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이 중등학교 교과서 지침서에 독도를 일본 땅으로 가르치라고 지시한 걸로 인하여 우리나라와 일본사이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의 갈등은 어제와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동안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일본에 의해 강점당한 아픈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는 침략자인 일본에 대해서 비단 독도문제만이 아니라 여타한 문제까지도 일본에게는 지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는 아마도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증오심이 아직도 우리네 가슴속에 깊숙이 스며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간, 얼마 전 작고하신 ‘토지’의 작가 고 박경리님의 미발표된 유고, ‘일본산고(日本散考)’라는 글이 신문에 발표되었는데 일제강점기를 직접 경험하신 선생님께서 15년전에 작가적 직관과 감수성으로 일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기 위해 고심하며 쓰신 글로서 미완된 글이기는 하지만 일본과의 관계가 갈등 국면에 접어든 요즘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글에서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갈등에는 일본의 침략을 받은 우리나라가 피해자로 가진 증오도 있지만, 일본도 우리나라에 대한 증오가 있고,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가 가진 일본에 대한 증오보다 훨씬 전부터 일본은 우리나라에 대해 증오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대해 갖는 증오는 침략을 당했기에 갖는 ‘현상적 증오’라고 한다면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증오는 민족의 근원에서 비롯된 ‘태생적 증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증오가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증오의 근원”이라는 제목으로 밝히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유독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사뭇 달라온 것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고 박경리님의 ‘일본산고(日本散考)’중 제1편 “증오의 근원”을 요약한 글을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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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1950년 일본서 초판을 발행한 古易문예사전 동양편을 보면 문예사조 항목에 무려 26페이지가 일본문학을 위해 할애되어 있고 중국문학이 12페이지, 인도문학이 약 5페이지, 아라비아 페르시아 남방 아세아가 각각 1페이지 안팎, 다음은 일본주변문학으로 묶었는데 아이누, 유구, 대만 순으로, 그중에서도 맨 끄트머리에 조선 문학이라 하여 반 페이지를 쓰고 있다. 사실 이 같은 일은 다반사요, 우리 민족문화를 홀대하는 일본의 처사가 어제오늘 시작된 것도 아니다. 신물 나게 겪어왔고 그 일에 대해서는 우리 거의가 불감증 상태다. 우리 문화를 홀대했다 하여 감정적으로 따지자는 것도 아니다. 어떤 깨달음이라 해야 할까 그것 때문에 붓을 들었고 미묘한 깨달음은 오랜 옛날 묻혀버린 시간의 수렁 속으로 나를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일본에 일방적으로 우리가 당해 왔다는 것, 따라서 우리의 원한도 일방적일 수밖에 없고 의식 깊은 곳에 물려 있는 증오의 가시는 여간하여 뽑아내기 어렵다는, 이것이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들 공통된 감정이며 인식이다. 한데 나는 언제부터인지 그들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들의 의식 깊은 곳의 원한이 더 오래이며 큰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 잠재된 과거의 열등감이 우리 민족문화를 짓이기려 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정복자의 속성이라는 꽤 관대한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집요함은 열등감의 발로나 정복자의 속성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나는 결코 일본주변문학을 집필한 다케시타 가즈마(竹下數馬)라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그랬을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설혹 출판사의 방침이었다 해도 그것엔 관심 없다. 모두 지엽적인 것이며 개인이나 출판사의 편견이기보다 일본사회 전반에 걸쳐 오랜 세월 심어진 선험적인 것, 무의식 속에 깊이 박힌 것, 바로 그것에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일본은 아이누, 유구, 대만에 대해서는 부인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조상에 관한 한, 민족원류에 관해서는. 그들은 부인한다. 원류를 부인하면서 한국의 모든 것을 집요하게 부인한다.

이노우에 기요시(井上淸)의 ‘日本의 역사’에서 인종에 관한 것을 발췌해 보면 조몬(繩文)토기시대, 일본인종의 원형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고 후에 한국에서 높은 야요이토기문화(彌生式土器文化)가 들어와 지배했는데 신래인종이 조몬시대인을 멸망시켰는지 혼혈이 되어 인종적 특성이 말살되었는지 그러나 조몬시대인에게 흡수되었으리라는 것이 일본 인류학자들의 통설이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일본은 도래인이라 표현하는 한족(韓族)이 그들 지배계급을 형성했던 것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 그들의 심정일 것이며 가능하면 일본인종을 일본열도 고유의 인종이기를 바라는 것이 본심일 것이다.

지금에 와서 우리와 일본이 동족 어쩌고 하는 것도 실은 진부한 얘기다. 역사 연구의 영역일 뿐, 터럭만큼의 동질감도 없는 마당에 감상에 젖을 필요는 없다. 다만 서로 이해하게 되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