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성경공부 시간에 ‘여러분은 구원 받은 백성입니다, 믿으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조급하고 답답해 믿을 만한 사람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 이름으로 구원 받은 줄 믿습니까?’ 그러자 그도 대답이 없습니다. 속으로 ‘주여’를 부르며 질문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수님은 믿으십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모두가 ‘믿습니다’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습니다. 참 재미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구원 받은 백성임을 믿고 사십니까?’ 뭐라고 대답하고 계십니까?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과 구원 받았다는 것이 서로 다른 질문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일까요? 그것을 믿음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 받은 구원을 받아드리고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미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얻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 하늘보좌에서 이 땅 낫은 곳으로 오신 것이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이 내용은 믿고 있는데 오늘 당장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 없다는 것은 아직 삶에 그 구원을 받아드리고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받아드린다는 것은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 예수님의 인류를 위한 구속사역에는 분명 최소 세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용서와 해방과 자유’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던지 그 죄를 용서하지 않으셨다면 나를 위해 죽어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과거의 죄뿐 아니라 현재, 미래의 죄까지 용서하시겠다는 사인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용서를 이미 받았다는 것입니다. 뿐 아니라 우리를 얽어 메고 있던 죄악 된 것들로부터, 사탄의 세력들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죄의 결과인 죽음, 인생의 가장 두려움의 존재인 죽음으로부터 해방 시켜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얽매이는 육신의 관습과 율법들로부터 자유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모든 것은 깨뜨리시고, 파괴하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리려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감당하고 완성해 갈 수 있도록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구원의 의미, 용서와 해방과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받아드리지 못하고 인생을 생각 따로, 삶 따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미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이 땅 위에 사는 동안에도 그 구원을 누리고, 그 구원으로 인해 날마다 새로운 기쁨과 즐거움으로 천국을 누리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길은 구원, 진리의 의미를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이미 용서받은 사람이다.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이다. 진리 안에 자유를 누릴 사람이다’는 것을 생각뿐 아니라 몸과 삶에까지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여러분의 삶에 더욱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진리를 받아드린 사람들은 삶이 달라집니다. 그 증거가 세상 삶 속에, 믿음 생활 속에 베어 나오는 것입니다. 누가 어떤 질문, 어떤 방법으로 묻는 다고 할 찌라도 흔들림 없이, “난 이미 구원을 누리고 살고 있는 걸요?”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