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춘임 씨를 돌보아 오던 한인교회 성도들이 7일 글렌뷰의 한 한국 음식점에 모였다. 6년동안 이 씨가 수감된 교도소를 두달에 한번씩 방문하며 딸처럼 돌보아 오던 팔로스연합감리교회 정은해 목사, 늘 편지를 주고 받으며 따뜻한 은혜를 나누어 온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 이춘화 전도사, 이 씨가 수감되기 전 세례받고 신앙생활을 한 글렌브룩연합감리교회의 백영민 목사 등 8명은 이 씨의 가석방과 새 삶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했다.

이 씨는 80년대에 주한미군과 국제결혼하며 이민 온 후, 남편과의 불화와 생활고를 못이겨 1999년 당시 11세였던 딸과 함께 수면제를 과다복용해 동반자살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치고 2002년 8년형을 받았다. 한번의 잘못된 생각으로 이 씨의 삶은 더욱 심각한 불행으로 빠져 들었지만 하나님은 그녀를 그렇게 버리지 않았다.

한인교회들이 힘을 모아 보석금을 마련하고 변호사도 선임했다. 실상 한인사회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던 그녀는 글렌브룩교회에 출석하며 세례받고 신앙인이 됐다. 그녀가 형을 언도받고 수감된 후에도 성도들의 사랑과 돌봄은 식지 않았다. 이 씨는 교도소에서 1천명이 넘는 수감자 중 유일한 동양인이었지만 한인교회의 지치지 않는 기도와 돌봄에 교도소 생활에 잘 적응해 갔다.

수감 기간 6년동안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정기적으로 그녀를 면회한 정은해 목사가 교도소에선 이 씨의 아버지로 통하는 유명인사였다고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찾아 오는 정 목사는 이 씨에겐 자랑거리였다. 오늘 가석방된 이 씨에게 동료 수감자들은 “오늘 네 아버지가 널 데리러 오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춘화 전도사는 이 씨에게 정기적으로 한영으로 된 신문을 보내 주었는데 그것도 다른 수감자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한글을 잘 알지 못해도 한인교회의 따뜻한 사랑이 부러웠던 것이다. 이 씨는 “같은 민족인 한인들이 나를 돌보아 준다는 사실을 교도관이나 동료들도 알게 됐고 그들은 우리 민족이 가진 따뜻함에 참 감동했어요”라고 전했다.

가석방 후 이 씨의 삶은 이제 새롭게 시작됐다. 그러나 새로운 삶인만큼 두려움이 클 수 밖에 없다. 특히 한번의 실수로 생긴 전과 기록이 그녀의 삶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이 씨는 위생사 자격증, 네일아트 자격증을 교도소 안에서 취득했으며 이제부터 뷰티 스쿨을 다니며 새로운 미래를 열어 보려 한다. 백영민 목사는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삶의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한인교회 성도들이 나서서 이 씨에게 도움이 될만한 직장 정보나 거주 정보를 주변에서 찾아 알려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은 이춘임 씨를 위해 모금된 헌금 3천불이 전달됐다. 이 씨는 “전 너무나도 운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는 복된 사람입니다. 그런 일을 통해서 전 하나님을 만났고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저를 도와 주신 분들에게 실망을 끼치지 않아야 하는데, 너무 긴장되고 떨립니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당분간 정은해 목사의 집에 머물며 교회는 글렌브룩으로 출석한다. 이 씨에게 도움의 손길을 나누고 싶은 한인은 정은해 목사(630-404-6827), 백영민 목사(847-205-9642)에게 연락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