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스페인의 소설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 키호테 데 라 만차’(Don Quixote de la Mancha)가 세계 유명 작가들이 선정한 사상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었다고 발표했다. 노르웨이 연구소는 세계 50여개국 출신 유명작가 100명에게 세계 문학사상 가장 훌륭한 금자탑 같은 문학작품 10개를 추천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돈 키호테’가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작품을 제치고 최고의 반열에 등극했다.

알파벳 언어 중 발음하는데 기교가 필요한 불란서어, 문법이 까다로운 독일어와 달리 스페니쉬는 비교적 배우기가 쉽다. 철자대로 읽게되어 발음하기가 쉽고, 문법도 수월하여 본토인 스페인, 이베로아메리칸 등 전세계 약 5억명이 사용하는 주요 언어다. 시인으로, 소설가로, 극작가로 인류문명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세르반테스를 스페니쉬 최고 문장가로 꼽는데 이견이 없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극찬하였고, 그를 가리켜 ‘스페니쉬 언어의 마술사’, ‘그의 언어가 곧 스페니쉬다’로 불려질 만큼 존경과 사랑을 여전히 받고 있다. 오죽하면 지금도 스페인 돈 100 페세타(pesetas) 앞면에 그의 초상화를 넣어 기념하고 있을 정도다.

본명이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Miguel de Cervantes Saavedra, 69세로 사망)는 1547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32㎞가량 떨어진 알칼라 데 에나레스(Alcala de Henares)에서, 이발사 겸 외과의사로 사소한 의료행위를 하는 부친의 7자녀 중 네번째로 태어났다. 가족은 여러 마을을 떠돌아다녔으며, 한때 예수회에서 짧은 교육을 받았을뿐, 학교교육을 거의 받은 적이 없다.

터키군과 맞붙었던 레판토 해전에 참전하여 심각한 부상을 당했는데, 가슴에 두군데, 왼손은 평생 사용하지 못하는 불구 신세가 되었다. 지중해 해적에게 납치되어 5년 동안 알제리에서 노예생활을 했고, 그의 나이 37세되던 1584년엔 20세 연하인 카타리나와 결혼하였다. 한때 문학을 버리고 세금징수원으로 생계를 유지했었으나, 1605년 마드리드에서 돈 키호테 1부작을 내었고, 10년후인 1615년 드디어 2부작을 완성하였다.

돈 키오테의 정식명칭은 ‘El Ingenioso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로 ‘재치발랄한 향사(鄕士) 돈 키오테’로 번역할 수 있다. 16세기 전반 에스파냐에서 성행했던 소설의 장르는 기사(騎士)이야기다. 신대륙 발견 당시라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과 모험심, 초인적인 무용담, 사모하는 여성에 대해선 목숨까지 초개처럼 던지는 고결한 사랑, 국왕에 대해선 묻지마 충성 등 지나친 이상주의와 기상천외한 공상이 넘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풍미하고 있던 기사(騎士) 이야기의 비현실적인 것을 타도하기 위해 세르반테스는 정신나간 기사 돈 키오테와 그의 순진한 조수 산초 빤사(Sancho Panza), 한때는 명마였을 비실비실한 로시난테로 패러디하여 풍자했다.

평범하고 투박한 여인에 지나지 않는 둘시네아 토보소를 여왕이라 생각하고 사랑과 충성을 맹세하는 그는 한참 맛이 갔다. 지나가는 여인들에게 공주님이라고하며 절을 하고, 여관을 성이라 생각하며, 풍차를 또 다른 거인 기사라고 생각하며 맹렬히 돌진한다. 사고뭉치 돈 키오테는 결코 죄없고 가난한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다. 낡고 녹슨 창으로 당시의 모순들을 찌르며 종교의 자유, 남녀간 사랑의 자유, 세습제도의 폐지, 정의로운 재판 등을 꿈꾸며 허세를 타파하고 진정한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돈 키호테는 어리석고 시대에 뒤떨어지며 자기 고집만을 내세우는 정신나간 기사인가?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경제불황의 여파가 심각한데 멕시코발 돼지바이러스 문제로 뒤숭숭하다. 벌써 180여명이 사망했고, 전세계로 확산일로에 있어 위험천만하다. 병의 근원을 송두리째 해결하고 불안해 하는 인류를 근심의 늪에서 건져낼 구원의 기사를 초초하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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