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신년을 맞이해 세대교체, 교회연합, 2세 사역, 부흥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들고 시카고 지역의 40인을 만난다. 이 인터뷰를 통해 시카고 한인교회의 여론을 수렴하고 한인교회의 미래와 나아갈 바를 조명하고자 함이다. 40인 인터뷰는 시카고 교계의 발전을 위한, 가능한 모든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목회자들이 시무하는 교회의 교세, 목회자의 교단적 배경, 목회 연수 등에 관계없는 순으로 게재된다.

열일곱번째 인터뷰는 예향문화선교회 김왕기 장로다. 그는 22살에 이민와 33년을 시카고에서 살았다. 드폴대학교 대학원에서 컴퓨터학을 전공했고 벨연구소, 록크웰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역임했다. 미드웨스턴침례교신학대학원을 수료했으며 문화선교회 예향의 대표이다. 그는 MCTS 방송과 각종 매체를 통해 기독교 문화 사역에 헌신하고 있으며 “문화@23시 55분: 시대를 분별하는 문화사역”이란 책도 저술한 바 있다.

-예향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사역은 어떻게 시작하셨습니까?

먼저는 청년사역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유학생이나 1.5세 등 한어권 청년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문화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문화사역적인 면도 생겼습니다. 과거에 예향은 연극팀, 찬양팀, 워십댄스팀(2세권) 활동도 했고 문화 컨퍼런스도 거의 매년 열어서 청년 기독교 문화 창달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한국에서 CCM 가수들을 초청해 찬양 집회도 많이 했고 ‘용서를 넘어선 사랑’같은 50명 이상의 인원이 동원된 대형 연극도 한국에서 유치하곤 했습니다.

-척박한 기독교 문화사역에 발을 디딘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습니까?

뇌막염에 걸려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병원에 입원해 있는 기간 동안 이렇게 죽으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서 나오면 전도에 남은 인생을 걸겠다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살아서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제가 뭘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제 청소년기의 경험을 살려서 문화를 향유하고 즐기려는 청소년들과 함께 하면 좋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갱에 속한 한 청소년을 만났는데 6개월동안 함께 하면서 성경공부를 같이 했습니다. 저는 그때 그 청소년이 놀랍게 변화되는 것을 보고 이 사역에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벌써 이게 16년 전 일입니다.

시작 당시에는 클래식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미국 문화에 서 있다 보니 반기독교적인 것도 많이 접했습니다. 반기독교적 음악, 연극, 영화에 상대적으로 노출이 많이 됐던 것이죠. 그런 문화를 대할 때 이들 안에 생기는 기독교인으로서의 고민에 관해 대화하던 중 “그럼 우리가 문화사역을 해 보자”는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다. 처음 한 행사가 “성가의 밤”이었습니다. 다들 음악 전공자들이니 정말 잘했습니다. 그때 모인 기금으로 홀사모님들을 도왔습니다.

작았던 사역이 이렇게 확장되어 가니 시카고에 문화를 전공하는 단체가 필요하겠다는 데 뜻이 모였고 한국의 대표적 문화사역단체인 낮은울타리와 협력, 교류하다가 독립적으로 예수님의 향기, 예향이 탄생했습니다. 문화캠프나 컨퍼런스는 당시 시카고 교계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런 문화사역이 청년사역과도 관계가 깊었지요?

그렇습니다. 시작 당시에는 저도 젊었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저를 큰 형같이 대하면서 밤새도록 상담도 하고 성경공부도 매주 했습니다. 그 당시 상담은 주로 진로 문제, 연애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6, 7년 전부터는 부모들과 상담을 많이 합니다. 바로 마약 문제입니다. 자신의 자녀가 마약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들이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고민 하다가 여기 저기서 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수소문해서 전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도 마약에 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주에서 이 사역에 가장 대표적인 LA 나눔선교회를 찾아가 한영호 목사에게서 청소년 마약 사역에 관해 정보도 듣고 직접 배워 왔습니다. 그동안 저는 교회 안의 밝은 면에서 청년들을 보아 왔던 것이죠. 노래 부르고, 문화 행사 하는 쪽으로요. 그런데 마약 문제를 대할 때는 정말 교회 안에 숨어있는 어두운 면을 보게 됐습니다.

5년 전, 기독교TV를 시작하면서 PD들과 함께 나눔선교회를 다시 방문해 다큐멘터리도 찍어서 보급하고 ‘선물’이라는 청소년 마약을 주제로 한 연극도 상영했습니다. 호응이 상당했습니다. 2회 공연에 1천명이 관람했습니다.

-교회도 호응이 좀 있던가요?

안타깝게도 없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마약 상담을 하는 청소년들의 다수가 목회자 혹은 장로의 자녀입니다. 공부도 잘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이들이 마약을 할 뿐 아니라 사고 팔며, 이 중에는 딜러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교회나 교계에서는 호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물’을 영화로 제작해 교회를 찾아 다니며 상영을 했습니다. 한 1백곳은 다녔습니다. 영화 상영하면서 상담은 200번 이상 한 것 같습니다. 교회들은 자기 교회 안에 있는 마약 문제에 관해 조금씩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를 본 후, 청소년들이 마약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고, 이미 마약을 하는 청소년들의 부모님들이 울며 상담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예향에서는 마약상담센터를 만들어 전문가가 매주 화요일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상담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상황이 아주 심각한 청소년들은 LA나눔선교회로 연결시켜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 시카고에서는 마약 청소년 셸터를 세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이게 구체화되면 저는 제가 가진 모든 노하우와 데이터를 그쪽에 제공하려고 합니다.

▲김왕기 장로는 한인청소년 마약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교회의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김준형 기자
-시카고 지역에서도 청소년 마약 문제가 심각한가요? 타 지역에 비해 표면화된 정도가 아주 낮은 듯 합니다만.

제게 전화 오는 것을 보면 심각합니다. 전 그 심각성을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어떤 중형교회에서는 5명이 따로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이 중에는 딜러도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됩니까?

-문화 사역이나 청소년 사역이나 소위 ‘돈 안되는 사역’인데 교회로부터의 도움이나 후원은 있었나요?

솔직히 그게 어렵다는 것을 전 좀 일찍 캐치해 마음 고생이 덜 했습니다. 저는 엔지니어 출신이라서 비즈니스에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제 사업에서 자금을 마련해 사역에 충당했습니다. 원래는 후원을 받아서 이 사역을 하려 했는데 1년을 해 보니 그게 거의 불가능하고 기도를 해 보니 “후원을 따러 다닐 시간이면 그 시간에 사업을 해서 사역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긴 시간이 소요되지도 않고 제가 잠만 조금 덜 자면 되는 일, 한국과의 무역업이었는데, 그걸 하게 되어서 그 수입으로 사역을 이어 갔습니다. 후원도 10-15% 정도 있습니다. 교회나 성도들이 이 사역을 귀히 보고 후원해 주십니다.

-왜 교회는 교회 안에 암약해 있는 이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까요? 한계일까요?

일단은 그 교회에 마약을 하는 그런 청소년이 있다는 게 알려지는 게 큰 두려움입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신의 자녀가 마약을 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 교회를 떠나야 합니다. 다른 성도들의 보이지 않는 압박이 있겠지요. 그리고 부모된 입장에서 마약하는 청소년이 있는 교회에 자신의 자녀와 함께 다니고 싶겠습니까? LA나눔선교회에서 완전히 재활된 친구들도 다시 자신이 다니던 교회로 돌아가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LA나눔선교회가 이런 마약 재활 청소년을 위해 직접 교회를 세웠지요. 저는 교회가 마약에 관한 사실을 숨겨야만 하는 현실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대승적 차원에서 이 문제가 투명히 드러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한어권 청년들의 문화 실태는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거의 전무하다고 보입니다.

교회 입장에서 봐도 한어권 청년들은 좀 어중간 합니다. 영어권은 부모들이 교회의 중심 멤버이니 오히려 지원이 잘 됩니다. 그런데 한어권은 미국 온지 얼마 되지 않아 기반도 약하고 유학생인 경우가 많으니 그냥 어른들 예배에 끼어서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영어권도 문화적으로는 아무 대책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 한인교회의 문화사역이라고 하면 청년사역과 일맥상통할만큼 가깝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전문 문화 사역자를 키울 필요를 못 느낍니다. 사고가 터진 후에야 문의가 들어 옵니다. 자녀가 나쁜 문화에 물들면 부모들은 전도사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전도사님은 아이디어가 없으니 담임목사님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담임목사님도 이런 부분을 모릅니다. 전문 사역자를 양성해야 하는 문제가 시급합니다. 최소한 유스담당 목회자는 문화에 대해 꿰뚫고 있어야합니다. 독학이라도 해서 아이들과 문화적으로 소통이 가능해야 합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교회에서 청소년들의 문화를 구분없이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것입니다. 강의에 가면 장로님들이 “세상 음악은 무조건 나쁘다”라고 해 주길 원합니다. 그래서 제가 강의 때 청소년들에게 그렇게 도전을 주면 그들이 그 자리에서 음악 시디를 다 태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강의 후에는 그 시디를 결국 다시 살 수 있단 것이죠. 그만큼 교회 안에는 세상 문화의 대안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말이면 좋지 못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노래방에 가고 술이나 마약을 하지요.

세상 문화라고 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문화는 기독교인들이 창조하는 것이기도 하며 세상 문화에서 변혁되어 기독교적으로 변화되는 것도 있습니다. 지금은 기독교 문화, 세상 문화로 가를 것이 아니라 좋은 문화, 나쁜 문화를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르쳐야 합니다.

제가 ‘선물’ 영화를 제작할 때는 마약을 직접 하고 있는 청소년이 배우로 지망해 왔습니다. 마약 퇴치 영화에 실제 마약하는 청소년이 출연하겠다고 오디션에 온 것입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끼만 발산할 수 있으면 무엇이든 합니다. 불신자 청년들을 기독교 문화를 이용하여 쉽게 예수를 믿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우리 기독교 청년들을 문화로 인해 쉽게 세상에 뺏길 수도 있다는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 안에 대안 문화를 충분히 만들지 않기 때문에 후자인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런 청년을 배우로 받아 들이는 이유는 촬영을 하는 동안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열려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문화는 인간의 삶 그 자체다. 이것으로 청년들을 전도할 수도 있고 이것 때문에 청년들을 빼앗길 수도 있다.” 김왕기 장로는 빼앗을 것인지 빼앗길 것인지의 싸움이 문화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 김준형 기자
-그러나 아직 한인교회에 그런 문화 개방적인 태도가 부족하지요?

그렇습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시대가 변하면 옷은 갈아 입어야 합니다. 시대를 살아 가면서 문화의 힘은 엄청납니다. 우리는 문화라고 하면 무슨 예술만을 생각하지만 문화라는 말의 어원이 “경작하다”입니다. 우리는 문화사역을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을 만들어 인간에게 다스리라 하셨는데 인간이 경작해서 나오는 모든 산물이 문화다”라고 정의합니다. 문화는 삶입니다. 같은 재료라도 잘 만들면 약이 되고 못 만들면 독이 됩니다. 우리가 준비하지 않으면 결국 세상에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맙니다.

어떤 교회에 청소년 사역이 전무한지 아십니까? 유스나 청년부가 부흥 안되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아십니까? 백발백중,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교회를 좌지우지 하는 교회입니다. 자신의 자녀는 다 성장했고 유스나 청년부가 어찌 되건 자신과는 관계없는 분들입니다. 예산도 적게 편성하고 전문 사역자도 청빙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여러분들의 바로 밑의 자녀의 문제는 아닐지 몰라도 그들의 자녀, 즉 여러분의 손자, 손녀들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손자, 손녀들 때문에 피눈물 흘릴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제가 어느 교회에서 ‘선물’을 상영했더니 그 교회 권사님이 펑펑 우셨습니다. 자신의 자녀는 마약같은 나쁜 일에 영향받지 않고 올바로 잘 성장해 주어 너무 고마워서 그런다고 하시면서 지금 그런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자녀들을 위해 자신의 작은 헌금을 받아 달라며 헌금하셨습니다. 이런 분이 교회에 필요합니다. 우리 다음 세대에 질풍노도와 같이 닥칠 큰 문제가 바로 청소년 문제입니다.

-사역자 양성이나 교회의 인식이 중요해 보입니다.

청소년들에게 문화적 어프로치가 중요합니다. 현 시대 문화를 모르면 자녀 교육과는 별개가 됩니다. 제가 유스 담당 사역자들을 위한 문화 컨퍼런스를 할 때, 그때는 가수 조성모가 한창 인기를 얻던 때인데, 조성모가 누군지 아십니까? 했더니 모르는 분이 몇 분 있었습니다. 한 분에게 “조성모를 모르면서 조성모를 좋아하는 청소년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그들에게 조성모와 같은 대중문화에 관해 어떻게 지도하시냐?” 물었더니 자기는 “예수나 조성모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사역자 양성이 얼마나 척박한지 보여 주는 예입니다.

-예향의 향후 사역의 진로는 어떤가요?

저는 예향이 보유하고 있는 영상 자료, 찬양 자료, 문화자료 등을 한데 모아 기독교 문화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해 한인교회에 보급하려고 합니다. 잘 살펴 보면, 교회에서 사용할 영상물이나 성가곡, 연극대본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큰 교회에서는 어렵게 만들어 한번 쓰고 묻어 두고, 작은 교회는 아예 만들 수 없습니다. 예향은 이런 자료들을 모아 목사님들이나 교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료로 만들어 두려 합니다.

향후 예향은 순수한 문화 사역체적 성격을 유지하며 기독교문화재단으로 승화시키려 합니다. 기독교 문화에 뜻을 함께 하는 분들이 참여해 기독교 문화를 연구하고 노력하는 일을 해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향의 앞으로의 사역에 큰 기대를 걸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