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마음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과 늘 함께 계셨습니다. 명절날 예루살렘을 찾으신 주님은 먼저 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는 베데스다 못가로 가셔서 외롭고 가련한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셨지요. 그 외에도 예수님은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시며, 죄인들을 만나주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죄인들의 친구라고까지 불리우던 예수님은 당신의 ‘지구 미션’을 이렇게 요약하신 바 있습니다. “나는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러 왔노라.”

지난 100일 기도회 기간 우리 교회 기도제목 첫 번째가, “예수님을 이전보다 3배 더 사랑하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그 기도제목이 어떻게 응답될 것인가 궁금했는데 과연 주님은 확실하게 응답하고 계심을 봅니다. 주님의 응답은, 너희가 이전보다 나를 더 사랑하기 원한다면, 이 땅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을 이전보다 더 사랑하고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으시기 때문이지요. 그리하여 저는 이제야 주님을 3배 더 사랑한다는 의미를 깨닫습니다.

이렇게 하여 주님은 자연스럽게 우리 교회를 이 땅에서 가장 어두움가운데 절망하며 신음하는 백성들을 섬기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바로 우리의 동족인 북한입니다. “너희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이 불쌍한 내 백성들을 도와다오!” 라고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이 들리는 듯, 주님은 제 마음에 북한에 대한 부담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최근에 우리 교회에 등록하신 탈북자 목사님과 그 따님을 통하여 우리 교회는 자연스럽게 북한자유주간 행사에 부분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마음이 여기에 계시구나” 이것이 이 행사에 참여하며 제가 느낀 소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행사를 순수하게 돕는 분들을 바라보시며 기뻐하시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제게 전달되곤 했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마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받고, 소외되고, 신음하는 사람들과 함께 계심을 저는 이번 기회에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마음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주일 저녁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북한 자유주간 기도회에는 탈북자 대표들을 위시하여 한국과 미국에서 관심있는 귀한 분들이 오셔서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북한 자유주간 행사를 이끌고 있는 디펜스 포럼의 수잔 숄티는 울먹이며 올해는 참으로 특별한 해라고 강조하며 이렇게 교회에서 북한을 위한 기도회가 열린다는 사실 자체가 자기에게는 큰 의미가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라고 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수잔의 모습 가운데 그 동안 교회들에게 외면당해왔던 일종의 설움같은 것이 느껴져서 제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과연 행사를 지켜보면서 수잔의 설움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지난 화요일은 워싱톤 국회의사당 앞에서 북한자유를 호소하는 일종의 대중집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중보기도팀들과 참석하여 개회기도를 인도했습니다. 미국의 상원이나 하원, 한국의 인권관계 대표자들, 탈북자 등이 다수 참석하긴 했지만, 대중집회라고 보기에는 교회나 교민의 협조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의 참상과 탈북자들이 당하는 인권 유린의 심각성을 생각할 때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죄송하고 미국인들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계자들의 항의, 탈북자들의 증언, 각종 전시물, 영화 상영, 시가 행진 등을 통하여 북한 의 참상과 탈북자들의 극심한 고난을 세계에 알리고 당국자들의 주목을 끌고자하는 이번 북한 자유 주간 행사는 분명 언젠가 큰 결실을 맺을 것이라 믿습니다. 수잔은 말합니다. “북한 자유 행사의 다음 장소는 평양이 아닐까 하는 희망을 갖고 늘 행사를 치르죠. 북한 주민이 자유를 누리는 그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저도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