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밤으로 기억한다. 4년 반 동안을 같이 일해 왔던 여직원이 결혼을 하게되어 회사를 떠나는 날이었다. 송별회를 마치고 여느 때보다 조금은 늦은 시간에 동네 기차역의 주차장에 도착했었다. 저녁 8시 쯤이었을 것이다. 자동차의 시동을 걸자 한국어 방송이 흘러 나왔다. AM 1660이었다. 처음 듣는 프로그램이 흘러 나왔다. 정 아무개라는 사람이 진행하는 프로였다. 프로그램의 이름도, 진행자의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진행자의 성만 기억날 뿐이다. 진행자의 이름도, 프로그램명도 알려고 하면 알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다.
진행자의 말로 미루어 보아 , 그 전에 ‘한국일보를 비난하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던 것 같았다. ‘그 방송을 듣고 방송국에 격려의 전화를 걸어오신 청취자들이 많았다’고 운을 띄운 뒤, ‘물론 비난의 전화를 걸어 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예의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몰아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비난의 전화를 걸어 온 남자와 여자의 전화 내용을 녹음해 두었으니, 언제 방송으로 내보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그러더니 잠시 후, “테이프가 잘못 걸려져 있었습니다”라는 멘트가 나오고, 시그널 뮤직과 함께 ‘방송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멘트를 들으면서, ‘참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청취자들을 전부 바보로 아나?’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나 혼자였을까?
방송을 하다보면, 테이프를 잘못 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날은 테이프를 잘못 건 것이 결코 아니었다. 테이프를 잘못 걸었다면, 중간에 허겁지겁 ‘방송’을 끊고, 제대로 된 테이프를 찾는 동안 음악을 내 보내고, 정중한 사과의 멘트를 내보내고, 그리고 나서 제대로 된 테이프를 내 보내는 것이 통상적인 방송 사고의 처리 순서이다. 그러나, 그 날은 중간에 방송을 끊지도 않았고, 음악을 내보내지도 않았고, ‘죄송하다’는 멘트도 없었다. 결코 ‘잘못 걸린’테이프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만든’ 테이프로 여겨졌다.
’쓰나미 성금’ 보도로 야기된 한국일보와 AM 1660의 갈등은 보도를 한 한국일보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금을 제때에 전달하지 않은 AM 1660측에 있다. 재난 지역에 보내어질 성금을 9개월 동안이나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한국일보의 지적이 있었을 때에 즉시 잘못을 시인하고 동포 사회에 사과했으면, 일이 지금처럼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두 언론사를 지켜보고 있는 뉴욕의 두 일간지들의 보도 태도를 보면 어느 쪽에 잘못이 있는지 분명해진다. 내가 기억하는 한, 제3자적인 입장에 있는 두 일간지들이 한국일보가 보도한 ‘사실’에 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동포사회의 화합을 강조하는 글들을 쓰고 있다. 이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아직도 늦지 않았다. AM 1660은 방송 본연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방송을 청취자들을 향한 협박과 공갈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뉴욕 일원의 모든 동포들로부터 사랑받는 방송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김동욱/칼럼니스트
진행자의 말로 미루어 보아 , 그 전에 ‘한국일보를 비난하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던 것 같았다. ‘그 방송을 듣고 방송국에 격려의 전화를 걸어오신 청취자들이 많았다’고 운을 띄운 뒤, ‘물론 비난의 전화를 걸어 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예의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몰아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비난의 전화를 걸어 온 남자와 여자의 전화 내용을 녹음해 두었으니, 언제 방송으로 내보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그러더니 잠시 후, “테이프가 잘못 걸려져 있었습니다”라는 멘트가 나오고, 시그널 뮤직과 함께 ‘방송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멘트를 들으면서, ‘참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청취자들을 전부 바보로 아나?’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나 혼자였을까?
방송을 하다보면, 테이프를 잘못 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날은 테이프를 잘못 건 것이 결코 아니었다. 테이프를 잘못 걸었다면, 중간에 허겁지겁 ‘방송’을 끊고, 제대로 된 테이프를 찾는 동안 음악을 내 보내고, 정중한 사과의 멘트를 내보내고, 그리고 나서 제대로 된 테이프를 내 보내는 것이 통상적인 방송 사고의 처리 순서이다. 그러나, 그 날은 중간에 방송을 끊지도 않았고, 음악을 내보내지도 않았고, ‘죄송하다’는 멘트도 없었다. 결코 ‘잘못 걸린’테이프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만든’ 테이프로 여겨졌다.
’쓰나미 성금’ 보도로 야기된 한국일보와 AM 1660의 갈등은 보도를 한 한국일보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금을 제때에 전달하지 않은 AM 1660측에 있다. 재난 지역에 보내어질 성금을 9개월 동안이나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한국일보의 지적이 있었을 때에 즉시 잘못을 시인하고 동포 사회에 사과했으면, 일이 지금처럼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두 언론사를 지켜보고 있는 뉴욕의 두 일간지들의 보도 태도를 보면 어느 쪽에 잘못이 있는지 분명해진다. 내가 기억하는 한, 제3자적인 입장에 있는 두 일간지들이 한국일보가 보도한 ‘사실’에 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동포사회의 화합을 강조하는 글들을 쓰고 있다. 이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아직도 늦지 않았다. AM 1660은 방송 본연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방송을 청취자들을 향한 협박과 공갈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뉴욕 일원의 모든 동포들로부터 사랑받는 방송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김동욱/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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