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누가복음 16장에 나온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실감나게 ‘부자는 이 세상에서 호화롭게 살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았고 결국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되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죽기 전 예수님을 믿어 천사에게 받들려 전국에 갔는데, 지옥에 있는 부자가 천국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면서 고통을 하소연하며 도와주길 요구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거절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희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요, 아니면 나사로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서로 쳐다만 보고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아이가 용기를 내어 말합니다. ‘선생님 죽기 전에는 부자가 되고 싶고요, 죽은 후에는 거지 나사로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입니다.

어린 아이의 대답이지만 우리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한 사람이 두 가지를 선택하고 살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항상 ‘네 생각에 좋은 것 하나만 택하라’고 말입니다. 모세가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요구했던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그의 후계자였던 믿음의 지도자 여호수아도 죽기 전에 가나안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권면했던 말씀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여러 상황 속에서 한 가지를 택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 봉사하던 마리아와 마르다 두 자매에게 부탁하신 말씀이 그렇습니다. 스스로 우리에게 자신을 따를 때 두 가지 길을 만날 수 있는데 한 길은 넓고 편한 길이고, 또 하나는 좁고 힘든 길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취할 것은 그 중에 한 길, 좁은 길을 택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땅 위에 살아가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기에 고민의 양도 많아지고 마음에 근심이 생겨 슬픔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슬픔, 근심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항상 ‘한 가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좋은 것,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히 우리에게 좋은 것을 택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땅 위에서 뭔가를 선택하는 것은 내 자유이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이나 결과는 분명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내가 선택한 삶이 영원을 만들어 갑니다. 그러기에 이 땅 위에서 볼 때 좁고 형편없어 보여도 그것을 선택하고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한때 영국의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오래된 7통의 편지가 1억 가까이에 매매된 일이 있습니다. 그 편지는 영국의 위대한 정치가였던 처칠이 썼던 것입니다. 그가 결혼 전에 사랑했던 ‘뮤리엘 윌슨’이라고 하는 여인에게 보낸 청혼 편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당시 처질이 고달픈 정치 초년생과 인생을 같이 한다는 것이 고달픈 일이라 생각하고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유럽의 아름다운 휴양지에서 인생을 보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처칠과 결혼하는 것은 자신이 희생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기에 그는 거절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더 이상 역사에 등장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녀가 현재 고달픈 인생만 생각하지 않고 처칠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이 힘들고, 낙심되고 나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은 상황이라 할 찌라도 영원을 복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길, 하나만 선택하고 수고를 아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미래가 보이지 않기에 그 길을 갈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미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미래를 보여 주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선택치 아니하고는 누구도 천국에 갈 수 없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선택하고 그분의 길, 좁은 길을 함께 가면 천국을 누리는 것뿐 아니라 천국에서 상이 크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 이 땅 위에서 육신의 눈에 좋은 것을 누리느라 영원한 상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것도 누리고, 저것도 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만일 그것을 누리길 원하신다면 가장 좋은 한편 예수님을 선택하고 그 분이 원하시는 길을 가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다 누렸다’고 후회치 않고 말할 수 있는 복된 인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