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디를 다녀 오던 때였습니다. 밀려 온 피곤으로 잠시 졸다 깨니, 비행기 천정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열심히 노를 젖는 여대생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어폰이 없어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노를 젖는 빠른 손놀림이나 결승점을 향해 가는 몸 동작에서 그들의 거친 호흡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 조정을 해 본 일도 없고, 물 속에 들어가는 것 조차 꺼리는 사람이지만, 조정 구경을 좋아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힘찬 아름다움 때문이었습니다.

조정의 꽃이라 불리는 에이트(Eight) 경기를 볼 때마다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9명이 한 조로 구성된 이 경기는 배에 앉은 선수들(조수)이 나아가는 방향, 즉 결승점을 등 뒤로 두고 앉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을 보고 길을 걸으며, 대부분의 운동은 자기의 시선 앞에서 무엇인가를 하는데, 유독 에이트는 자기가 가는 방향을 보지 않습니다. 이들이 보는 것이라고는 맨 앞에 앉아 소리를 질러대는 콕스(Cox), 즉 타수 뿐인데, 그렇게 경기하는 것이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남자 55kg, 여자 50kg이하이어야 하는 비교적 작은 체구의 콕스는 경기를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상대방 팀의 전력을 분석할 뿐 아니라, 자기 팀이 가지고 있는 힘을 파악하고 그 힘을 적절하게 안배하여 최상의 효과를 나타나게 합니다. 또한 8명 조수 각자의 특성과 성품, 기질까지라도 알아 경기에 활용하는 리더입니다. 쉴 새 없는 구호로 팀의 일치감을 만들며, 노를 저어야 할 때와 멈추어야 할 때를 재빨리 판단해야 하고, 순발력 있게 방향과 속도를 정해야 합니다. 물론 노를 젖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과 노력이 콕스의 지휘를 통해 승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갈 길이 보이지 않아도 갈 길을 보고 있는 콕스를 믿고 따라갑니다.

객관적인 현상만을 두고 말하자면, 좀 불공평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8명의 조수들은 모두 힘에 겹도록, 한 손(Sweep조정) 혹은 양손(Scull조정)으로 노를 젖고 있는데, 콕스 혼자만은 노를 젖지 않으니 그리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콕스는 그저 앞을 보고 소리만 지르면 되는 것 같습니다. 그깟 구령 외치는 것 누가 못할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심하게 말하면 그 자리에 앉아있느니 배의 무게라도 줄이게 내리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승리하면 누구나 두 팔 벌리며 콕스에게 달려가는 것이나, 좋은 콕스를 데려오기 위해 팀마다 애쓰는 것을 보면 그 자리가 어느 정도 중요한 지 실감합니다. 누가 소리를 지를 것인가, 누가 노를 저을 것인가는 기분에 따라 정해지지 않습니다. 다양한 자질과 훈련을 통해 코치가 결정할 것이지만, 결정한 뒤에는 각자 자기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일만 남습니다.

교회 공동체, 신앙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궁극적인 거룩한 승리라는 동일한 목적을 위해 뛴다면, 갈 길을 인도하는 이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여, 한 세상의 경기를 완주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 공동체의 콕스들은 피아(彼我)의 팀을 분석하고 경기마다 맞는 전략을 연구하며 순발력 훈련을 해야 할 것이며, 심지어 자기 인생의 무게 관리도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신앙공동체의 조수들은 노를 젖기에 합당한 체력 훈련과 좁은 배에 앉아도 흔들리어 넘어지지 않는 경건의 균형 감각을 키워야 하고, 무엇보다 구령을 외치는 타수에 대한 친밀한 신뢰감을 키워 일심동체의 단결심으로 시합에 나가야 할 것입니다.

신록의 계절, 노 젖는 젊은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싱싱한 아름다움을, 가까운 곳에서부터 보고 싶습니다.

글/ 그레이스교회 원종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