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사라진 미각(味覺) 때문에 고민하다가 용하다는 사람의 소문을 듣고 뉴욕으로 옵니다. 그리고 미각을 고치기 위해 그 노인분과 함께 생활을 합니다. 그분은 말 합니다. ‘그냥 살지 뭐 때문에 여기까지 와?’ 맛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는 것의 고통을 몰라서 이런 말을 한 것일까요? 그리고 그분은 배고파하는 청년에게 예쁘게 만든 음식을 내어 놓으며 먹길 권합니다. 무감각하게 허기만을 채우는 청년을 향해 말합니다. ‘맛은 입으로만 보는 게 아니야, 먼저는 눈으로 느끼고, 냄새로 느끼고, 맛으로 즐기는 거지’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깊은 상념에 빠집니다. 사실 그 자신도 맛을 잃고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음식의 미각’이 아니라 ‘인생의 미각’이었습니다.

이민 생활에 아무 감흥 없이, 인생을 쫓기다시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등 떠밀려 살아 온 것입니다. 미국에 와서 남편을 잃고 아들 하나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그 아들 가정꾸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독립하여 혼자 사는 동안 자신을 뒤돌아 봅니다. 자신의 인생에 어떤 맛을 느끼며 살아 왔는가 ? 말입니다. 돌아보니 전혀 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생을 산 것입니다.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산 것입니다. 결국 이 환자로 찾아온 청년을 통해 자신의 ‘인생의 미각’을 찾게 됩니다.

다시 한 번 이 노인이 한 말을 생각해 봅니다. ‘그냥 살지 뭣 하러 여기까지 왔어?’ 그 미각 잃은 젊은이의 회복을 위한 간절함을 보며 자신의 잃어 버린 인생의 미각을 회복하는 모습은 그가 살아있음을 의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을 가만이 생각해 보면 뭔가를 느끼며 살기보다 그렇지 못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희,노,애,락 그뿐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에 느낄 수 있는 의미들을 느끼지 못하고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른 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인생에 일부가 되어버려 고치지 못하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생에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일이 나타납니다. 교회를 다니고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이 그 말씀 같고, 그 설교가 그 설교 같고, 성경을 읽으려고 들고 보아도 아무 느낌 없이 페이지 넘기는 일에만 신경 쓰다 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그럴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말씀이 주는 즐거움과 위로를 느끼지 못합니다. 말씀이 주는 인생의 가치도 느끼지 못합니다.

다시 미각을 잃은 청년을 생각해 봅니다. 참 다행인 것은 그 청년은 미각을 잃은 것에 대한 답답함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미각을 잃은 것은 단순히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 이상의 문제임을 알기에 그것을 고치려고 먼 길을 찾아 온 것입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도 이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미각을 잃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인생의 미각'을, '신앙의 미각'을 회복하기 위해, 아니 잃어 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사업이 잘 되길 위해 수고하고, 기도합니다. 육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수고하고 기도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변화 받고 새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수고합니다. 그러나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내 인생에 참 맛과 의미를 느끼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들을 때마다 남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깊은 은혜를 경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보여지는 것들과 향기와 들려지는 것들로도 세상 사는 맛을 느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들을 우리는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무의미하게 생각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깊은 ‘인생의 맛’과 ‘은혜의 맛’을 경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주신 말씀에서 출발합시다. ‘말씀의 맛’이 마음에 와 닿을 때 인생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을 냄새가 손 끝과 코 끝으로 찾아 왔습니다. ‘인생의 미각’, ‘신앙의 미각’을 회복하시는 이 가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