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농장에 새 식구가 들어왔다.

1개월 밖에 안 된 암컷과 수컷 새끼 돼지 한 쌍이다. 어미를 떠나 낯선 곳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 탓에 코를 킁킁거리며 주변을 맴돈다.

잠시 후 허기진 듯 돼지들은 발광을 하며 “꿀! 꿀! 꿀!” 돼지 특유의 요란한 울음을 연발한다. 때 아닌 괴성에 옆 우리에 있던 염소들과 닭들은 “이건 또 웬 테러야!”라며 놀라 삼삼오오 몰려든다. 대장인 수탉이 밥 먹듯 울어대는 자신의 “꼬-끼-요-!” 소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폭음에 그만 꼬리를 내리고 뒷걸음치자, 나머지 암탉들도 자리를 뜨고 만다.

그러나 염소들은 “조그만 몸집에 어떻게 저런 괴성을 지를 수 있지?” 고개를 갸웃 등거리며 “분명 초능력을 가진 돼지새끼들임에 틀림이 없어!”라며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이것이 첫날 아기돼지들의 세평농장 입소 신고식이었다.

여덟 마리의 염소들 중에는 5개월 된 새끼를 둔 어미 염소가 있다. 우리는 이 어미를 암컷의 대모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이름을 ‘메리’라 부른다. 메리는 자신의 새끼 염소보다 몸짓이 작은 새끼 돼지들을 담 너머로 유심이 바라보고 있다. 새끼 돼지들이 배고파 꿀꿀거릴 때면 자식을 키워 본 어미로서 엄마 없는 저들의 서러움이라도 아는 듯 매우 안쓰러워한다.

시간이 흐르자 괴성에 익숙해진 듯 다른 염소들은 아기 돼지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자리에 앉아 그저 자신의 배속에 있는 음식을 되새김질만 한다.
아내가 어미 염소에게 먹이를 주며 말했다.
“역시 메리는 다른 동물의 새끼들에도 모성애를 보이네요.”
잠시 후 옆에 있던 십대 자원봉자 애니와 사마타가 말을 이었다.
“목사님, 돼지들에게 멋진 이름을 지었어요!”
“멋진 이름이라고? 빨리 들어보고 싶은데.”
“수컷의 이름은 ‘베이컨’이고요, 암컷은 ‘햄’이라고 불러요.”
나는 흥미 있는 이름에 웃으려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야, 그건 너무 심하지 않니! 이건 돼지들에 대한 언어폭력이야!”
“그래도 너무 귀여운 이름이잖아요!”

하기야 나는 저물어가는 세대인가보다. 세평농장을 방문하는 많은 십대들은 돼지들의 이름이 너무 예쁘다고 야단법석이니 말이다. 역시 십대들의 아이디어는 기발하고 감정도 파격적인가보다.

오늘은 뉴욕에서 온 청소년 단기선교봉사자들이 잠시 농장을 들렀다. 아이들이 돼지 밥을 주다 놀란 눈을 하고 물었다.
“목사님, 돼지 밥을 깨끗한 물에 말아주었는데 돼지들이 밥그릇 안에 들어가 지저분한 두 발을 담그고 먹는 바람에 흙탕물이 되었어요! 물을 다시 갈아주어야겠어요!”
“얘들아, 돼지들은 원래 지저분하게 먹는단다.”
돼지들이 밥 먹는 것을 보다 잠시 후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다시 말했다.
“와!, 목사님, 밥 먹는 게 꼭 돼지같이 먹어요.”
“야, 돼지니까 돼지같이 먹지!”
아이들이 돼지코를 유심히 보고는 말을 이었다.
“목사님, 못생긴 돼지코가 너무 귀여워요! 근데 지독한 돼지 똥냄새는 정말 못 참겠어요!”

돼지는 지저분한 동물의 상징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너무 깨끗하다. 자신의 잠자리에 대소변을 보는 염소나 닭들과는 달리 돼지들은 절대로 자신의 잠자리에 똥과 오줌을 싸지 않는다. 게다가 돼지는 멋진 코, 맵시 있게 휘어 오른 꼬리, 통통한 숏다리, 그리고 매력적인 쌍꺼풀눈을 가진 돼지짱(?)임에 틀림이 없다.

오늘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특별한 날이다. 우리 세평농장 동물들이 모여 돼지새끼 신고식을 받은 날이다. 아울러 어려서부터 돼지인형과 돼지저금통만 가지고 놀던 아이들이 직접 돼지밥을 주고, 돼지코를 만져보고, 돼지의 몸에서 나는 상큼한 냄새까지 맡으며 함박웃음꽃을 연발한 날이다.

진정, 자연으로 돌아가서 동물들을 돌보고 자연의 순수함을 온 몸으로 느끼는 시간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하고 감동적인가! 도심지에서 메말라가는 노숙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자녀들에게도 세평농장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영성을 풍성히 채워주는 거름공동체임에 오늘도 감사를 드려본다.

2008년 여름
최상진(1-571-259-4937 미국 워싱톤 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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