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철 목사 임종 후,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며 애도하고 있다. 특히 그가 속했던 북일리노이한인교회 성도들, 해외한인장로회 중앙노회원들, 나이스크 관계자들, 장신대 동문회원들, 목사부부합창단원들 등은 빈소를 오가며 애도의 뜻을 전하고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시카고한인교역자회 회장 최문선 목사는 “안 목사님은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분이었고 목회에 자신의 모든 일생을 바친 분이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양들에게 먹일 말씀을 준비하고 기도하던 진실한 목자였고 성경을 4천 구절 암송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한 신앙인이었다. 특히 한인이 거의 없는 디캘브에서 유학생들과 함께 맨손으로 교회를 건축하고 성장시킨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능력이고 축복이었다”고 회고했다.
안영철 목사가 회장으로 활동했던 국제복음선교회의 부회장 명병헌 목사는 “안 목사님은 신체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힘들다는 이민목회만큼은 늘 성령충만함과 원만한 인간관계 속에서 어려움 없이 성공적으로 해 내신 분이다. 제가 아는 안 목사님은 언제나 밝은 표정과 열심으로 목회하시던 분이며 작년에는 설교집까지 출판하며 왕성히 활동하셨는데 먼저 떠나시다니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고인이 예배 회복을 위해 주력했던 나이스크 운동의 중서부지부 본부장 김기철 목사는 “그동안 안 목사님과 동역하며 교제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안 목사님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신 분이다. 그는 자신의 신체 조건이나 열악한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고 몸부림쳤다. 나이스크의 교수로서 섬기고 2004년부터 열린 나이스크 패밀리 컨퍼런스에 단 한번도 빠지지 않은 열심있는 분이셨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에 목숨을 거셨던 그분이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먼저 돌아가셔서 아쉬움을 말로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보다 먼저 그곳에서 주님을 예배하시다가 우리를 영접해 주실 것으로 믿고 안 목사님을 나의 기억 속에 담는다”고 전했다.
안 목사의 장로회신학대 후배이자 현 장로회신학대 동문회장인 조현배 목사는 “안 목사님은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없는 목사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분이셨고 마음의 여유가 많은 분이셨다. 선후배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시카고 교계를 위해서도 정말 귀한 일을 많이 하셨는데 그런 분이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우리는 그분이 심은 복음의 씨앗이 훌륭히 자라 열매 맺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전했다.
고인이 베이스로 활동했던 목사부부합창단의 박인혁 단장은 “몇시간 혹은 며칠을 넘기지 못할 것이란 의사의 말에 충만장로교회 김지석 목사와 함께 임종을 앞두고 4시간동안 찬송을 했다. 그런데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것 같아 임종기도를 했는데 직후에 바로 돌아가셨다. 평소 고인은 유머 감각도 뛰어나고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사람 못지 않게 활동했다. 모든 사람에게 모범이 될 정도로 열정적으로 목회하고 교회까지 잘 건축했는데 부르심을 받아 안타깝다. 특히 국제복음선교회의 회장을 맡아 시카고에 대회를 유치해 내기까지 했는데 대회를 앞두고 돌아가셔서 안타까움이 더 크다”고 전했다.
그러나 안선신 사모는 “제가 오히려 감사하다. 안 목사님은 평생을 목회를 위해 헌신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떠나셨다. 29년이나 한 교회에서 목회하며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쳤으니 오히려 감사하다”라며 애써 담담한 모습이다.
안 사모는 새문안교회 노근호 집사, 김판순 권사의 장녀로 1979년 장로회신학교를 갓 졸업한 안 목사를 만나 1980년 강신명 목사의 주례 아래 결혼하고 곧장 시카고로 이민와 북일리노인한인교회를 개척했다. 동생 노혜신 사모, 노정신 사모도 각각 최문선 목사, 한인국 목사와 결혼하면서 세 딸이 모두 이민목회자 사모가 됐다.
시카고한인교역자회 회장 최문선 목사는 “안 목사님은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분이었고 목회에 자신의 모든 일생을 바친 분이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양들에게 먹일 말씀을 준비하고 기도하던 진실한 목자였고 성경을 4천 구절 암송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한 신앙인이었다. 특히 한인이 거의 없는 디캘브에서 유학생들과 함께 맨손으로 교회를 건축하고 성장시킨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능력이고 축복이었다”고 회고했다.
안영철 목사가 회장으로 활동했던 국제복음선교회의 부회장 명병헌 목사는 “안 목사님은 신체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힘들다는 이민목회만큼은 늘 성령충만함과 원만한 인간관계 속에서 어려움 없이 성공적으로 해 내신 분이다. 제가 아는 안 목사님은 언제나 밝은 표정과 열심으로 목회하시던 분이며 작년에는 설교집까지 출판하며 왕성히 활동하셨는데 먼저 떠나시다니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고인이 예배 회복을 위해 주력했던 나이스크 운동의 중서부지부 본부장 김기철 목사는 “그동안 안 목사님과 동역하며 교제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안 목사님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신 분이다. 그는 자신의 신체 조건이나 열악한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고 몸부림쳤다. 나이스크의 교수로서 섬기고 2004년부터 열린 나이스크 패밀리 컨퍼런스에 단 한번도 빠지지 않은 열심있는 분이셨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에 목숨을 거셨던 그분이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먼저 돌아가셔서 아쉬움을 말로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보다 먼저 그곳에서 주님을 예배하시다가 우리를 영접해 주실 것으로 믿고 안 목사님을 나의 기억 속에 담는다”고 전했다.
안 목사의 장로회신학대 후배이자 현 장로회신학대 동문회장인 조현배 목사는 “안 목사님은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없는 목사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분이셨고 마음의 여유가 많은 분이셨다. 선후배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시카고 교계를 위해서도 정말 귀한 일을 많이 하셨는데 그런 분이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우리는 그분이 심은 복음의 씨앗이 훌륭히 자라 열매 맺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전했다.
고인이 베이스로 활동했던 목사부부합창단의 박인혁 단장은 “몇시간 혹은 며칠을 넘기지 못할 것이란 의사의 말에 충만장로교회 김지석 목사와 함께 임종을 앞두고 4시간동안 찬송을 했다. 그런데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것 같아 임종기도를 했는데 직후에 바로 돌아가셨다. 평소 고인은 유머 감각도 뛰어나고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사람 못지 않게 활동했다. 모든 사람에게 모범이 될 정도로 열정적으로 목회하고 교회까지 잘 건축했는데 부르심을 받아 안타깝다. 특히 국제복음선교회의 회장을 맡아 시카고에 대회를 유치해 내기까지 했는데 대회를 앞두고 돌아가셔서 안타까움이 더 크다”고 전했다.
그러나 안선신 사모는 “제가 오히려 감사하다. 안 목사님은 평생을 목회를 위해 헌신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떠나셨다. 29년이나 한 교회에서 목회하며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쳤으니 오히려 감사하다”라며 애써 담담한 모습이다.
안 사모는 새문안교회 노근호 집사, 김판순 권사의 장녀로 1979년 장로회신학교를 갓 졸업한 안 목사를 만나 1980년 강신명 목사의 주례 아래 결혼하고 곧장 시카고로 이민와 북일리노인한인교회를 개척했다. 동생 노혜신 사모, 노정신 사모도 각각 최문선 목사, 한인국 목사와 결혼하면서 세 딸이 모두 이민목회자 사모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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