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저녁, 참 귀한 선교사님 가정이 저희 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15년 째 네팔을 섬기시는 김 성광 목사님께서 사모님, 아드님과 함께 오셔서 네팔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셨는데, 참석한 성도님 모두 뜨거운 은혜를 받았지요. 이 분의 조용한 선교 간증이 왜 그렇게 남다른 은혜가 되었는지 집에 돌아와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그 분의 선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희생의 열매였습니다. 네팔 선교를 결심하기 전, 선교사님의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셨고, 사모님은 장 폐색으로, 일년에 한번 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안되시는 분으로 결국 대장까지 절단한 37 kg 의 몸무게를 가진 병약하기 그지없는 분이었습니다. 태어난 아들은 2 살 때 뇌 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 후 한 평생을 방 안에서만 지내야 했던 중증 장애자였습니다. 이 때 김 성광 선교사님과 사모님은 네팔 선교의 소명을 받게됩니다. 죽어가는 어머니, 병약한 아내, 지체장애 아들을 데리고 어떻게 그야말로 거친 광야같은 곳, 3억 3천만의 우상이 있다는 우상의 나라, 네팔에서 선교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김 성광 목사님 가정은 믿음으로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네팔로 온 가족이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 사모님은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아, 네팔에 들어간 이후 한번도 수술을 받은 적이 없고 지금은 57-60 kg 의 건강한 선교사님의 동역자가 되어 네팔 문학을 전공하는 등, 눈부신 활동으로 네팔을 축복하고 계십니다.

장애인 아들은 3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 아이의 인생은 네팔에 값진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네팔에서 장애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정말 저주 그 자체인데, 윤회설을 믿는 힌두인들은 장애인으로 태어난 이유가 이전 생에서의 죄값으로 보기에, 장애인들은 철저한 경멸과 멸시의 대상이 됩니다. 이같은 장애인들에 대한 남다른 긍휼함을 가지고 네팔의 장애인들을 돕기 위하여 기도하던 중, 김 선교사님은 네팔 국립대학에 처음으로 특수 교육학과를 개설하는 일에 성공합니다. 그리하여 장애인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베풀어지고 저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일을 현재 주도하고 계십니다. 또한 육체적 고통에 대한 깊은 긍휼함을 가지고 병원 사역(피부과, 치과)을 시작하셨는데, 이제 이 병원은 네팔에서도 손꼽히는 병원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신학교가 시작되어 운영되고 있고, 네팔 전국에 교회가 세워졌으며, 2015년까지 100개의 교회 개척을 위하여 기도하시는등, 네팔 복음화를 위하여 혼신을 다하고 계십니다. 또한 고아원이 운영되고 있는데, 장래 네팔을 뒤흔들 미래 복음전도자들이 배양되고 있다고 흐믓해 하십니다.

도저히 한 개인을 통하여 이루어졌다고는 믿기지 않는 이 모든 굵직한 사역들을 대하며, 광야에 꽃이 피는 것 같은 아름다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것 같은 감동을 우리 모두는 그날 저녁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난하고 무지한 채 오랜 세월 사단에게 끌려 다니며 짓밟힘 당하던 이 불쌍한 백성, 네팔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에 넘치는 사랑이 느껴져,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했습니다,

네팔 선교 도중 많이 낙심이 되어 있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김 선교사님에게 말씀하셨다는 호세아서 2:28-3:5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김 받지 못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다른 신을 섬기고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가 된 여인같은 탕자라 할 지라도 하나님은 포기할 수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될 수 있었지요. 지난 금요일 저녁 김 성광 목사님의 네팔 선교 이야기는 바로 우상의 나라 네팔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확신있게 증거한 하나님 사랑의 이야기였습니다. 광야에 꽃을 피우시는 하나님의 이 아름다운 사랑이 온 지구위의 민족들에게 하루 속히 전해질 수 있기만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