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자비량으로 선교에 헌신하다 현재는 북한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진 시카고 출신 한인 故 김동식 목사의 피랍 9주기가 1월 16일이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 목사는 모진 고문과 회유,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다 고문후유증, 직장암, 영양실조로 결국 순교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도 한다. 확실한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고 유해가 송환되지도 않았기에 죽었다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설령 그의 육신이 죽었다 하더라도 그가 남긴 북한 선교의 피가 여전히 살아 한인 기독교인들의 혈관을 타고 흐르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어떤 사람인가? 김 목사는 중고교 시절부터 교회학교 연합 활동에 앞장섰던 ‘예비 목회자’였다. 이후 부산 고려신학교를 다니며 SFC 경남지역 위원장을 지냈고, 졸업 후에는 목회활동을 펼치다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하고 장애를 얻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장애인 선교에 여생을 헌신하기로 작정한다. 이후 작은자교회를 개척하고, 장애인 자활터 ‘물댄동산’과 장애인선교예술단을 조직, 운영하는 등 장애인 선교를 활발히 펼쳐 나갔다.

그러던 중 1988년 서울 장애인올림픽 때 중국을 방문하고 중국 장애인들을 돕는 데 헌신하기 시작한다. 이후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빈곤에 허덕이는 북한으로도 이어지고, 탈북자 문제에도 힘을 쏟게 됐다. 탈북 고아들을 위한 ‘사랑의 집’을 운영하고, 나진·선봉지역 의류보내기와 함흥·신의주 일대 고아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납치 전해인 1999년에는 탈북자 13명의 한국 입국을 지원한다.

이렇게 평생을 장애인들과 탈북자들을 위해 헌신해 오던 의인 김동식 목사는 그러나 9년 전인 지난 2000년 1월 16일 옌지교회 인근 ‘예림불고기집’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오다가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대기하고 있던 차에 납치당했다.

김 목사는 납북당한 뒤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전향하고 탈북자를 도운 과거를 회개하도록 북한 당국으로부터 온갖 위협과 회유, 고문을 당했으나 끝까지 이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80kg이던 몸무게가 35kg으로 줄었고, 고문 후유증에 영양실조와 직장암 등으로 이듬해인 2001년 2월 중순경 평양 초대소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에 의하면 그는 북한 평양 근교 상원리 소재 조선인민군 91훈련소 위수구역 내에 안장돼 있다고 한다.

그가 북한에 피랍된지 9주기, 순교한지 8주기가 되어 가지만 아직 북한 선교에 커다란 결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북한의 정세를 연구하고 보고하며 기도하는 북한 구원을 위한 연합 기도회가 시카고한인교회에서 끊이지 않고 매달 마지막주 월요일 저녁 8시 이어지고 있으며 김 목사의 순교와 동역자들의 기도에 조금씩 북한이 열리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김 목사의 사모, 주양선 선교사는 최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 선교사로 임명받아 김 목사의 뜻을 이어가고 있으며 지금도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주 선교사는 말한다. “그렇게 북한을 사랑하고 눈물로 기도하신 분이니, 아마 그곳에서 피흘리고 그곳에 묻힌 것에 더 감사하고 계실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