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번 낙선 세번째 당선
첫번째 낙선되고 두 번째 낙선되었을 때 섭섭한 마음이 들 수 도 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그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은 교계동료들이나 선배 후배 안면도 많이 생기고 오히려 더 잘된 것 같다.
3개의 순복음교단끼리 화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회장 선거에 세 번이나 나가는 바람에 세 교단(순복음 북미총회, AG 한국총회, AG 한미총회) 관계가 많이 좋아졌다. 12월 1일경 송년파티에 세 교단이 다 모일 것 같다. 내년도에는 체육대회도 같이 할 것 같다.
친구따라 순복음교회에 다니게 됨
미국에는 78년도에 왔고 82년도에 뉴욕에 와서 교회에 처음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순복음신학을 하게 되고 목사안수도 받고 교회도 개척하게 되었다. 현재 19년째 목회를 하고 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쓰실 계획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타주에 있을 때 괜찮은 직장에 있었고 집사람도 전문직이라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다 뉴욕에 있는 친구와 함께 비즈니스하려고 뉴욕에 오게 되었다. 그 친구가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니었는데 순복음교회를 다녔다. 그래서 친구따라 교회가게 되었다. 어느 날 황수복 목사가 심방을 왔을 때 ‘언젠가는 내 발로 가게 될 날도 있을 지도 모릅니다.’라고 했는데 기도하시더라. 근데 내가 그 때 ‘아멘’을 했다. 입으로 시인한 것이 된 것 같다.
헤브론 기도원에서 눈물로 죄고백, 거듭남
예수피 예수 십자가는 들었는데 그 의미, 왜 그렇게 그게 중요한지는 몰랐다. 권사님이 아들이 신학교 다닐 때 읽었던 것이라며 성경책을 주셨다. 마 6장을 읽다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말씀을 읽는데 내가 지금까지 추구하던 게 거기 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수요예배, 금요예배. 다 쫓아다녔는데 그 때는 예수님 못 만났다. 그러다 김남수 목사님이 지으신 헤브론 기도원 가서 기도하다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하나 내 죄를 고백하게 되었다. 그 때 ‘(요 16:9)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는 말씀을 받았다. 그 때 죄사함 받은 기쁨으로 두 달 만에 술 담배 다 끊었다.
물 세례 받고 성령세례 받고 삶이 완전 바뀌었다. 그 후로 1-2년간 신앙생활 열심히 했다. 그러다 ‘왜 뉴욕에 불러서 이 일을 하게 하는 줄 아느냐? 모난 돌을 다듬는 것이다.’라는 음성을 듣고 소명감을 갖게 되었는데 신학교를 가는 문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금식기도 20일
그 때 최자실 목사님. 조용기 목사 장모가 생전에 부흥회 인도하러 오셨는데 기도한 번 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 때 기도는 안해주시고 하는 말이 “금식 20일 하라. 그래서 변하지 않으면 가라. 시시한 목사 할려면 가라.”였다. 그것을 주님이 주신 것으로 믿고 20일 금식을 시작했다. 마지막 18,19,20일째 되는 삼일동안은 교회가서 기도를 했다. 그 때 매일 한말씀씩 받았다. 첫번째는 “너가 부모 형제 일가친척을 나보다 더 사랑하면 될 수 없다”, 두번째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세번째는 “믿고 구한 것은 받을 줄로 알라.”였다. 그때 확신을 갖고 순복음 신학대를 가게 되었다.
브루클린에서 개척 시작
개척을 딴 데서 해야 하는데 82년도 교회생활에서 86년도 교회개척하려니 신앙생활 자체가 너무 짧았다. 그 때, 한진관 목사, 장영춘 목사 등 베테랑 목사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가운데서 실수하면 장래가 없을 것 같아 한인이 거의 없는 브루클린 지역을 개척지로 정했다. 훈련한다 생각하고 교회당을 찾다가 미국교회를 빌려쓰게 되었다. 그렇게 주일저녁 6시 예배를 드리다가 1년만에 주일아침 9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교회당은 1000석 들어가는 좋은 곳이었다.
2-3년되니 성인이 80명. 어린이까지 하면 1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다. 그 때 교만하지 말고 겸손했어야 했다. 미국 목사한테 더 큰 거 사서 가라고 했다가 핍박이 오기 시작했다. 나가라고 해서 현재 교회당을 렌트하게 되었다. 1층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니 형편이 없었다. 그래서 교인들이 다 떨어지고 20여명 남았다. 그런데 또 열심히 하니 60-70명이 모이고 그 예배당을 사게 되었다. 90년에 렌트로 들어가서 93년도에 그 건물을 매입했다.
4개 민족이 한 예배당에
한인교회는 크게 부흥하지 못했다. 그러나 봉헌 예배 드리고 난 후 러시아 사람들이 들어왔다. 렌트비 안받고 쓰게 했는데 2-3년 만에 4-500명 되서 더 큰 교회로 이전했다. 3년 되니까 이번에는 미국 목사가 와서 또 쓰게 했다. 이 교회는 지금도 같이 쓰고 있다. 또 3년 있으니까 중국 교회도 들어오고 좀 있으니까 스패니쉬 교회도 들어오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주일예배는 오전엔 한국교회 2번, 12시 반에는 미국교회, 3시에는 중국교회, 6시에는 스패니쉬 교회 이렇게 4개 민족이 같은 예배당에서 드린다.
주중에도 월요일에는 스패니위 기도모임, 화요일에는 미국교회, 수요일에는 한국교회, 목요일은 중국교회, 토요일은 한국학교가 사용한다. 유치원도 중국반이 2개, 한국반이 1개 운영되고 있다. 방과후 학교도 운영되기 때문에 하루도 닫히는 날 없이 액티브하게 돌아간다.
먼나라 선교만 선교가 아니라 바로 우리 주위에 있는 민족들 예배드리게 하는 것도 선교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더라. 새벽기도를 하는데 성령님께서 10년 20년 보는 거야. 앞으로는 다 민족 수용하는 커뮤니티 리더가 정말 영향력 있는 리더가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굉장히 귀하게 여긴다. 모든 커뮤니티를 품 안에 품고 갈 수 있는 것이 우리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중국 사람 영혼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장소협력하면 중국목사가 그 영혼 구하는 것 아닌가.
삼부자가 목회
큰 아들이 부목사로 영어권을 이끌고 작은 아들은 전도사로 함께 목회를 하고 있다. 삼부자가 다 이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이 지역 자체가 한인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교회가 다이크 하이셋 중심에 있다. 앞으로는 우리교회가 중앙에 있으니 센터삼아 다 모일 것이라고 믿는다.
4대 목회 목표
첫째, 예배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하니까 큰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 큰 교회당을 구상 중이다.
둘째, 선교다. 내 오른팔을 항상 선교에 관심을 둔다. 국내 선교, 해외선교를 계획하고 있다.
셋째, 교육이다. 우리 자녀들을 잘 길러야 한다. 사립학교를 세우고 싶다. 재정적인 것이 필요하다. 유치원부터 시작했는데 발전시켜서 사립학교까지 세우겠다.
넷째, 교회는 봉사해야 한다. 지역적인 봉사로 가장 중요한 것이 노인복지이다.
회장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겠다
회장님이 어떻게든 1년 동안 성공적으로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역할이다. 회장이 아버지 같은 자리라면 부회장은 어머니 같은 자리다. 그런 원리적인 면에서 적극적으로 돕겠다. 내 생각을 주장하지 않고 회장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겠다.
다른 종교들은 비진리를 가지고도 열심을 내고 있다. 예수는 꼭 믿어야 하는 것이고 생명걸고 전해야 하는분이다. 올 한 해는 한 영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뉴욕의 성도들을 구원하는데 전 교계가 함께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
첫번째 낙선되고 두 번째 낙선되었을 때 섭섭한 마음이 들 수 도 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그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은 교계동료들이나 선배 후배 안면도 많이 생기고 오히려 더 잘된 것 같다.
3개의 순복음교단끼리 화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회장 선거에 세 번이나 나가는 바람에 세 교단(순복음 북미총회, AG 한국총회, AG 한미총회) 관계가 많이 좋아졌다. 12월 1일경 송년파티에 세 교단이 다 모일 것 같다. 내년도에는 체육대회도 같이 할 것 같다.
친구따라 순복음교회에 다니게 됨
미국에는 78년도에 왔고 82년도에 뉴욕에 와서 교회에 처음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순복음신학을 하게 되고 목사안수도 받고 교회도 개척하게 되었다. 현재 19년째 목회를 하고 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쓰실 계획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타주에 있을 때 괜찮은 직장에 있었고 집사람도 전문직이라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다 뉴욕에 있는 친구와 함께 비즈니스하려고 뉴욕에 오게 되었다. 그 친구가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니었는데 순복음교회를 다녔다. 그래서 친구따라 교회가게 되었다. 어느 날 황수복 목사가 심방을 왔을 때 ‘언젠가는 내 발로 가게 될 날도 있을 지도 모릅니다.’라고 했는데 기도하시더라. 근데 내가 그 때 ‘아멘’을 했다. 입으로 시인한 것이 된 것 같다.
헤브론 기도원에서 눈물로 죄고백, 거듭남
예수피 예수 십자가는 들었는데 그 의미, 왜 그렇게 그게 중요한지는 몰랐다. 권사님이 아들이 신학교 다닐 때 읽었던 것이라며 성경책을 주셨다. 마 6장을 읽다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말씀을 읽는데 내가 지금까지 추구하던 게 거기 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수요예배, 금요예배. 다 쫓아다녔는데 그 때는 예수님 못 만났다. 그러다 김남수 목사님이 지으신 헤브론 기도원 가서 기도하다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하나 내 죄를 고백하게 되었다. 그 때 ‘(요 16:9)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는 말씀을 받았다. 그 때 죄사함 받은 기쁨으로 두 달 만에 술 담배 다 끊었다.
물 세례 받고 성령세례 받고 삶이 완전 바뀌었다. 그 후로 1-2년간 신앙생활 열심히 했다. 그러다 ‘왜 뉴욕에 불러서 이 일을 하게 하는 줄 아느냐? 모난 돌을 다듬는 것이다.’라는 음성을 듣고 소명감을 갖게 되었는데 신학교를 가는 문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금식기도 20일
그 때 최자실 목사님. 조용기 목사 장모가 생전에 부흥회 인도하러 오셨는데 기도한 번 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 때 기도는 안해주시고 하는 말이 “금식 20일 하라. 그래서 변하지 않으면 가라. 시시한 목사 할려면 가라.”였다. 그것을 주님이 주신 것으로 믿고 20일 금식을 시작했다. 마지막 18,19,20일째 되는 삼일동안은 교회가서 기도를 했다. 그 때 매일 한말씀씩 받았다. 첫번째는 “너가 부모 형제 일가친척을 나보다 더 사랑하면 될 수 없다”, 두번째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세번째는 “믿고 구한 것은 받을 줄로 알라.”였다. 그때 확신을 갖고 순복음 신학대를 가게 되었다.
브루클린에서 개척 시작
개척을 딴 데서 해야 하는데 82년도 교회생활에서 86년도 교회개척하려니 신앙생활 자체가 너무 짧았다. 그 때, 한진관 목사, 장영춘 목사 등 베테랑 목사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가운데서 실수하면 장래가 없을 것 같아 한인이 거의 없는 브루클린 지역을 개척지로 정했다. 훈련한다 생각하고 교회당을 찾다가 미국교회를 빌려쓰게 되었다. 그렇게 주일저녁 6시 예배를 드리다가 1년만에 주일아침 9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교회당은 1000석 들어가는 좋은 곳이었다.
2-3년되니 성인이 80명. 어린이까지 하면 1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다. 그 때 교만하지 말고 겸손했어야 했다. 미국 목사한테 더 큰 거 사서 가라고 했다가 핍박이 오기 시작했다. 나가라고 해서 현재 교회당을 렌트하게 되었다. 1층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니 형편이 없었다. 그래서 교인들이 다 떨어지고 20여명 남았다. 그런데 또 열심히 하니 60-70명이 모이고 그 예배당을 사게 되었다. 90년에 렌트로 들어가서 93년도에 그 건물을 매입했다.
4개 민족이 한 예배당에
한인교회는 크게 부흥하지 못했다. 그러나 봉헌 예배 드리고 난 후 러시아 사람들이 들어왔다. 렌트비 안받고 쓰게 했는데 2-3년 만에 4-500명 되서 더 큰 교회로 이전했다. 3년 되니까 이번에는 미국 목사가 와서 또 쓰게 했다. 이 교회는 지금도 같이 쓰고 있다. 또 3년 있으니까 중국 교회도 들어오고 좀 있으니까 스패니쉬 교회도 들어오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주일예배는 오전엔 한국교회 2번, 12시 반에는 미국교회, 3시에는 중국교회, 6시에는 스패니쉬 교회 이렇게 4개 민족이 같은 예배당에서 드린다.
주중에도 월요일에는 스패니위 기도모임, 화요일에는 미국교회, 수요일에는 한국교회, 목요일은 중국교회, 토요일은 한국학교가 사용한다. 유치원도 중국반이 2개, 한국반이 1개 운영되고 있다. 방과후 학교도 운영되기 때문에 하루도 닫히는 날 없이 액티브하게 돌아간다.
먼나라 선교만 선교가 아니라 바로 우리 주위에 있는 민족들 예배드리게 하는 것도 선교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더라. 새벽기도를 하는데 성령님께서 10년 20년 보는 거야. 앞으로는 다 민족 수용하는 커뮤니티 리더가 정말 영향력 있는 리더가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굉장히 귀하게 여긴다. 모든 커뮤니티를 품 안에 품고 갈 수 있는 것이 우리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중국 사람 영혼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장소협력하면 중국목사가 그 영혼 구하는 것 아닌가.
삼부자가 목회
큰 아들이 부목사로 영어권을 이끌고 작은 아들은 전도사로 함께 목회를 하고 있다. 삼부자가 다 이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이 지역 자체가 한인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교회가 다이크 하이셋 중심에 있다. 앞으로는 우리교회가 중앙에 있으니 센터삼아 다 모일 것이라고 믿는다.
4대 목회 목표
첫째, 예배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하니까 큰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 큰 교회당을 구상 중이다.
둘째, 선교다. 내 오른팔을 항상 선교에 관심을 둔다. 국내 선교, 해외선교를 계획하고 있다.
셋째, 교육이다. 우리 자녀들을 잘 길러야 한다. 사립학교를 세우고 싶다. 재정적인 것이 필요하다. 유치원부터 시작했는데 발전시켜서 사립학교까지 세우겠다.
넷째, 교회는 봉사해야 한다. 지역적인 봉사로 가장 중요한 것이 노인복지이다.
회장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겠다
회장님이 어떻게든 1년 동안 성공적으로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역할이다. 회장이 아버지 같은 자리라면 부회장은 어머니 같은 자리다. 그런 원리적인 면에서 적극적으로 돕겠다. 내 생각을 주장하지 않고 회장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겠다.
다른 종교들은 비진리를 가지고도 열심을 내고 있다. 예수는 꼭 믿어야 하는 것이고 생명걸고 전해야 하는분이다. 올 한 해는 한 영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뉴욕의 성도들을 구원하는데 전 교계가 함께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