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만에 가족 휴가를 가졌습니다.

작년 여름에는 교회적으로도 도저히 휴가를 가질 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결국 한 해를 그냥 보내고 금년에 휴가를 갖게 되었습니다.

휴가를 떠나기 며칠 전에 예약해 두었던 장소를 취소하고 한적한 시골의 물가에 가기로 했습니다. 수퍼마켓을 가려면 15 마일을 운전해야 하는 곳입니다. 인접한 호수에서 수영하고 배를 타는 등 물놀이를 하는 것을 제외하면 정말 할 일을 찾기 어려운 곳입니다. 살림을 싣고, 골프 백을 싣고, 자전거를 달고 떠났습니다.

놀기 좋아하는 두 아이들을 북버지니아 기준으로는 도대체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곳에 데려다 놓고 두 주를 함께 지내면서 이런 저런 아기자기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형보다 훨씬 더 과격한 놀이를 좋아하는 둘째와 수영하다가 물 위에 누워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첫째 사이에서 즐거운 시간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는 주립공원에 가서 피크닉을 합니다. 시골 컨트리 클럽에 가서 오후 가장 싼 시간대에 쿠폰을 들고가서 아들 둘과 골프를 칩니다. 둘째는 18세 아래라고 무료이고 첫째와 둘이서 미안한 가격을 내고 해 질 때까지 골프를 칩니다. 군데 군데 흙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골 동네 페어웨이에서 두 아이들과 치는 골프는 야외 펏펏 골프를 치는 것 같았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면 바로 다음 주말에 큰 아이가 대학에 갑니다. 인터넷이 없어서 한달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다이얼 업 인터넷을 연결해서 썼습니다. 집을 떠나 앞으로 대학 캠퍼스에서 4년을 살게 될 큰 아이와 함께 10년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느리고 또 느린 인터넷 화면 앞에서 첫 학기 수강 과목을 함께 골랐습니다. 수강 등록이 열리는 바로 그 순간 미리 준비한 강좌 번호를 넣어 보냈습니다. 이미 닫힌 과목, 빈 자리가 3자리 뿐인 과목들을 기도하면서 신청했습니다. 뜻밖에도 이미 다 차서 닫힌 강좌도 등록이 되었습니다. 교과서를 고르고, 신청한 과목들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 지 실라버스를 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직도 혼자 보내기에 마음이 놓이지 않는 큰 아이를 보면서 이제 며칠 남지 않았는데 못해 준 이야기를 쏟아 봐야 의미 없는 잔소리만 될 것 같아 마음이 허전하기만 합니다.

처음 하루 이틀을 신이 났던 아이들이 며칠 지나고 나니까 "보어링"을 연발합니다. 그래도 한 열흘 지나니까 앞으로 매년 갖게 될 가족 휴가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며칠을 보내고 나니까 조금씩 앞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난 10년의 세월을 정리하고 앞으로 10년의 세월을 어떻게 인도하실 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시작합니다. 지난 3-4년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밭을 걷는 것 같았지만 이제는 비록 포장되지 않은 길이라고 해도 걸어야 할 길, 뛰어야 할 길이 보이는 듯 합니다.

소중한 휴가를 얻게 해 주신 하나님, 이모 저모로 챙겨 주신 집사님들, 신경쓰지 말라고 연락조차 자제하는 직원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위 칼럼은 지혜와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인 '연우포럼'(www.younwooforum.com)과 합의하에 전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