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성도들과 ‘Lake Anna’ 파크로 야유회를 다녀왔습니다. 차들이 밀려 이동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모두 무사히 도착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재미난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젊은 남녀 3명이 제트스키에 수상스키를 매달고 호수로 나갔다가 호수 안전 경찰에게 붙들려 스키를 타보지도 못하고 나왔습니다. 가만이 이유를 보니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젊은 친구들은 바닷가도 아니고 큰 바람도 없기에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하고 나간 듯 합니다. 그러나 본인들 생각이야 어떻든 경찰들이 볼 때는 그들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돌려 보낸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다 보면 정해진 룰 보다는 자신의 경험이나 주변의 이야기를 더 과신하고 룰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는 길에 방해가 생기고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그럼 애꿎은 경찰들이나 룰을 원망하고 기분상해 합니다.

성경에도 종종 배를 타고 길을 나섰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문제 앞에 서게 된 사건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 너무 피곤하셔서 제자들에게 갈릴리 바다를 건너자고 말씀하시고 주무실 때도 풍랑으로 인해 앞이 막혔습니다. 그곳에는 뱃사람으로 잔뼈가 굵은 여러 제자들이 동승했음에도 사태를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죽게 되었다’고 낙담합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기 위해 올랐던 배가 강풍 유라굴로를 만나 파선 지경에 이릅니다. 구약에는 ‘요나’라고 하는 선지자가 타고 있었는데 잘 가던 배가 풍랑을 만나 항해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배를 타는 사람이나 선장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가 무엇이겠습니까 ? 풍랑입니다. 항해를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종종 사람들은 이런 원망을 합니다. 그 배에는 예수님이 타고 계셨는데 왜 풍랑이 오는 가 ? 그 대단한 바울 사도가 타고 있으면 풍랑이 오다가도 빗겨 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선지자가 타고 있는데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하는 것 아닌 가 ?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억지입니다.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풍랑을 없애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풍랑을 없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자칫 오해로 들릴 수 있겠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풍랑을 없게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 바다를, 그 바람을, 풍랑을 만드신 이도 그 분이십니다. 그 풍랑이 오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수 없이 많은 풍랑들과 보이지 않는 위험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믿으니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단련시키고, 아니면 내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한 행위들 때문에 바르게 가게 하시기 위한 방법으로 풍랑을 허락하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풍랑이나 환경을 탓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언제든 삶에 풍랑이 올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위기 앞에 설 수 있음도 압니다. 그렇다면 더욱 하나님의 법, 룰을 지키고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풍랑과 위기 속에서 안전할 수 있는 길입니다. 풍랑과 위기가 두려운 것은 극복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강원도 철원을 방문 했다가 레프팅을 한 기억이 납니다. 그곳에서 훈련된 조교가 강한 물살 속에서 보트를 함께 움직이는 법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는 마지막 보트가 뒤집어 졌을 때 어떻게 안전히 살아 남는가도 알려주며, ‘절대 겁먹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안전합니다. 마음껏 급한 물살을 즐길 수 있습니다’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가장 마지막 안전 행동은 보트가 뒤집어 졌을 때 허우적 대지 말고 두 팔을 벌려 몸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뒤로 누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명조끼가 있기에 어디서든 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저도 한 번 시험해보고는 그 다음부터는 겁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급한 물살로 가자고 할 정도로 즐기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에 문제가 여러분을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아니면 삶의 닥친 문제로 두려워하며, 왜 ? 예수를 믿는데, 남들은 다 괜찮다는데 나만 안 돼는가 ?라고 원망하고 계십니까 ? 원망하고, 두려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예수님 때문에 없어야 할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찾아 옵니다. 그러나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안전할 수 있고, 더 큰 문제도 즐길 수 있습니다. ‘주목하십시요’ 해결자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말입니다. 그 분을 바라볼 수 없다면 그 어떤 곳도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