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신년을 맞이해 세대교체, 교회연합, 2세 사역, 부흥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들고 시카고 지역 목회자 40인을 만난다. 이 인터뷰를 통해 시카고 한인교회의 여론을 수렴하고 한인교회의 미래와 나아갈 바를 조명하고자 함이다. 40인 인터뷰는 시카고 교계의 발전을 위한, 가능한 모든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목회자들이 시무하는 교회의 교세, 목회자의 교단적 배경, 목회 연수 등에 관계없는 순으로 게재된다.

열두번째 인터뷰는 시카고신학교 서보명 교수다. 서 교수는 드루신학교에서 B.A., 시카고대학교 신학부에서 M.A., 시카고신학교에서 M.Div., Ph.D 학위를 취득했다. 서 교수는 이민교회에서 특징적이라 할만한 배경을 갖고 있다. 우선 고등학생 때 이민 온 1.5세이며 드루신학교, 시카고대 신학부, 시카고신학교 등 소위 명문을 거쳤지만 목사 안수는 받지 않았다. 이민교회에서는 비주류라 볼 수 있는 진보신학자다. 그는 시카고신학교 내 한국기독교연구소(The Center for the Study of Korean Christianity) 소장이며 미국 교회에는 다소 생소한 김재준, 안병무, 서남동과 같은 한국 진보신학의 석학들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시카고신학교는 1855년 청교도들이 세운 ‘회중교회’라는 교단의 목회자들이 설립했으며 이 회중교회는 1950년대에 교회연합운동의 기치를 들고 연합그리스도교회(United Church of Christ)를 창립했다. 시카고신학교는 설립 이후부터 줄곧 기독교 사회운동과 정의평화운동에 참여해 왔다. 미국 신학교 가운데는 가장 진보적인 학교라는 평을 받으며 해방신학, 여성신학, 정치신학을 꽃피웠다. 미국에서도 비주류라 할 수 있는 진보신학의 전당이지만 그 진보적 색채를 고집하며 교회와 사회 간에 진지한 담론을 창출해 낸 명문이다.

미국 진보신학의 산실에서 자랑스런 한국신학을 소개해 온 서 교수는 현재 한국의 가장 대표적 진보신학교인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강의 중이기도 하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을 특징짓는 캐릭터 중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1.5세로서 학부부터 Ph.D.까지 신학을 공부하셨는데 목사 안수를 받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터뷰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학부 때는 철학을 전공했고 신학공부를 한 것은 대학원 때부터입니다. 안수를 받지 않은 이유는 먼저 제가 목회자로서의 소양과 소명 의식이 부족했고, 또 요즘 미국은 목회자가 아니어도 교수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5세이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교수를 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으셨나요? 1세와 2세 사이에서 문화적으로 갈등하고 신앙적으로 위기를 겪으신 적은 없습니까?

미국에서 1.5세로 살면서 문화적 갈등이 당연히 있었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1세와 2세들의 갈등과 고민의 양면을 좀더 잘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요. 사실 저는 한국에 가도 문화적 갈등을 느낍니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어딜 가든 세대 차이와 연관이 있는 문화의 갈등을 벗어갈 수 없다는 느낌입니다. 비교적 진보적이라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교회 내에서 겪은 갈등도 사실 문화적 갈등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출석하거나 혹은 전도사 등으로 사역한 교회가 신학적 근거가 매우 약하고 어떤 때는 억지에 가까운 목회적 주장, 말씀 선포를 할 때는 답답한 면도 많았지만 이것을 제 신앙의 위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제 신앙의 모습이나 깊이, 신학적 입장은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교수님은 한국 신학을 미국에 소개하고 미국 신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그런 역할을 감당해 오셨습니다. 교수님이 1.5세라는 배경과도 관련이 있겠지요? 최근의 행적에 관해 어떻게 스스로 평가하십니까? 어떤 성과가 있었나요?

신학은 어떤 학문보다 더 고백적인 학문이라 봅니다. 제 상황이 한인 교수로 미국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고, 또 이 두 상황과는 약간 정서적으로 다른 감수성도 갖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경계인’이란 생각을 하고 살았어요. 따라서 제가 학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들도 저의 실존적인 고백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의 최근 행적은 약 2년 전에 설립한 The Center for the Study of Korean Christianity(CSKS)와 많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와 전통, 신앙을 영어권에 소개하고, 미국 내에서 그에 관한 연구를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연구소입니다. 현재 미약하나마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성과라면, 제가 판단하기 좀 그렇지만, 많은 분들로부터 이런 일을 하는 연구소가 필요했다, 또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하는 말을 듣는 것 자체입니다.

-교수님은 문화비평과 현시대 기독교 문화에 상당히 관심을 기울이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문화신학적 관점 혹은, 기독교의 사회 참여 관점에서 현 미국 기독교의 접근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미국 사회 내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계속 줄고 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싶네요. 미국 기독교의 사회참여 운동 중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 강력한 힘을 펼쳤던 보수 기독교의 정치운동은 세속 가운데 교회의 영향력을 되찾자는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진보세력의 참여운동은 소외계층을 위한 인권, 평화운동 면이 컸지요. 한쪽은 변해 가는 세상에 대한 탄식, 다른 한쪽은 변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비판이 강했다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보수진영에서는 해체되어 가는 전통적인 이념에 대한 상실감, 진보진영에서는 변하지 않는 억압 구조에 대한 비판정신이 양 진영의 사회참여를 이끌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양쪽의 강점을 모두 갖춘 참여운동이 부각되고 있는데요. Jim Wallis같은 사람이 대표적입니다. 보수 기독교인의 감수성에 의해 허무주의로 흐르는 세속문화를 비판하고 정의와 평화를 외치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 Jimmy Carter도 양쪽을 포용하는 참여정신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미국 교회가 그러하다면, 한인 이민교회, 시카고 한인 이민교회는 사회 참여 문제나 기독교 문화 창달에 상당히 미진해 보입니다. 이민교회의 신학이 죽었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이민교회라는 독특한 상황 때문인가요?

주류사회에 참여도가 낮다는 건 이민교회의 태생적 한계라 할 수 있겠네요. 태생적 한계를 다시 바꾸면 태생적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알 수 없는 이민자들의 애환이나 정서, 한을 문화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잘 승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죠. 그러면서 이웃 이민자들과 연대하고, 백인사회를 깨우칠 가능성도 크게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을 1세들이 하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2세나 3세들이 어떻게 이민자들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이 사회에서 활동하는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러 예들이 있겠지만, 소설가 ‘이창래’는 글로 그런 작업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민자 개개인들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공동체 차원에서 신학으로 승화시키고 그런 감동으로 2세들을 가르칠 때, 문화적으로 예술적으로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 낼 능력있는 2세, 3세들을 배출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아직도 이민교회는 제대로 된 신학이 없다고 합니다. 한국신학과 한인식 목회, 미국적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민교회의 나아갈 바를 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해 주십시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아까 신학을 ‘고백’이라고 표현했는데, “한인 이민교회에 우리들의 고백이 담긴 신앙의 표현이 있느냐” 하면 대개 그렇지 않습니다. 이민교회의 신학이 필요한 이유는 수없이 많습니다. 신학이 없으면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방향성과 일치감을 찾기가 힘들어집니다. 또 신학이 없으면 왜 이민교회를 다녀야 하는지 그 당위성이 설명이 안 됩니다. 저는 신학이라는 게 좀 딱딱할 수 있고 복잡할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신앙의 고백이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씁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여기까지 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인도해 주실 것을 믿는가 하는 고백이 우리 교회에 있어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는 한국교회의 신앙에 대해서 아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고난 가운데 지켜온 신앙, 철저한 신앙, 성경묵상과 기도의 신앙, 그리고 이런 신앙을 위해 헌신한 신앙의 선배들의 행적과 기도가 교회의 말씀과 기도 속에 잘 녹아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가 잘나서 갖게 된 것이 아니라, 오래 전 한국에서 건너온 기독교 신앙이 고난과 역경 속에서 나에게까지 온 것이다”라는 고백이 있을 때, 2세들도 한인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개신교가 위기를 맞고 있는 최근과 같은 시기에 우리 신앙의 뿌리와 전통을 찾고 배우려는, 내면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교수님은 스스로가 이민교회 1.5세인데 현 시카고 교회의 이민 차세대 교육 문제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어떤 점이 개선되어야 할까요? ‘차세대 교육이 죽었다’는 현재의 평가에 관해 어떻게 보시나요?

저도 그 부분을 큰 문제라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교회들이 모두 그런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현 상황을 들여다 보면 몇 가지가 드러납니다. 첫째로 교회학교 선생님들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주일학교는 그나마 나은 편인데, 중고등부를 지도할, 영어로 소통이 원활한 분들을 찾기는 훨씬 더 어렵고요. 둘째로, 교회마다 교육문제를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데, 실제로 보면 그렇지 않다는 평가를 많이 듣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비전있고 신학이 있는 교육이 아니라, 어떻게든 꾸려가자는 생각이 팽배해지고 그러다 보니 주먹구구식의 교육이 되고 만다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있는 일꾼들마저 나가게 되는 걸 많이 보게 됩니다. 저는 한인들이 한인교회를 다니다가 윌로크릭교회로 빠져 나가는 현상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만나 대화해 본 적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한인교회에서 버티다 못해 나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중 다수는 미국에 온지 오래 되었고, 전문직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한인교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란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었지요. 한인교회를 떠나는 분들을 주변에서 보셨을텐데, 교회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한인교회의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모습, 내부에서 소외계층을 만들어내는 면 등이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현재 교회교육을 담당할 일꾼이 부족하다면, 10년, 20년 전 한인교회 교육에 대한 반성도 따라야 합니다. 그 때 한인교회의 미래를 담당할 일꾼들을 키우지 못한 게 아닌가 반성해 봐야 한다는 말이죠. 그 때는 저도 교사로, 전도사로 일선에서 일할 때였는데, 지금 보면 뿌리 깊은 신앙을 가르치지 못했다는 자성을 하게 됩니다. 이민교회의 신앙고백과 한국교회의 신앙과 전통에 대한 인식이 없는 채 이루어진 교회교육이 만들어 낸 결과라 생각합니다.

- 그 외에 이민교회가 가진 현안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현안이 무엇일까요?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가장 중요한 현안에 관해 소개해 주시고 대안이 있다면 제시해 주십시오.

이민교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이민교회의 미래입니다. 좀 추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는데, 저는 “앞으로 20년 후 한인교회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어서 현재 2세 교회라 불리는 교회들이 어떻게 목회를 하는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한인교회란 이름이 2세, 3세들이 다수인 교회에서 유지될 수 있을지, 아니면 현재 추세라 볼 수 있는 2세 교회가 다인종교회로 목회방향을 바꾸는 경향이 계속될지 궁금합니다.

이민교회의 미래에 대해서 교회나 교계 차원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미래는 어떨까 추측하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한인교회의 미래는 무엇인지, 1세 교회의 어떤 신앙의 유산이 계승됐으면 좋은지, 한국말 사용이 한인교회의 신앙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적극적으로 묻고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그에 맞게 현재 목회의 방향과 초점을 바꿀 수도 있겠지요. 한인교회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만들자 하는 말이기도 한데요. 물론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하기란 힘듭니다. 그러나 교육이란 미래적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으면 현재의 교육까지도 제대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1.5세의 입장에서 한인교회 안의 목회자, 장로 갈등, 성도 간 갈등 문제에 관해 어떻게 보십니까? 현재 시카고 한인교회에는 목회자와 장로의 갈등으로 인해 목회자가 교회를 떠난 교회가 20여 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문제의 해법은 무엇이라 제시하시겠습니까?

말씀하신 그 갈등이 최근에 한인교회에서 늘어난 것은 저도 분명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최근까지 한인교회가 목회자의 리더십에 크게 의존했는데, 1세대 목회자들이 은퇴하는 과도기적인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평신도들의 참여 욕구가 대립적으로 분출되어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한인교회의 갈등을 교회에 대한 애착 혹은 교회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나타난 이민교회의 독특한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인교회에서 건강한 교회의 상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미국교회에서는 나름대로 검증된 모델을 갖고 있지만, 그게 한인교회에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운 점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을 어떻게 담보해 낼 수 있는지, 장로들의 목회 참여와 목회자의 권위를 어떻게 서로 인정할 수 있는지 등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교회 내의 문제를 두고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것은 알아도, 사실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습니다. 대화나 양보, 절차와 같은 덕목이 교회에서 잘 안 통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런 문화 속에서 교인들이 성장한 것도 아니고요. 평소에도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갈등이 표면화 된 후에는 더더욱 공격과 비난으로만 일관하는 게 당연하겠죠.

시스템을 만들고 교단법을 철저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것으로 갈등을 막지는 못합니다. 역설적으로 좀 엉뚱한 제안을 하자면, 좀더 자유롭게 교회를 옮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자 하는 겁니다. 갈등을 겪다가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경우 스스로 패배감과 교회에 대한 일반적인 불신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고, 새 교회에서는 교회의 분열을 일으키고 나온 사람이란 의심 깊은 눈길을 줍니다. 목회자도 교인도 교회생활을 실험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올바른 신앙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다가, 교회의 방향이 크게 다르면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그리스도를 위한 선한 경쟁을 한다는 의미에서 자신 있게 다른 신앙 공동체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모든 교단이 바로 그런 정신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복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우리의 신앙고백이 분명해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