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새벽기도에 가려고 차고 문을 여는 순간 저는 약간 당황했습니다. 밖에 세워놓은 차가 하얀 모습으로 떡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심스럽게 차 앞에 가보니 문짝과 유리창은 얼음으로 자신을 꽁꽁 걸어 잠그고 단호하게 저의 출입을 거부하였습니다. 순간적으로 먼저 스치는 생각은 새벽기도회 늦을 걱정과 함께 ‘일어나서 꼼지락 거리지 말고 바로 나올 것을…’ 아쉬움이었습니다. 부지런히 쓸고 긁고 했지만 새벽기도회에 늦을 것은 뻔해졌습니다. 급한 마음에 차에 올라 서둘러 출발하여 동네 어귀 길에 이르러 브레이크를 밟자 자동차가 약간 미끄러졌습니다. 순간 옛날 한국에 있을 때 고속도로 옆에 붙어있던 현수막 문구가 생각났습니다. “5분 먼저 가려다가 50년 먼저 간다.” 그래서 마음을 달래며 조심스럽게 느림보 걸음으로 교회로 향했습니다.

그 동안은 마음에 두지 않았던 뉴스, 금번 겨울에 예년보다 더 많은 눈이 올 것이라는 뉴스가 제 생각에 스며들자 제 입에서는 “금번 겨울에는 눈 때문에 고생이 많겠구나. 교회 제설비용도 많이 들을 텐데”라는 말이 새어 나왔습니다. 무심코 이런 생각에 잡혀 운전하다가 문득 제가 운전을 하면서 콧노래로 찬양을 하고 있는 것을 자각했습니다. “아니, 눈 때문에 이렇게 새벽기도회도 늦고, 고생을 많이 해야 하고, 제설비용도 많이 소요될 텐데, 왜 짜증이 나지 않을까?” 눈 때문에 짜증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즐거워진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눈 때문에 당장 새벽기도회 늦으면서도 짜증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고생은 되는데 마음은 괴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눈이 밉지 않을까? 지겹지 않을까?” 마치 부모님들이 말을 듣지 않는 자녀들에게 화를 내고 큰 소리를 쳐도 결국 부모님들의 마음이 자녀들을 생각하며 흐뭇해 하듯이 말입니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는 11월에 들어서면서부터 벌써 은근히 눈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눈을 기다릴까? 글쎄요? 다른 분들은 몰라도 제가 눈을 좋아하는 이유는 제가 눈과 함께 만든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릴 적에 겨울이 되어 하늘에서 쏟아지는 하이얀 눈송이가 참 신기했습니다. 소리 없이 눈이 쏟아지면 마치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복같이 느껴져서 마당에 나가 마냥 눈을 맞고 서 있어보기도 했고요. 또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입으로 눈을 받아먹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소복이 쌓이는 눈이 신비롭기도 해서 가만히 들여다보다 입으로 훅 불어보기도 하고,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을 혼자서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 보기도 하고,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짧은 쉬는 시간에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고…. 무엇보다 온 대지를 깨끗하게 뒤덮은 풍경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겨울이 올 때면 언제나 눈을 그리워합니다.

눈과 관련된 노래들이 많은 것은 모든 사람들이 눈에 대하여 아름다운 감정을 가지는 증거라고 봅니다.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추어 친구들과 목청을 돋구어 신나게 불렀던 노래가 입가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징글벨 징글벨….” 그리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얼마나 기원했는지….

제게는 금번 성탄절을 맞이하며 드리는 간절한 기도가 생겼습니다. “성령님, 제 마음에도 은빛 찬란한 하이얀 눈이 가득히 내려 제 마음을 온전히 깨끗하게 덮어주옵소서. 그래서 주님께서 설레는 마음으로 저의 마음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주님의 흔적을 남기시며 걸어가실 수 있도록… 오직 주님의 발자국만 남길 수 있는 흰 눈 덮인 마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에 이런 화이트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