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y Oats 가 쓴 "Open my eyes"라는 책에는 이런 기도문이 있습니다. "내 눈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내 귀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내 코가 주의 향내를 맡게 하소서. 내 입이 주의 말씀을 말하게 하소서. 내 손이 주를 섬기게 하소서. 내 마음이 주를 생각하게 하소서....나의 주님, 나의 전부를 드리나이다." 이 기도가 고난 주간을 맞이하는 저의 기도가 되고 있습니다. 새벽마다 성전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 기도를 드리노라면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울컥 넘어오며 이내 눈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1980년 4월 5일 큰 감격속에 오열하며 침례를 받은 지, 오늘 정확하게 29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30년간 주님과 꾸준히 교제를 해오며, 마음속에 점점 뚜렷해지는 저의 갈망 중의 하나가 거룩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위하여 더 구별되고 싶고, 더 내 자신을 주께 드리고 싶은 갈망이지요. 물론 아직도 먼 성화의 길이긴 하지만 거룩하려는 몸부림 속에서 점점 더 행복해하는 저를 발견합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그의 회상록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하여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 그 안에는 황홀하도록 사랑스러운 것, 지고의 아름다움과 호감만이 존재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이었다. 지상의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순결하여, 그에 비하면 나머지 모든 것이 진창과 찌꺼기처럼 보였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그 무엇을 추구해가는 사람들입니다,

거룩은 무엇일까요? 거룩은 무엇보다 깨끗함일 것입니다. 나의 인격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불결한 부분이 하나도 없게 하겠다는 결심입니다. 100 % 순결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을 사모하는 자들은 죄에 민감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무엇보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생각합니다. 어떤 목사님의 글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진짜 깨달았는지 테스트하는 간단한 질문 한가지가 있다. '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당신보다 더 악질인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십자가의 예수님을 정말 만난 사람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한 자기 죄를 알기에 남의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맞는 말씀입니다. 자기 눈의 들보를 본 사람은 남의 눈에 있는 티에 대하여 말할 겨를이 없지요. 이번 고난 주간, 저는 더욱 심령의 눈을 떠서 나의 모든 숨은 죄들을 더욱 선명히 볼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이 죄들을 십자가 위에 예수님과 함께 못박으며 흘리신 보혈로 더욱 정결함을 입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거룩은 또한 자신을 구별하여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나라와 제사장으로 주께 바쳐진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 '바치다' 라는 뜻은 바쳐 없애버리다 라는 의미로 "도로 찾아올 수 없는 것을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이것을 나중에 돌이키지 않는 것입니다." (레 27:28, 앤드류 머레이) 주님을 사랑하기에 돌이킬 수 없는 심정으로 자신을 주께 드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제 자신에 대한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철저하게 주님의 주권에 순복하여 살아갈 뿐입니다. 이번 고난 주간 저는 새롭게 결단합니다." 나의 전부를 주께 드리나이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드리고 또 드려도 그저 부족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만 입이 있으면 만 입을 가지고 주님을 찬송하며 만 손이 있으면 만 손을 드려 주님을 섬기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거룩함은 신랑되신 주님께서 자신의 신부에 대하여 가지고 계신 비젼입니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신부를 소유하는 것은 우리 주님의 꿈입니다. 이번 고난 주간,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우리의 전부를 주께 드리는 마음으로 거룩을 결단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