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생활에 소극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가 기도를 열심히 해도 효과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했다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열심히 했다면 기도의 본질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인 원리요, 영적인 법칙인 것을 인정한다면 기도에 있어서도 기도의 법칙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도 법칙이 있어서 그 법칙을 따라 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처럼, 기도도 법칙에 따라 해야만 기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의 법칙을 이해하고, 지켜야만 기도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것을 해주시기에 앞서 우리가 해야 하는 부분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에 내가 해야 하는 부분과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부분을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삶의 내용에는 남이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 해도 우리를 대신해서 해서는 안 되고, 하실 수도 없는 것이 있습니다. 자녀의 숙제를 어머니가 대신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자녀를 위해서는 결코 대신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미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결코 대신해 주시지 않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할 일을 깨닫게 하시고 필요하면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이것이 기도의 첫 번째 법칙입니다.

기도의 두 번째 법칙이 있습니다. 한 공산주의자가 군중 앞에서 “공산당은 여러분에게 새로운 직장, 새로운 주택, 새로운 차를 약속합니다.”라고 연설했습니다. 그때 한 크리스챤이 연단에 올라가 “예배당은 그 새로운 직장, 새로운 주택, 새로운 차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을 약속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도는 환경을 바꾸기 보다는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게 합니다. 물론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얼마든지 환경과 상황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렵고 힘든 환경으로 인도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에는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온갖 시련과 환난을 통과했다는 사실과 그 시련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갔고, 그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환경과 조건에 굴복하지 않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바꾸어 주시기보다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의 세 번째 법칙이 있습니다.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하여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했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언제나 전진했지 후퇴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현실때문에 후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은 후퇴하거나 도피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할 때에 도피처 제공을 요청할 것이 아니라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도전하기 보다는 안일무사만을 비는 자세는 무당을 불러 굿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인생이라는 바다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예기치 않는 풍랑이 언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바다에는 근본적으로 풍랑이 없을 수 없습니다. 풍랑자체를 거부한다면 항해를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풍랑자체를 잔잔케 하실 수 있으나 우리로 하여금 그 풍랑을 밟고 가기를 원하십니다. 풍랑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과 용기, 꺼지지 않는 열정과 지치지 않는 힘을 간구하여 도전적인 항해를 계속해야 합니다. 적어도 이 세상에 머무는 시간이 끝까지 승리의 시간이 되어야합니다. 도망 다니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