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쎌교회라는 ‘작은 텃밭 (vegetable garden)’에서 ‘호미’를 들고 농사하는 교회입니다.”

지난 주 목양편지에서 썼던 내용입니다. 목회는 호미로 합니다. 수천 에이커의 땅에 잘 정비된 농지를 확보하고 몇 마을에 달하는 거대한 농수 배관을 설치하여 물을 뿌리고 거대한 농기계를 사용해서 씨를 뿌리고 비행기를 동원해서 비료와 농약을 뿌리는 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는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돌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에 목회는 한 사람을 대할 때 마치 천하에 그 한 사람 밖에는 없는 것처럼 돌보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돌보는 일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목사가 다 할 수 없습니다. 거대한 콤바인이라고 해도 한 사람의 운전기사가 움직일 수 있습니다. 목회는 한 사람의 구원과 한 사람의 성숙과 한 사람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결코 거대한 기계의 톱니 바퀴에 몰아넣을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를 넓은 밭에 비유하자면 마치 수많은 작은 텃밭으로 이루어진 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 텃밭마다 호미를 든 텃밭지기가 있습니다. 텃밭지기는 결코 대형 농장을 꿈꾸는 자가 아닙니다. 텃밭지기는 작은 싹 하나에 눈길을 줍니다. 작은 이파리 하나가 어제 저녁보다 더 든든해 졌는지 아니면 시들었는지를 눈치 챌 수 있습니다. 텃밭지기는 농약을 주고 비료를 주더라고 어린 채소의 뿌리가 타지 않도록, 이파리에 묻어 상처 입히지 않도록 손끝으로 줍니다.

우리 교회에서 꿈꾸는 목회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한 사람의 목자가 두세명의 영혼들, 많아야 열 명의 성도들을 돌봅니다. 너무 가까워 불편할 때도 있지만 사실은 가깝기 때문에 하루 만에 이파리 색이 변한 것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으면서 회개와 변화를 일으킬지를 압니다.

목자가 목원을 돌볼 때뿐 아니라 엄마 목자가 자식 목자를 돌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의 돌보미 (primary care giver)가 한 사람을 돌보는 호미 질은 선배 목자가 후배 목자를 돌보는 데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작은 텃밭에서 텃밭지기들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텃밭사이에 작은 오솔길을 내야 합니다. 텃밭지기들이 자기 텃밭에 갈 때 다른 텃밭을 망치지 않도록 오솔길을 냅니다. 텃밭지기들이 호미와 비료와 제초제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길목 마다 공급을 해 줘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프로그램은 바로 텃밭지기들이 보다 쉽게 텃밭 호미 농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을 만들고 필요한 도구와 재료를 공급하는 것은 결코 농사가 아닙니다. 교회의 프로그램이 결코 목회가 아닌 이치와 같습니다.

더 나아가 텃밭 농사는 기본적으로 무질서하게 보입니다. 텃밭사이에 난 길은 어느 곳도 똑바로 된 곳이 없습니다. 텃밭사이 사이에 난 길들은 다 구불구불하고 폭도 제각기입니다. 텃밭지기들도 생긴 것이 다 다르고 하는 방식도 다 다릅니다. 어떤 텃밭에서는 채소가 자라고 어떤 텃밭에서는 나물이 자라고 어떤 텃밭에서는 꽃나무가 자랍니다. 너무 큰 나무가 자라고 너무 많은 작물이 자라서 다른 곳으로 옮겨 심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텃밭농사는 원래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래도 가장 건강하고 가장 실속있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최근에 유기농 식품과 자연 농법 작물이 인기를 얻듯이 텃밭 농사에서 얻은 열매가 인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