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풀검(Robert Fulghum)이 1986년에 쓴 “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이미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예지와 깨달음에 큰 감동과 도전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꼭 필요한 삶의 규범들은 이미 학교 교육 전 아주 어렸을 적에 배우며, 그렇게 어린 나이에 배운 것들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내용의 책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와 비슷하게 사람이 살면서 깨달아야 할 가르침을 오래전부터 우리 어르신들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놀이를 통해 가르쳐주셨습니다. 아이들하고 하는 놀이 동작중 “도리도리”, “짝짝꿍”, “지암지암“과 같은 것들이 있는데 이런 놀이동작들은 그냥 아기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놀이 속에는 아이가 평생을 살면서 알아야 할 삶의 교훈들이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바로 그러한 옛 어른들이 놀이동작을 통해 가르친 삶의 교훈들을 모은 것을 단동십훈(檀童十訓)이라고 하는데 옛 어른들의 삶의 기지가 돋보여서 이를 소개합니다.

제 1훈: 불아불아(弗亞弗亞)
불(弗)’이란 기운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고 ‘아(亞)’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처럼 기운이 순환하는 무궁무진한 생명력의 발현인 아이의 자기 존중심을 키우려고 허리를 잡고 좌우로 흔들면서 하는 말이 ‘불아불아’입니다. 자기를 존중하며 살라는 가르침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 2훈: 시상시상(侍想侍想).
사람의 몸이 작은 우주(宇宙)이기 때문에 우주를 몸에 담은 듯이 매사에 조심하고 몸에 담긴 하늘의 뜻과 섭리에 순응하라는 의미에서 아기를 앉혀놓고 앞뒤로 끄덕이게 하며 하던 가르침입니다. 그만큼 몸을 귀히 여겨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3훈: 도리도리(道理道理)
아기의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삶을 이리저리 생각해 하늘의 이치와 만물의 도리를 깨치라는 놀이 동작으로 것이다. 아기의 머리를 좌우로 돌리게 하기 위해 하는 놀이동작으로 자연의 섭리를 가르치는 뜻이다.

제4훈: 지암지암(持闇持闇)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며 “잼잼”하던 동작으로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쥘 줄 알았으면 놓을 줄도 알라”는 깨달음을 은연중에 가르치는 놀이 동작입니다.

제5훈: 곤지곤지(坤地坤地)
집게손가락으로 다른 쪽 손바닥을 찍는 시늉을 하며 ‘땅=곤(坤)’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이치를 깨달으면 만물이 사는 땅의 이치도 깨닫게 되어 삶의 조화를 알게 된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6훈: 섬마섬마(西摩西摩)
아기를 한 손바닥에 세우면서 하는 동작으로 서(立)라는 말로 “서마서마”라고 하는 놀이 동작으로 남에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일어서 굳건히 살라는 뜻을 전하는 놀이동작입니다.

제7훈: 업비업비(業非業非)
아이가 해서는 안 될 것을 할 때, 이를 못하게 하면서 “에비에비”하던 말로, 도리에 어긋남이 없어야 함을 강조한 말로 도리에 맞지 않는 일(業)은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제8훈:아함아함(亞合亞合)
손바닥으로 아기의 입을 막는 시늉을 하며 하는 말로서, 두 손을 모아 입을 막은 ‘아(亞)’자의 모양처럼 입 조심하며 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제9훈: 작작궁작작궁(作作弓作作弓)
아이의 손바닥을 마주치며 “짝짝꿍 짝짝꿍”하며 장단을 맞추던 소리로서 세상을 살면서 음양의 결합, 천지의 조화 속에 사는 것이 즐거움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제10훈: 질라비 활활의(羅呵備 活活議)
“질라라비 훨훨”이라고 하면서 아이의 팔을 잡고 흔들며 하던 말인데, 삶의 모든 이치를 깨닫고 活活(훨훨)하게 아이가 잘 자라도록 기원하고 축복하면서 즐겁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삶을 살면서 간혹 우리는 왜 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그 때마다 그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해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당면한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애를 쓰곤 합니다. 요즘 들어 살기가 힘들다는 소리가 높아지면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답을 찾으려는 노력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답은 이미 우리 안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이미 알고 있는 답인데, 어른이 되면서 그것을 더 이상 답이라고 여기지 않은 듯합니다. 우리 속에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답, 지금은 그것을 기억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