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도시 한 가운데 작은 핫도그 스탠드가 있었습니다. 점심 시간에 직장인들에게 핫도그를 파는 노점상입니다. 길 건너에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점상이 있었습니다. 새벽이면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해서 길 거리에 나와서 장사를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경기가 무척 나빠 졌습니다. 직장인들이 점심식사 비용을 절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길거리 값싼 음식이니까 큰 어려움은 없겠거니 했지만 곧 매상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바쁜 점심 시간에도 평소의 반도 팔지 못하고 점심시간이 지나면 그나마 길 가던 손님들의 발길이 먼추지 않습니다. 며칠을 남은 핫도그와 아이스크림을 보면서 한 숨을 쉬며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스크림 장사가 길 건너 있는 핫도그 스탠드를 보다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핫도그를 하나 사 먹었습니다. 핫도그 장사는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 핫도그 하나라도 팔아 주니까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핫도그 장사도 길 건너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습니다. 기분이 좋아 졌습니다. 한 동안 손님이 없었는데 하나라도 팔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 지는 듯 했습니다. 아이스크림 장사는 아이스크림 하나 팔아서 손에 들어온 돈을 들고 다시 핫도그 스탠드로 갑니다. 또 하나를 팔아 줬습니다. 그 바람에 핫도그 장사도 길 건너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서로 매상을 올려 주니까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한숨만 낳던 재고도 싹 없어 졌습니다. 하루 장사를 잘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장을 보러 갔습니다. 분명 어제 재고를 남기지 않고 장사를 잘 했는데 물건 살 돈이 없는 것입니다. 돈이 길 건너 왔다 갔다 하면서 매상은 올려 줬지만 재고는 다 없어지고 돈도 남지 않게 된 것입니다.

집 값이 오른다고 집을 담보 잡아 돈을 융자해서 또 집을 샀습니다. 새로 산 집이 조금 오른다니까 거기서 돈을 뽑아서 또 집을 샀습니다. 어느날 돌아 보니까 집은 여러 채를 가지고 있는데 돈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나마 다음날 장사 밑천까지 다 날리듯이 꼼짝을 못하게 됩니다.

한 개인 뿐 아니라 거대한 금융회사들도 마찬 가지입니다. 담보 능력이 충분한 투자 상품을 팔았습니다. 투자 상품의 위험도를 분산시키려고 투자 상품을 담보로 또 다른 투자 상품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더 늘어난 위험 부담을 상품화해서 또 다른 투자 상품을 팔았습니다. 어느날 장부 상의 재산은 무척 늘었는데 실제 재고에 해당되는 실물 담보가 거의 바닥이 났습니다. 갑자기 새벽에 장사할 물건 살 돈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뉴스에서는 주 정부 살림에 엄청난 적자가 발생해서 비용을 줄이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주지사 공관에서 식료품 구입 예산을 줄일 정도로 살림이 빠듯해 졌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빨리 짐을 벗어야 합니다. 30만 달러의 빚을 다 청산하지 못해도 30만 달러를 지고 있는 것 보다 10만 달러를 부담하는 것이 낫습니다. 평소의 생활 양식을 바꿔야 합니다. 주지사 공관이 식료품 구입비를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단 1 센트라도 절약하고 챙겨야 합니다. 전기 스위치를 끄고 다니고 컴퓨터와 텔리비전의 코드를 빼는 등 평소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작은 것까지도 열심히 챙겨야 합니다.

절약하고 줄이는 것 만이 최선은 아닙니다. 만약에 미국 국민이 모두 절약만 한다면 경제는 더 어려워 질 것입니다. 급격히 변화하는 경제 여건에서 새로운 기회을 찾아 투자해야 합니다. 자신을 개발하기 위해서 저렴한 온라인 프로그램을 통해서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실업율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더 성장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아야 합니다. 절약하는 풍토에서 오히려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더욱 중요한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가치관의 재 정립입니다.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잃을 것을 잃어 버린다고 해도 결코 잃어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가?

교우들에게 두루 두루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사업체의 안부들을 물어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교우들이 가장 어두울 때에 더욱 밝은 소망의 빛을 보게 해 주십사 기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