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봄철 교회 대청소를 하는 날인데, 참 많은 분들이 오셔서 교회 구석구석을 아주 정갈하고 깔끔하게 치워 주셨습니다. 어제 아침, 청소를 시작하기 전, 사무실에 있다가 친교실로 들어가는데 주방 쪽에서 곽종문 장로님께서 제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시는 겁니다. 그래서 무심코 “아, 장로님이 청소하시러 오셨구나”하다가, 갑자기, “아니지, 장로님은 돌아가셨는데...”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저분이 어떻게 오셨나?’.. 하고 갸우뚱하는 사이에 가까이 다가오신 분을 다시 보니 황병국 장로님이셨습니다. 제가 황장로님을 곽장로님인줄로 잘못 본 것입니다.

그런데 참 기이한 것은 비록 제가 잘못 본 일시적인 현상이긴 했지만 돌아가신 분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이번 주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그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에 대한 약속... 이런 생각을 여느 때 보다 깊이 한 까닭이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우리가 부활한 후에야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을 받으니까 우리의 모습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때에 만나고 싶은 이들, 보고픈 이들을 만나고 싶고, 그렇게 서로 만났을 때, 여기서 그랬듯이 그냥 반갑고 좋았으면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부활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얼마 전 이운봉 권사님께서 나눠주신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천국에서 보낸 편지 형식으로 쓰여 진 글이 생각나서 여러분과 나눕니다. 아마 어느 분이 상상(fiction)으로 쓴 글이지만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글입니다.
* * * * *
(김수환 추기경이 천국에서 보내신 편지)

사랑하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베푼 보잘 것 없는 사랑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선택된 자로 살아온 제가 죽은 후도 이렇듯 많은 분들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니 나는 행복에 겨운 사람입니다. 감사하며 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들에게 생전에 하지 못한 마지막 부탁이 하나 있어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불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보라는 달은 안보고 손가락만을 쳐다본다."
달은 하나님이시고 저는 손가락입니다.

제가 그나마 그런대로 욕 많이 안 먹고 살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분의 덕분입니다.

성직자로 높은 지위에 까지 오른 것도...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다 그 분의 덕입니다.

속으론 겁이 나면서도... 권력에 맞설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다 그 분의 덕입니다.

부자들과 맛있는 음식 먹을 수 있는 유혹이 많았지만...
노숙자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다 그 분의 덕입니다.

화가 나... 화가 치밀 때도.... 잘 참을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분의 덕입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유머로 넘긴 것도...
사실은 다 그 분의 덕입니다.

나중에 내가 보고도 약간은 놀란 내가 쓴 글 솜씨도...
사실은 다 그 분의 솜씨였습니다.

내가 한 여러 말들...
사실은 2천년전 그분이 다 하신 말씀들입니다.

그 분의 덕이 아닌...
내 능력과...
내 솜씨만으로 한 일들도 많습니다.

빈민촌에서 자고 가시라고 그렇게 붙드는 분들에게...
적당히 핑계대고 떠났지만...
사실은 화장실이 불편할 것 같아 피한 것이었습니다.

늘 신자들과 국민들만을 생각했어야 했지만...
때로는 어머니 생각에 빠져...
많이 소홀히 한 적도 있습니다.

병상에서 너무 아파...
신자들에게는 고통 중에도 기도하라고 했지만...
정작 나는 기도를 잊은 적이 있습니다.

이렇듯 저는 여러분과 다를 바 없는...
아니 훨씬 못한...
나약하고 죄 많은 인간에 불과합니다.

이제... 저를 기억하지 마시고.... 잊어 주십시오.
대신... 저를 이끄신 그 분...
죽음도 없고, 끝도 없으신 그 분을 쳐다보십시오.
그 분만이 우리 모두의 존재 이유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제가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말..."서로 사랑하십시오"...
사실 제가 한 말이 아니라...
그 분의 말씀이십니다.
저는 손가락 일뿐입니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그 분을 쳐다보십시오.
천국에서 김수환 (여기서는 더 이상 추기경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