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회에서 트럭 한 대가 빠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침 시간이라 교회에서 잠시 쉬고 나오는 차인가 보다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는데, 차 뒤편에 그려진 그림과 문구가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Sharing Hands’라는 글과 오병이어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겁니다. 자신의 도시락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고 했던 성경 속 소년, 그 작은 동기가 오병이어 기적의 출발점이 되었던 바로 그 소년의 손이 떠올랐습니다.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이 도전되었습니다. 이웃 돕는 일을 위해 트럭 한 대를 운영할 정도라니 말입니다. 늘 별 생각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치던 그 교회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주님의 삶은 결국 나눔의 삶이었습니다.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신 후 계속해서 많은 것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영혼이 목마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나누어 주셨고, 육신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능력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나눔은 100% 순수한 것이었습니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도식적이고 형식적인 나눔을 행하던 바리새인들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습니다. 결국 주님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나눠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찢기신 몸으로 피와 물을 다 쏟으시면서 말입니다.

유럽의 한 교회 앞 마당엔 주님의 동상이 서 있답니다. 그런데 그 동상의 모습이 좀 안쓰럽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맞아 주님의 양 팔이 사라져 버린 겁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그 주님의 동상을 복원하지 않고 그냥 두고 있습니다. 재정적 어려움 때문이 아닙니다. 그 동상을 보는 사람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어본답니다. “저 동상을 복원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고 합니다. “주님은 다 나눠 주셨잖아요. 이제는 우리가 저 사라진 부분의 팔이 되어 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야지요.”

우리도 주님의 팔이 되어 나눔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나눔의 손길이 위축되어 가고 있는 이 때에 더 큰 손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의 나눔이 생명을 낳았다면 우리의 나눔은 최소한 사랑을 낳을 수 있을 겁니다. 교회 안에 나눔의 아이디어와 실천이 넘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