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고국의 상황에 대한 호기심과 걱정으로 인터넷 뉴스에 정치면들을 살펴봅니다. 어떤 상황과 관계없이 늘 등장하는 화두가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하하고 질시하는 내용의 댓글 들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어 갑니다. 그가 정말 잘 했는지, 잘 못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민들이 어려운 한국 경제와 정치적인 입장들을 극복하고 인생에 변화를 기대하고 뽑았을 것입니다.

미국에도 역사에 유래가 없는 흑인 대통령이 당선되어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최연소 대통령으로 말입니다. 미국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들의 내면에도 우리 고국의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뭔가 바꿔보자는 내용입니다. 지금 이 상태로는 더 이상 미래를 기대할 수 없고, 더 나빠질 것이라 보기에 ‘확 바꾸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뭔가 확 바뀐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아직 변화를 기대하기는 시기가 너무 짧지 않느냐는 말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시기가 아니라 그렇게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은 변화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 누군가에 의해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것에 문제가 있지 않는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변화를 바라는 자신들이 변화되지 않으면 결코 기대하는 변화는 오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이 확 바뀌고, 변화된 인생을 살길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부터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경에도 변화된 세상과 삶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현대와 마찬가지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억압에 대한 고통, 개인적인 마음의 갈등과 공허함들로 인해 세상이 변하거나 자신에게 특별한 무슨 일이 일어나 주길 바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군가 나타나서 그렇게 만들어 주길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런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런 부류 중에도 진정한 삶의 변화를 이루고 또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일들을 이루고 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차이는 먼저 자신이 변화를 경험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에 있었습니다.

먼저 변화된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들은 진리에 대해 갈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찾기 위해 나섰습니다. 그 진리를 발견한 후에 그들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며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변화는 세상을 놀라게 했고, 이웃과 주변의 사람들을 그 변화에 동참 시켰습니다. 그 예가 변화를 요구만 하고 기다리다가 인생을 끝낸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들 속에 변화를 경험하고 주도했던 ‘삭개오’라는 세리장이나(눅19), ‘부자 관원’의 이야기(눅18)는 세상 변화에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 깨닫게 합니다.

삭게오는 진리에 대한 열망으로 주님을 만나 자신의 진정한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인생을 바꾸어 갑니다.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자신이 괴롭히고, 등져왔던 가족이나 이웃들과 민족을 향해 다시 돌아서 그 동안 자신이 가장 인생에 목적으로 삼았던 것들을 나누어 줍니다. 아마도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변했다’고 할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저리 달라지나’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그리 살아보고 싶은 열망을 갖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부자 관원 또한 진리에 대한 목마름으로 주님을 찾습니다. 그가 생각지 못한 진리의 요구에 걱정하고 떠나지만 그는 다시 그 진리를 향해 돌아 왔습니다. 그것은 곧 진리가 요구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쥐고 싶고, 포기하길 원치 않았던 것을 포기하며 먼저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그를 보며 또 다른 사람들은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 변화에 동참 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들이 만난 진리는 지금 우리 곁에서 나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인생을 만들고, 삶을 살고 있든지 세상이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길 원하는 마음이 있으십니까? 먼저 자신의 변화를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진리이신 예수님 만이 가능함을 깨닫고 만나시길 바랍니다. 입으로만 마음으로만 만난 것이 아니라 만남 후의 삶에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변화’입니다. 그 주님, 진리가 원하는 삶을 드러낼 때, 그것이 크던, 작던 세상은 나를 보고 변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에 함께 동참할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주님은 삭개오에게 ‘너만 구원 받았다’고 하지 않으시고, ‘네 가정이 구원 받았다’고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