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타임즈가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했던 강석희 시장의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시 시장 당선. 당선이 확정된 뒤인 지난해 11월 4일에는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쉴 새 없이 전화벨 소리가 이어졌다. 그중에 반 이상이 한국에서 온 전화였다. 강원도의 목사님, 고등학교 학생을 막론하고 32년 전 한국을 떠나 이제는 미국의 지도자 중 한 명이 된 강석희를 아직도 기억하고 축하하는 메시지에 강 시장은 가슴이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선 후 첫 방한 일정 중 강연 때마다 강 시장은 그 때를 회고하며 감사를 표했다. 겸손하고 온화한 그의 모습을 보면 그가 거칠기로 유명한 美 정치 한복판에서 어떻게 승리를 일궈냈는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사실 어바인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강력한 카리스마가 아니었다. 일일이 발품을 팔아 5만 가구를 방문하며 이야기를 듣고 아픔을 껴안았던 넓은 가슴과 책임감, 한결같은 신뢰였다. 그는 자신이 다니던 교회가 분쟁과 분열을 겪으며 성도들이 떠나갈 때도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조금만 감정이 틀어져도 교회를 옮기기 일쑤인 이민사회에서는 드문 사례였다.

어바인시 구석구석을 누비던 체력과 열정은 방한 기간 중에도 빛났다. 빼곡한 일정을 거쳐 주일 저녁 새에덴교회에서 강연을 전하고 나니, 마침 어린이 주일이라 그런지 부모님의 손을 붙잡고 사인을 받으려는 아이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한 명 한 명 쓰다듬고 격려하고 나서 시계를 보자 밤 10시. 그래도 한국교회 성도들 앞에 선다는 것에 반가워하는 마음으로 그는 옷깃을 다시 여몄다.

분열과 갈등 겪으면서도 한결같이 한 교회만 출석
“개인의 이익 위해 옮기는 건 양심을 바꾸는 것”


-32년째 같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것도 7, 80명 규모의 크지 않은 교회에.

“1977년 미국에 가기 전까지는 교회 문턱에도 간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당시 이민생활은 교회를 가야만 한인들을 만날 수 있는, 참 외로운 생활이었다. LA오렌지카운트시에 도착해 처음으로 교회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32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주 출석하고 있다. 가끔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 ‘강 시장님, 이제는 큰 교회, 몇만 명 규모의 교회 정도는 나가야 하지 않으신가요’라는. 하지만 개인의 작은 이익을 위해 30년 이상 다니던 교회를 바꾼다는 것은 제 양심을 바꾸는 것과도 같다.”

그가 처음 다니던 윌셔장로교회는 본래 오렌지카운티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가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후 갈등이 발생해 교인들이 이탈하고, 교회가 분열과 재통합을 거치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도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었고, 지금은 윌셔교회와 통합한 가나안장로교회에 다닌다.

-그래도 정치적 혹은 현실적인 이유로 옮겨야 할 필요성을 느끼신 적은 없는가.

“고지식해서 그런지 우직하게 조그만 교회를 출석하며 그 사랑과 은혜, 목사님의 말씀과 성도와의 교제 속에 지금의 나로 성장했고, 지금은 당당하게 시장의 임무를 띠고 출석하고 있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가는 게 제 삶의 방식이다. 필요한 사람만 사귀는 것도 아니고 두루두루 사귄다. 대인관계건 공직의 길이건 초심을 지키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뜻을 세우고 발을 내디뎠으면 최선을 다해 우직하게 나가려 한다. 이러한 모습이 오히려 공인으로서 참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것 같아 가치 있게 평가해준다.”

-미국의 풍토가 원래 그런가.

“그렇지 않다. 한 곳에 오랫동안 있을 수 있는 것은 쉽지 않다. 하나의 작은 신념이라고 생각한다면 좋은 방향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2004 시의원 선거에 나설 당시 한 지식인이 정치인으로서 이러한 점을 높이 평가한 적이 있었다. 미주 중앙일보에 기고한 한인 김지영 변호사는 그에 대해 “한 정당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와 적극적 지원 활동이 돋보인다. 시대의 흐름이나 개인의 이해관계 때문에 지지 정당을 수시로 바꾸는 정치 지망생들을 수없이 보아온 우리에게 강 후보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하나님 뜻 따라 미래 설정할 때 한인사회 비상할 것
조국과 한인 사회의 끊임없는 네트워크 중요


▲美 어바인시 강석희 시장이 지난 주일 새에덴교회에서 강연을 마친 후 아이들에게 자신의 저서에 사인을 해주고 있다. ⓒ 송경호 기자

-한국교회는 대체적으로 개교단, 개교회 내 관심사가 많아 해외로 눈을 돌릴 틈이 없다. 한인 교회의 역할과 중요성이 큰가.

“한인사회에서 가장 많이 모이고 응집력이 강한 게 교회 커뮤니티다. 때문에 교회의 영향력이 한인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영적인 면에서 한인 사회의 위상을 세우는 데 교회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며 특히 미래 인재 양성에 대한 역할과 책임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미래 설정이 이뤄질 때 한인사회는 크게 비상할 수 있다.”

-미국의 한인, 나아가 전 세계 한인이 세계 사회의 중요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모국이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보나.

“한인들과 한국사회와의 네트워킹이 중요하다. 세계가 글로벌화 되고 있기에 한국의 경제력이 곧 이민자들의 경제력으로, 한국의 정치력 신장이 곧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으로 이어진다. 이민자들과 조국이 끊임없는 유대관계를 이뤄가야 한다.”

FTA 협약, 독도 문제 등 한미 관계 위해 힘이 될 것
한국교회 지도자들 미래 지도자 양성에 힘써달라


-한미 FTA 등 양국 관계를 위해 힘이 되겠다고 했다. 이는 한국 기독교계의 큰 관심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기대가 된다.

“한국에 산재된 여러 이슈가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미 FTA 협의는 매우 중요하다. 또한 독도 문제도 중요하다. 역사적인 고찰을 통해 미국 정부가 연방 결의안 만들어내도록 중점적인 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인사회가 미국 정부를 움직이는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미국 동포들과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해 협력할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강 시장님께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저는 민주당 소속이니 민주당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정확한 팩트(fact)를 전달하려 한다. 예를 들어 한미 FTA의 본질이 무엇인가, 이를 통해 한국과 미국이 받는 혜택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실제적인 사안을 통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 정치인들을 움직여 조속한 시일 내에 체결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강 시장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글로벌 지도자 양성에 구체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 송경호 기자
-한국교회 목회자들과도 친분이 적지 않으신 것 같다. 한국교회에 실질적으로 요청하시고 싶은 부분이 있는가.

“주지하고 있는 바다. 오래전에 한국을 떠나 교계 상황은 사실 많이 모른다. 하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미래 지도자 인재 양성에 교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코리아’에 맞는 글로벌 지도자가 발굴되어야 한다. 기독교계가 가지고 있는 지도력을 통해 경쟁력 있는 미래 지도자를 양성해야 한다. 많은 목사님께서 물론 관심을 기울이고 계시지만 실질적인 계획과 행동을 통해 심각하게 고민해 주셨으면 한다.”

-한국의 정치는 늘 논란이다. 미국을 다녀온 정치인들은 많은 것을 배웠다고도 한다. 美 정치 주류를 경험한 분으로서 조언해주고 싶은 점은 없는가.

“정치인뿐만 아니라 지도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분들, 목사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본받음을 받으려면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고 이를 통해 진정한 지도자 상을 만들어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지도자, 교계 지도자들이 꼭 기억해야 할 덕목일 듯싶다.”

한국 정치 무한한 잠재력 있어, 부정적이지 않다
전문 기관 통해 미래 정치지도자 양성에 투자해야


-평범한 사람이 현재의 자리까지 올랐다는 시장님의 말씀을 듣고 장상 전 총리서리는 한국사회의 지도자론에 회의가 든다고 하소연했다. “국민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뛰어난 노력이 인정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은 230년의 경험과 역사가 있지만 한국은 걸음마 단계다. 부정적으로 생각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무한한 잠재력이 있고 이를 극대화하면 빠른 시일 내에 진정한 민주주의의 토착화가 가능하리라 본다. 정치인들의 투명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자기 말에 책임지는 책임 있는 지도자상도 필요하다. 또 신호범 의원님은 미국은 인종차별이 있지만 한국은 인간차별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모든 이가 같은 시스템 안에서 하나라고 느낄 수 있는 기준이 성립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민 1세로서 정치 주류에 들어가는 것이 힘든가.

“미국의 정치는 매우 거칠다. 물리적인 몸싸움이나 건물을 부수거나 하지는 않지만 말로써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과정의 연속이다. 백인들과의 싸움에서 절대로 지지 않는 자질과 실력을 갖고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대중적 정치인이 돼야 한다. 1세가 가지고 있는 영어 실력으로도 상당히 힘들다. 말과 행동, 사고방식 모두 미국인이 돼야 한다. 하지만 극복할 수 있다. 결코 우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가 증명해 보이지 않았나. 훌륭한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전통을 세워야 한다. 정치 전문대학원 등의 전문 기관들을 통해 미래지도자를 배양하는 투자가 필요하다.”

“한인 이민사의 새 장” 강석희 시장은 누구
아메리칸 드림 품고 미국행, LA 타임즈 ‘역사적 사건’ 평가


강석희 시장이 당선됐을 당시 LA 타임즈는 정치 평론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강 시장이 한국계 미국인들의 지원만으로는 당선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했다.

특히 전 시장이자 강 씨의 후원자인 베스 크롬의 말을 통해 “어바인 시장 선거 결과는 누구나 시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준 것”이라면서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의 승리와 비견하기도 했다.

이날 함께 참석한 재외동포신문 이형모 대표는 “이민 1세가 주류사회에 진입해 시장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이민 2세나 1.5세의 환경에 비해 1세가 이뤄냈다는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다”라고 평가했다.

1953년 서울 출생인 강 시장은 1977년 고려대를 졸업한 후 막연한 아메리카 드림을 품고 이민을 떠났다. 첫 인터뷰에서 미심쩍어 하는 매니저에게 “석 달만 기회를 주면 당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라는 당찬 제안으로 미국 최대 전자제품 유통회사인 서킷시티에 입사, 뛰어난 실적을 보이며 승승장구했으나, 결국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혀 아픔을 맛봐야 했다.

1992년의 LA 폭동은 가족과 사업밖에 몰랐던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피땀으로 일군 동포들의 재산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는 참상을 보면서 한인 사회의 열악한 정치적 현실에 눈뜨게 되었다. 이후 그는 한미장학재단 회장, 한미 민주당협회 회장, 한미연합회 오렌지 카운티 이사장을 역임하며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가 지금의 이 자리에 있게 된 비결로는 정직과 성실, 그리고 화합을 이끌어내는 온화한 성품이 꼽힌다. 학창 시절 우등상은 많이 받지 못했어도 개근상은 빠짐없이 받았고, 시의원 시절에는 출석률 100%를 기록했다.

2004년 따갑기로 이름난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햇살 아래 5개월 동안 2만 가구를 방문하는 ‘발바리 캠페인’으로 무명 인사에서 일약 어바인 시의원이 되었고 ‘강석희는 약속을 지킨다’는 주민들의 믿음을 얻어 2006년 재선에 성공했다. 마침내 2008년 11월 4일 한인 이민 1세 최초로 직선 시장에 당선됨으로써 2005년 미주 한인 이민사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 워싱턴 주 상원 부의장으로 정치계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기도 했던 신호범 의원은 그에 대해 “강 시장이 어바인 시의회에 한인으로서는 처음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그의 선거캠페인을 지원한 적이 있다”며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항상 미국 주류 사회와 한인 동포사회의 가교 역할을 자임하며 노력하고 있다. 정치적 식견, 비전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풍부해 미국,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어바인시는 어떤 도시인가=4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선정된 치안·교육· 환경의 도시이자 글로벌 기업이 운집해 있는 비지니스 도시다. 교육 수준이 높아 ‘미국의 8학군’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