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저녁, 한국 시간으로 설 날 아침이기에 형님 댁에 전화를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노쇠하셔서 얼마 전부터 서울에 있는 형님 댁에서 명절을 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형님 말을 들어 보니, 설 전날부터 폭설이 내려 부모님이 올라오지 못하셨고, 그래서 형제들끼리 모여 아침을 먹고 있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에게 인사를 끝내고 시골에 전화를 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생전 처음 그렇게 많은 눈을 보셨답니다. 모두가 꼼짝 없이 눈에 갇혔답니다.

저는 “그럼, 설에 떡국도 못 드셨겠네요?”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아버님과 열 살 정도 차이가 나는 동생이 약 2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사시는데, 그 숙부와 숙모께서 아침에 떡국을 해 가지고 오셨더라는 겁니다. 숙부는 삽으로 눈을 퍼내어 길을 만들고 숙모는 그 뒤에서 떡국 냄비를 들고 오셨다는 겁니다. 35센티미터나 내린 눈을 치워 길을 내면서 언덕을 넘어 오신 것입니다. 아버님께서는 눈물겨운 일이라고 하시면서, “너라도 한 번 전화해서 고맙다고 해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전화를 드렸더니, 숙부께서는 아무 일도 아닌데 그거 가지고 국제 전화까지 했느냐고 하시면서 서둘러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전화 통화를 마치고 상상해 보았습니다. 칠순 노인이 팔순 형님 부부를 위해 칼바람을 맞으며 한 삽 한 삽 눈을 떠내며 걷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아버님께서는 가끔 “저 동생은 아들보다 낫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번 일로 그것이 사실임이 증명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상상하며, “내가 무슨 큰일을 하겠다고 이렇게 떨어져 살면서 자식 노릇도 하지 못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득, 가진 것은 없었지만 서로 사랑했기에 행복했던 고향이 그리워졌습니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저의 숙부가 저보다 훨씬 잘 살고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쓸쓸한 제 마음을 위로해 주신 것은 그 다음 날 설날 잔치에서 만난 교회 어르신들이었습니다. 약 60분 정도의 어른들이 모여 동요도 부르고 찬송도 부르며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동안, 저는 마치 부모님을 뵌 듯, 숙부님을 뵌 듯, 시골 옆집 아저씨를 뵌 듯, 혹은 고향에 온 듯 했습니다. 혈육의 가족을 멀리 둔 저로서는 영적인 가족이 옆에 있다는 것이 큰 행복입니다.

저희 부부는 내일(2일)부터 10일 동안 한국을 방문하고 올 것입니다. 부모님을 뵙고 오기 위한 여행입니다. 3년 전에 어머님께서 뇌경색을 거치신 후, 적어도 2년에 한 번은 찾아뵙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해 보아도 돌아가실 때까지 몇 번 뵙지 못할 것입니다. 생활고로 인해 혹은 신분상의 문제로 인해 오래도록 부모님을 뵙지 못한 교우님들께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목회위원장께서는 “아무 일도 만들지 말고 부모님 곁에서 푹 쉬다가 오십시오”라고 명령(?)하셨는데, 그 배려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럴 것입니다. 순수히 사적인 용무만을 보고 돌아오겠습니다.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2009년 2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