1세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1세 중에도 고어체로 된 성경을 읽고 100%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의 용어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2세들이 한국어 성경이나 설교를 100% 이해를 못하더라도 함께 예배 드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은 다 지능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에 드라마의 앞뒤만 보고도 중간의 모든 스토리를 추측해 낼 정도입니다. 그런 자녀들이기에 말씀의 2-30%만 알아 들어도 함께 예배드리고 설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배 속에는 성령이 함께 하시므로 부족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하나됨을 위해서 1세들이 영어로 예배 드리라는 지적이 나올 법 합니다.
한국어 안에는 우리의 전통과 관습, 사고방식이 담겨 있습니다. 신앙은 전통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전통적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서는 2세에게 한국어 교육을 반드시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2세들도 한국적 전통의 신앙을 배우며 성장해 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부모-부모-자녀 3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성경에 어디에도 애들은 따로 예배 드렸다는 구절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3대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되어 예배드려야 신앙이 전수됩니다.
저는 수년 전부터 1.5세 담임목회자가 중대형 한인교회의 주를 이룰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담임보다 나이 많은 1세 목회자가 부목사가 되는 교회 구조를 예측했습니다. 큰 교회는 더욱 그리 될 수 밖에 없습니다. 1.5세 목회자는 3대를 잇는 예배를 구현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문제는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미래를 보는 눈이 열려질 때 더 합리적이고 능률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 펼쳐질 것입니다.
-목사님은 한국적 신앙에 굉장히 강한 자부심을 갖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가 새벽기도와 헌신으로 뜨겁게 부흥하는 동안 미국교회는 왜 이렇게 감소했습니까? 우리 자녀들을 한국적 영성에 동참시키겠습니까? 아니면 서구적 신앙에 동화시키겠습니까? 한국교회의 7-80년대 부흥은 자기가 먹고 죽을 양식까지 교회에 바치는 헌신적인 것이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발생하는 문제도 이런 한국 전통적 헌신을 잊고 서구적인 관념만 너무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시카고 지역의 교회 연합활동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현재 교협이나 교역자회가 연례적으로 여는 부활절연합예배라든지, 할렐루야 대회, 신년하례회 등은 잘 진행되고 있고 특히 비정기적으로 여는 목회자 연장 교육 세미나나 프로그램들이 큰 호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각 교단에서도 목회자들 간에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연합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또 나이스크 운동처럼 초교파적으로 월례회마다 목회자들이 모이며 설교를 나누고 서로 조언하는, 목회에 도움이 되는 각종 연합이 곳곳에서 일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도 교회 연합의 어려움을 들라면, 목회자들이 연합 행사에 나오기 어렵게 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다 상황이 다르지만 성도들이 목회자가 외부로 드러난 활동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런 연합 운동이 영성이나 교회 성장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묻고 목회자의 연합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분도 있지만 사실 이런 연합 활동에서 목회자는 목회자로서 연장 교육, 재교육을 받아 가며 영적 재충전을 받습니다. 그런 점에서 연합 운동에 대한 성도들의 인식 개선도 필요합니다.
-다민족 사회 속에서 교회와 교계 연합 활동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까요?
현재 교협이나 교역자회가 목회자 재교육 차원에서 다양한 세미나를 여는 것은 상당히 바람직합니다. 이에 더해서 한인교회가 타민족 선교에 노력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면 좋겠습니다. 시카고는 인종의 전시장이라 할만큼 다양한 인종, 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해외선교는 꼭 멀리 나가서 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해외에 나가서 그 나라 문화와 언어, 풍습을 배우고 선교하려면 많은 에너지와 시간, 재정이 필요합니다. 해외선교도 좋지만 우리 바로 옆의 타민족을 선교하는 것도 좋은 전략입니다. 미국에 사는 우리도, 그들도 영어를 사용할 줄 알고 미국적 문화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자기 모국에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선교의 개념을 꼭 멀리 가야 한다는 ‘거리(distance)’에서만 찾지 말고 우리 주변의 ‘거리(street)’에서 찾는 시각이 전환되면 좋겠습니다. 이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이들의 믿음의 삶, 즉 예배에까지 도움을 주는 것이 되면 좋겠습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교제하면서 이들이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일례로, 지금 이 지역에는 한인의 두 배에 가까운 중국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20여개 남짓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선교적 필요성이 큰 것이죠. 그들은 한인교회의 영성과 기도 열심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가르쳐 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협이나 교역자회가 주도해서 타민족들에게 한인교회의 영성을 가르쳐 주고 나눠 주고 교제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중국인 뿐 아니라 태국인, 라오스인, 베트남인등 많은 아시안 교회들에게 한인교회는 도전적인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일은 개인적, 개교회적, 교단적, 교계적 과제이기 때문에 우리 한인교회가 늘 생각하고 기도해야 할 주제가 아닌가 합니다. 교계가 이런 일에 노력을 기울여 주시면 이 미국사회 안에서 한인교회의 위상을 높이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네. 목사님. 오늘 인터뷰에 감사합니다.
서른여섯번째 인터뷰는 제자들의교회 김기철 목사다. 김 목사는 현재 나이스크 예배회복운동의 중부본부장이며 고센리서치인스티튜트의 교수다. 남침례교단 한인총회의 실행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시카고지역 교역자회 회장도 역임했다. 김 목사는 하나님의성회시카고신학교, 베다니신학교, GTS 등에서 공부했으며 양문교회, 은혜복음교회에서 시무하다 현재 제자들의교회를 개척해 시무하고 있다.
-시카고 지역의 많은 목회자들이 시카고 교계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교회의 권위 실추 문제를 꼽습니다. 이런 견해에 동감하십니까? 문제의 시작과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교회의 권위가 실추됐다는 말은 곧 예배가 무너졌다는 말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예배에 각종 유형과 특징이 있지만 지금의 모습들은 초대교회 때와는 달리 많은 면에서 변질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배에 필요한 요소가 생략되기도 하고 형식화 되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본질을 잃은 상태에서 예배가 엔터테인먼트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많은 교회들이 열린 예배나 구도자 예배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부흥을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 예배는 믿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예배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것인데 그 포커스가 대중에게 맞추어졌습니다.
예배의 무너짐에 관해서는 그 구심점이 강단이기에 곧 강단의 권위가 실추됐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교회 안으로 전달하는 것이며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수단입니다. 즉 예배를 드린 성도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올바른 길을 걸어 가게 됩니다. 그러나 예배가 불신자를 위한 전도집회처럼 되면서 예배에 말씀의 권위와 경건이 사라진 것입니다. 결국 예배를 부흥의 수단으로 보게 되면서 기독교라는 신앙이 종교화 되어 갔습니다. 신앙과 종교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예배의 문제를 형식적 변질에서 찾고 계신 것 같습니다.
로마서 12장에서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사실 예배는 형식이나 모양이 아니라 어떻게 드려지느냐의 문제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예배는 육체와 영혼이 함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육체가 움직이지 않으면 예배를 드리러 갈 수 없지 않습니까? 많은 분들이 신앙이 좋다고 자처하며 십일조도 잘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지만 주일 예배를 지키지 않는 오류를 범합니다. 이런 현상들이 사람을 예배에 둔감하게 만들고 예배의 본질을 잊게 합니다.
그러나 형식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는 삶 전체를 말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가장 기본인 형식적 예배를 놓치면 삶 전체로 드리는 예배 역시 본질을 잃게 됩니다. 아모스서 5장을 보면 회복이란 단어를 사용하면서 무너진 것을 세우라고 합니다. 당시도 제사를 드렸는데 무너진 것을 세우라고 합니다. 형식은 있었지만 이 형식이 세상적으로 변질되면서 본질을 잊게 했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예배 중 불필요한 세상적 음악이나 요소가 많이 들어와 있고 이것이 우리 삶의 예배를 무너뜨렸습니다. 그것을 다시 세우고자 하는 운동이 나이스크입니다. 이렇게 세워진 삶의 예배가 집약되어 나타나는 것이 주일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카고 교계의 문제를 그렇게 찾는다면 결국 문제의 시작이 목회자라고 보시는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제가 언급한 문제 외에도 목회자들이 직분자를 남발한 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직분자는 성경이 가르치는 바에 입각해 세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직분자들을, 말로 밝히기도 부끄러운 이유들로 세웠으니, 그렇게 세워진 직분자가 그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시카고 교계의 문제의 대부분은 목회자와 직분자 간의 갈등입니다. 주의 종들에게는 순종과 거룩이 양대산맥처럼 자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앞에 보이는 현실, 교회 부흥, 헌금액 등에 얽매여 그런 성품들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부흥도 그렇습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 어느 교회는 교인이 1백명, 어느 교회는 1천명이라 합시다. 그런데 이 중 구원을 받는 자가 1백명 교회는 1백명, 1천명 교회는 3백명이라 했을 때, 주님은 이것을 어떻게 보실까요? 물론 3백명이 더 많지만 저 교회는 100% 구원이고 이 교회는 30% 구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목회자들이 목회를 바라보고 질적인 성장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사명감을 느껴야 합니다. 목회자부터 자성해야 합니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들보부터 봐야 합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권위는 하나님이 주시지만 자신들의 문제는 고칠 생각도 않고 양들 보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흔히 지적하는 1세와 2세의 차이나 갈등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도 예배의 문제로 볼 수 있습니까?
최근 한 통계에서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는 이유, 교회가 감소하는 첫번째 이유가 교육 부족이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 안의 1세와 2세의 갈등을 예로 들 때, 2세가 1세에게 먼저 인사하지 않은 것을 꼽습니다. 인사 그게 뭐 대수인가 생각하고 인사 좀 안하면 어떻고 또 1세가 먼저 인사하면 된다는 분도 있지만 우리 2세들에게 인사를 가르치지 않은 책임은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문안하라고 합니다. 자녀들이 어른, 즉 믿음의 선배들에게 인사하는 것 자체가 거룩한 입맞춤입니다. 이것은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나이스크 패밀리 컨퍼런스에 가면 2세들에게 제일 먼저 시키는 것이 인사 연습입니다. 이것이 끝난 후 청소년들의 간증을 들어 보면, “왜 이런 데 억지로 와야 하나, 뭘 하루종일 인사 연습만 시키나”라고 불만을 갖던 그들이 인사 속에서 경건 훈련을 깨닫고 자기 정체성을 찾는다고 합니다. 인사 훈련을 하고 난 2세들은 컨퍼런스 둘째날부터 90도로 인사합니다. 그러면서 인사 이상의 것을 배웁니다. 우리는 2세들을 키우면서 경건 훈련을 너무 경시했습니다.
우리 2세들은 미국적 사고방식과 토론문화 속에서 자라서 질문을 많이 합니다. 물론 이것은 좋은 것이지만 무엇인가 지시할 때면 “왜요”라고 되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묻는 말 안에 “왜 해야 합니까? 하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것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목회자가 본질적인 부분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경우도 있고 목회 자체가 성도들을 설득하는 과정이긴 하지만 2세들의 이런 태도는 종종 1세와 2세의 갈등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순종의 훈련도 신앙 훈련이므로 우리 2세들에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1세와 2세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한국어로 예배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세들이 한국어를 잘 못읽고 잘 못알아 듣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어를 계속 멀리하게 하면 2세들은 계속 1세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1세 중에도 고어체로 된 성경을 읽고 100%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의 용어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2세들이 한국어 성경이나 설교를 100% 이해를 못하더라도 함께 예배 드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은 다 지능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에 드라마의 앞뒤만 보고도 중간의 모든 스토리를 추측해 낼 정도입니다. 그런 자녀들이기에 말씀의 2-30%만 알아 들어도 함께 예배드리고 설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배 속에는 성령이 함께 하시므로 부족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하나됨을 위해서 1세들이 영어로 예배 드리라는 지적이 나올 법 합니다.
한국어 안에는 우리의 전통과 관습, 사고방식이 담겨 있습니다. 신앙은 전통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전통적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서는 2세에게 한국어 교육을 반드시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2세들도 한국적 전통의 신앙을 배우며 성장해 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부모-부모-자녀 3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성경에 어디에도 애들은 따로 예배 드렸다는 구절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3대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되어 예배드려야 신앙이 전수됩니다.
저는 수년 전부터 1.5세 담임목회자가 중대형 한인교회의 주를 이룰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담임보다 나이 많은 1세 목회자가 부목사가 되는 교회 구조를 예측했습니다. 큰 교회는 더욱 그리 될 수 밖에 없습니다. 1.5세 목회자는 3대를 잇는 예배를 구현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문제는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미래를 보는 눈이 열려질 때 더 합리적이고 능률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 펼쳐질 것입니다.
-목사님은 한국적 신앙에 굉장히 강한 자부심을 갖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가 새벽기도와 헌신으로 뜨겁게 부흥하는 동안 미국교회는 왜 이렇게 감소했습니까? 우리 자녀들을 한국적 영성에 동참시키겠습니까? 아니면 서구적 신앙에 동화시키겠습니까? 한국교회의 7-80년대 부흥은 자기가 먹고 죽을 양식까지 교회에 바치는 헌신적인 것이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발생하는 문제도 이런 한국 전통적 헌신을 잊고 서구적인 관념만 너무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시카고 지역의 교회 연합활동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현재 교협이나 교역자회가 연례적으로 여는 부활절연합예배라든지, 할렐루야 대회, 신년하례회 등은 잘 진행되고 있고 특히 비정기적으로 여는 목회자 연장 교육 세미나나 프로그램들이 큰 호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각 교단에서도 목회자들 간에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연합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또 나이스크 운동처럼 초교파적으로 월례회마다 목회자들이 모이며 설교를 나누고 서로 조언하는, 목회에 도움이 되는 각종 연합이 곳곳에서 일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도 교회 연합의 어려움을 들라면, 목회자들이 연합 행사에 나오기 어렵게 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다 상황이 다르지만 성도들이 목회자가 외부로 드러난 활동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런 연합 운동이 영성이나 교회 성장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묻고 목회자의 연합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분도 있지만 사실 이런 연합 활동에서 목회자는 목회자로서 연장 교육, 재교육을 받아 가며 영적 재충전을 받습니다. 그런 점에서 연합 운동에 대한 성도들의 인식 개선도 필요합니다.
-다민족 사회 속에서 교회와 교계 연합 활동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까요?
현재 교협이나 교역자회가 목회자 재교육 차원에서 다양한 세미나를 여는 것은 상당히 바람직합니다. 이에 더해서 한인교회가 타민족 선교에 노력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면 좋겠습니다. 시카고는 인종의 전시장이라 할만큼 다양한 인종, 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해외선교는 꼭 멀리 나가서 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해외에 나가서 그 나라 문화와 언어, 풍습을 배우고 선교하려면 많은 에너지와 시간, 재정이 필요합니다. 해외선교도 좋지만 우리 바로 옆의 타민족을 선교하는 것도 좋은 전략입니다. 미국에 사는 우리도, 그들도 영어를 사용할 줄 알고 미국적 문화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자기 모국에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선교의 개념을 꼭 멀리 가야 한다는 ‘거리(distance)’에서만 찾지 말고 우리 주변의 ‘거리(street)’에서 찾는 시각이 전환되면 좋겠습니다. 이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이들의 믿음의 삶, 즉 예배에까지 도움을 주는 것이 되면 좋겠습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교제하면서 이들이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일례로, 지금 이 지역에는 한인의 두 배에 가까운 중국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20여개 남짓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선교적 필요성이 큰 것이죠. 그들은 한인교회의 영성과 기도 열심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가르쳐 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협이나 교역자회가 주도해서 타민족들에게 한인교회의 영성을 가르쳐 주고 나눠 주고 교제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중국인 뿐 아니라 태국인, 라오스인, 베트남인등 많은 아시안 교회들에게 한인교회는 도전적인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일은 개인적, 개교회적, 교단적, 교계적 과제이기 때문에 우리 한인교회가 늘 생각하고 기도해야 할 주제가 아닌가 합니다. 교계가 이런 일에 노력을 기울여 주시면 이 미국사회 안에서 한인교회의 위상을 높이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네. 목사님. 오늘 인터뷰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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