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이 정하신 원리와 법칙에 따를 때 생존과 번영이 보장됩니다. 기도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기도의 네 번째 법칙은 말하는 것(Speaking) 이상으로 듣는 것이(Listening)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 드릴때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기를 구합니다. 소비자가 상품을 주문하듯이 하나님께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열심히 요구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초보일 때는 이런 류의 기도를 많이 하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단계가 깊어져 가면서 말하는 기도 수준에서 듣는 기도의 수준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기도는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 이상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것을 기도를 통해 알게 되고 그것을 위해 쓰임 받는데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누구하나 나그네 아닌 인생이 없는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지나는 동안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실 분이 하나님 한분뿐이기에 그분께 구하는 것 자체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단순히 생존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존해야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목적을 가지신 하나님께 묻고 그분의 뜻을 듣는 것이 진정한 기도의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의 기도의 법칙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하나님, 부디 우리들이 착한 아이들이 되도록 도와주시고, 또한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간단한 기도지만 좋은 기도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자세에 있어 자신의 희생이나 헌신이 전혀 없이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구하는 것은 무속신앙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철저히 자기 자신의 헌신이 전제된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주세요. 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나만을 위한 기도보다 우리를 위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나보다 공동체를 위한 기도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기도가 결코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여섯 번째의 기도의 법칙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누가복음22장 39절-44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감람산(겟세마네)에서 드리신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세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는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기도드릴 때마다 응답을 받는 체험을 하거나 성령 충만의 체험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기도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피곤에 지쳐 기도를 쉬고 싶을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적인 기도생활에 이르려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하게 기도드리는 습관이 몸에 배야 합니다.

둘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기를 요청하는 기도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 자신을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바를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궁극적 목적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셋째는, 기도를 위한 희생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힘쓰시며 간절하게 기도하셨으면 땀이 핏방울 같이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기도는 다음날의 십자가의 고난을 위한 기도의 십자가였습니다. 우리는 평소 건성으로 기도드리는 경우가 흔합니다. 응답은커녕 죄송하기 짝이 없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예수님의 기도를 따라가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생명 바치는 십자가에 앞서서 생명 바치는 기도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