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교회가 故 안영철 목사를 떠나 보내던 26일 아침부터 내린 비는 겨우내 땅 속에 갇혀 있던 씨앗에 새로운 생명을 불러 일으키고 따뜻한 봄을 속삭였다. 이날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에도 슬픔의 비가 내렸지만 그 비는 57년 인생동안 장애 속에 갇혀 있었던 안 목사의 영혼을 깨워 장애없는 새로운 몸과 따뜻한 안식을 허락하는 것 같았다.

4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불편한 몸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동료 목회자들을 부끄럽게 할 정도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 유머와 따뜻한 섬김으로 목회와 교계활동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안 목사를 떠나 보내는 자리에는 그가 활동했던 수많은 단체로부터 약 200여명의 조문객과 화환이 쇄도했다.

특히 시카고지역한인교회협의회, 교역자회, 해외한인장로회, KWMC, 나이스크 운동 등 굵직한 단체의 대표로부터 그가 속했던 해외한인장로회 중앙노회와 산하 교회들, 국제복음선교회, 목사부부합창단, NIU 동문회, 평택대 조기흥 총장 등이 화환을 보내 왔고 김광태 교협회장 등 교계 지도자들이 직접 방문했다.

▲고인이 베이스를 맡아 활동했던 목사부부합창단이 특송을 부르고 있다.
목사부부합창단이 특송을 부를 때에도 그는 예전처럼 베이스 파트를 맡지 못했고 그가 30년간 목회하며 기른 북일리노이한인교회 청년들이 찬송할 때에도 그는 그것을 들을 수 없었다. 북일리노이한인교회 성도들이 눈물로 “존경하는 목사님, 예수님의 삶을 보여 준 목사님”이라 울부 짖어도 그가 늘 그랬듯 성도들의 손을 부여 잡아 줄 수 없었다.

그러나 장례식에서 설교한 신광해 목사(중앙노회 증경노회장, 아가페교회)는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며 잠깐의 헤어짐”이라며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듯이 우리도, 고인이 그러했듯이, 부활을 소망하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자”고 조문객을 위로했다.

안 목사는 1980년에 이민 와 북일리노이한인교회를 개척해 29년간 담임으로 시무하며 크게 성장시키고 최근 교회 건축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는 국제복음선교회 회장, 나이스크운동 러닝 소사이어티의 교수, KWMC 부의장, 해외한인장로회 중앙노회 노회장, 시카고 미주장로회신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왕성히 활동했다.

안 목사는 평택대, 장로회신학대, 아세아연합신학대를 졸업하고 이민 온 후에도 학업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아 디캘브에 소재한 Kishwaukee College를 졸업하고 Northern Illinois University, University of Illinois at Chicago로 진학해 학업을 계속했다. 그는 시카고에서 평택대 동문회장, 장로회신학대 동문회장도 역임한 바 있다.

안 목사의 유가족으로는 사모 안선신, 장녀 혜민, 차녀 혜선이 있다. 이번 장례는 해외한인장로회 중앙노회 장으로 엄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