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처음 자동차가 선보인 것은 1893년 듀리에 형제에 의해서입니다. 말과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 이었던 당시에 말없는 마차는 생각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생각(발상)이었습니다. 말없이 마차가 움직일 수 없다는 절대 진리와 같은 상식이 무참히 무너진 것입니다. 마차는 말없이 움직일 수 없다는 불가능과 말없이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의 대결에서 가능성이 이긴 것입니다. 자동차가 처음으로 선보인 직후 수백여 개의 고객 맞춤식 자동차 업체가 생겨났습니다.

그 시대의 자동차는 멋진 발명품이었지만, 호화스럽고 사치스런 물건이었습니다. 어떤 모델은 외출하는 멋쟁이 여성을 위해 뒷좌석에 전기고대기까지 갖추었고, 품질은 믿을만한 수준이 못되었음에도 가격은 미국평균 가계수입의 두 배인 1500달러에 달할 정도로 비쌌습니다. 일부의 사치품이 된 자동차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자동차 반대운동가 들은 도로를 파괴하고, 가시철망으로 주차된 자동차를 묶어 놓기도 했으며 자가운전 사업가와 정치가에 반대하는 보이콧운동을 벌였습니다.

자동차에 대한 여론 악화는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된 우드로 윌슨이 “그 어떤 것도 자동차보다 사회적 감정을 확산시킨 것은 없다. 오만한 부의 상징인 자동차는...”라고 말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리터러리 다이제스트 Literary Digest)지는 “현재 부유층의 사치품인 ‘말없는 마차’는 언젠가 그 가격이 떨어지겠지만 결코 자전거처럼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이 산업은 당시 규모가 작고 그다지 전망이 밝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헨리포드는 그렇게 믿지 않았습니다. 자동차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대다수의 여론이요 진리로 굳혀져 있는 상황 속에서 헨리포드 한 사람은 그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5백여 개의 자동차 업체들이 자동차를 고객 맞춤식으로 주문생산하고 있을 때 헨리포드는 1908년 모델T를 내놓았습니다. 그는 모델T를 ‘대중을 위한, 최고의 자재로 만든 자동차’라고 부르며 자동차의 대중화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검정색 단일 차종이었지만 내구성이 믿을만했고, 수리가 쉬었습니다. 특히 가격은 많은 사람이 구입할 수 있는 수준에 책정되었습니다. 1908년 최초의 모델T는 기존 자동차 가격의 절반 수준인 850달러였고, 1909년에는 609달러로 떨어졌으며, 1924년에는 290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그 당시 마차 가격은 약400달러 수준이었습니다.

1909년 광고용 안내책자에는 “포드가 하는 것을 보라, 낮은 가격에 고품질의 자동차”라는 광고 문구가 등장합니다. 자동차의 대중화를 내다본 포드는 자동차의 대량생산과 품질고도화에 대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안해냅니다. 포드는 자동차를 고도로 표준화시키고, 옵션을 한정하고, 교환 가능한 부품을 제공함으로써 혁신적인 조립라인을 설계해 인력을 숙련공에서 일반 노동자로 대체할 수 있었습니다. 효율적인 생산시스템을 통해 자동차 생산 기간을 21일에서 4일로 단축하였으며, 노동시간을 60%줄였습니다. 따라서 원가도 대폭 절감되어 포드의 대중화 꿈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모델T는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포드의 시장 점유율은 1908년 9%에서 1921년 61%로 뛰어 올랐으며 1923년경 미국 대부분의 가정은 자동차를 소유하게 되었고 모델T는 마차를 대신하여 미국의 주된 교통수단이 되었습니다.

인생은 끝없는 불가능과의 싸움입니다. 포드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던 불가능한 생각에 함께 표류하는 인생을 살지 않고 그 불가능을 뒤엎고 가능성의 꿈을 현실화시켜 불가능을 이긴 삶을 살았습니다. 불가능에 부딪히게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보편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그 불가능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승리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특별한 꿈과 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느 시대에서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막고 있는 불가능을 뒤엎고 가능성을 보여주는 승리와 자유의 선구자요 개척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