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동포복음화대성회 마지막 날

▲워싱턴동포복음화대성회 마지막 날

▲워싱턴동포복음화대성회 마지막 날

▲워싱턴동포복음화대성회 마지막 날

▲워싱턴동포복음화대성회 마지막 날

▲워싱턴동포복음화대성회 마지막 날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진행됐던 2008년 워싱턴동포복음화대성회가 성황리에 마쳐졌다.

성회 마지막 날인 20일 이동원 목사는 신앙의 영적 단계를 자녀됨의 단계, 아이들의 단계, 청년들의 단계, 아비들의 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하면서 각각의 단계에서 우선적으로 경험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이 목사는 “자녀됨의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단계로 보혈의 피로 인해 죄사함 받았음을 경험해야 하며, 아이들의 단계는 귀한 것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것으로 기도를 경험해야 하며, 청년들의 단계에서는 말씀으로 강해져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어야 하며, 아비들의 단계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단계로 전도를 통해서 그 마음을 깊이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한인교회협의회 회장 김양일 목사는 “워싱턴동포복음화대성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성황리에 마치게 된 것을 진정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모처럼 워싱턴지구촌교회를 담임하다 한국에 가서도 명설교자로 꼽히는 이동원 목사님이 오셨는데 동포들이 귀한 말씀을 들어서 신앙을 다시 한 번 회복하고 동포사회에 진정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그런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씨앗들이 다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램이 있었습니다.

기대한 것처럼 성회기간 내내 강사님을 통해 치유와 변화, 성숙에 대한 귀한 생명의 말씀들이 생명수처럼 쏟아져서 감사했고, 무엇보다도 이번 성회를 통해 수많은 동포들의 마음이 새롭게 결단되어서, 동포사회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믿음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겠다는 결단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아래는 성회 마지막 날 이동원 목사의 설교 전문이다.


1. 자녀됨의 단계에서는 죄사함을 경험해야 한다.

우리가 도덕적인 결신으로 죄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예수님은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도덕적인 결신이 우리를 구하지 못했을 때 하나님은 그 앞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 죄를 십자가에 짊어지고 거기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엡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요일 1: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님의 피만이 저와 여러분을 온갖 죄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보배로운 피를 흘리신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것이 신앙의 출발입니다. 아무리 직분을 받고 직제를 맡았다 하더라도 이 확신이 없으면 신앙생활을 출발도 못한 것입니다. 예수의 보혈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길 축원합니다. 이것이 자녀됨의 단계입니다.

2. 아이들의 단계에서는 기도를 경험해야 한다.

두번째 단계는 아이들의 단계입니다. 영적인 아이들의 단계. 이 단계에서는 어떤 경험이 일어난다고 되어 있습니까.
[요일 2: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세상에 태어나면 아빠 엄마에게 많은 것을 구합니다. 신앙생활도 그렇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교회 나오시면서 기도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습관이 매우 중요하죠. 습관은 좋은 것입니다. 자녀들을 키울 때 좋은 습관을 길러주면 80%이상 이미 끝난 것입니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 자기 말에 책임을 지는 습관, 정직하게 사는 습관, 교회 나오는 습관, 기도하는 습관, 예배하는 습관이 얼마나 중요합니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는 것을 성경에는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 산에 가시매’라고 돼있습니다. 내일 십자가를 질 비장한 결심을 하시고 그 곳에 가셨을 수도 있지만 그 곳은 언제나 예수님이 기도하러 찾던 곳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찾게 되면 기도가 나옵니다.

[마 7:7-11]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기도를 경험하면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한국교회 지난 20년간을 스스로 비판할 때 이런 비판 많이 들었습니다. 신앙이 지나치게 기복적이다. 믿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잘먹고 잘살고 이런 세속적인 축복을 구하는 일에만 지나치게 매달려 있었다. 저는 이 비판이 상당한 부분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린 아이들이 어린아이처럼 구하죠. 장성하면 장성한 자의 것을 구합니다. 아이들은 장난감 사줘. 이거 사줘. 저거 사줘 그럽니다. 어린아이 신앙이 기복적이 되는 것은 나무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아이가 와서 아버지 제가 최근에 아버지께서 구하는 것을 생각하였사오니… 징그럽죠. 아이처럼 구해야 합니다. 너무 기복적인 신앙을 나무라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계속 거기서 머무르면 그것도 문제죠. 크면서 아빠의 마음도 헤아리고 해야 합니다.

과거에 사막의 교우들은 우리의 신앙이 높은 곳으로 나갈수록 아버지가 주시는 것에서부터 아버지를 구하는 것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신앙이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주시는 것 은사에 집중하게 되지만 신앙이 자랄수록 아버지를 구하는 것으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것 이것이 신앙의 성숙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몇 년 전에 기도에 갈급해서 수도원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수도원 입구에 ‘하나님만으로 만족한 곳’이라고 써놨는데 이 말이 굉장한 도전이 되었습니다. 정말 그 곳에서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TV도 없고 음식도 시커먼 빵 조각...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3-4일은 완전히 침묵하게 만들어요.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 내 옆에 계시는 그 분의 임재가 경험되기 시작해요. 신실하신 그 분과 함께 있다는 것이 내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가오는지… 주님이 함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거기에는 단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신앙하는 이에게는 이렇게 충고하고 싶습니다. 닥치는 대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20대에 예수를 믿기 시작했는데 머릿속에 기복신앙 이런 게 생각나서 처음부터 기도를 잘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 때 사귀던 여학생 하나가 있었는데 지금의 아내가 아니라 말하기 좀 꺼려지지만.. 그 여학생에게 받았던 좋은 우산 하나가 있었습니다. 근데 어디에 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요. 문득 한번 기도해 볼까? 얼마나 유치한 기도입니까? 하나님 우산 어디에 있습니까? 근데 갑자기 다방에 둔 우산이 생각나요. 가보니 거기 있더라고요. 이 경험은 저에게 코페르니쿠스적 인생의 변화였어요. 아 되는구나! 기도해야겠구나! 처음에는 이렇게 기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기도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점점 더 깊어져 아버지의 임재를 경험하는 기도를 하시길 바랍니다.

책을 읽다보니 세크테리 버드. 직역하면 비서 새. 이 새가 평소에는 잘 날다가 위험을 감지하면 누군가 자기를 공격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날지 못하고 기다가 붙잡히는 새입니다. 그것이 꼭 내 꼬라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와이에 동물원 입구에 그 새 이름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보니 칠면조처럼 다리가 길고 닭보다 커요. 근데 정말 기더라고요. 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기다가 붙잡히는 새.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주께서 저희에게 주시는 가장 놀라운 것이 기도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기도로 날아갈 수 있습니다. 인생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장벽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기도의 날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못하고 엎드려 붙잡히는 새. 우리가 영적인 아이들의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를 붙잡고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붙들고 더 깊은 영적인 세계로 나가길 축원합니다. 이게 아이들이 단계. 이 단계에서는 아버지를 아는 것. 그 아버지가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영적 아이들의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은 기도의 경험입니다.

3. 청년들의 단계에서는 말씀을 경험해야 한다.

세번째 단계는 청년들의 단계.
13절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14절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영적인 청년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두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육체적 청년의 묘사와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한 가지는 강하다. 또 하나는 이긴다. 강하다 이긴다. 청년이 강하지 못한다면 청년다운가. 청년이 이기는 패기가 없다면 어떻게 청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제가 아들이 둘 있는데 둘째가 꼭 야곱과 같은 증상이 보였습니다. 형보다 오버액션을 하고 투지도 있고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쇼업도 하고. 둘째 아들이 16살 때쯤 친구들을 집에 초청해서 생일잔치를 했습니다. 그런데 생일잔치 중간에 갑자기 아들이 “아빠 팔씨름 하자!”라고 해서 친구들이 좍 둘러보는데 팔씨름을 했습니다. 이겼을까요? 졌을까요? 이겼습니다. 기뻤을까요? 슬펐을까요? 기뻤습니다. 지고 나서도 기뻤습니다. 이만큼 자랐구나. 강해진다 이길 수도 있다. 오늘 본문에는 이김의 상대가 누구라고 했습니까? 악한 자. 영적인 전쟁의 대상은 악한 자 사탄마귀입니다.

이 다음에 15절 16절은 영적인 청년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16절에 사탄마귀가 쓰는 3가지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사탄마귀가 인류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3가지입니다.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보았을 때 먹음직도 하고(육신의 정욕), 보암직도 하고(안목의 정욕), 네가 그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높아져. 이게 이생의 자랑. 첫 사람이 넘어졌잖아요. 먼 훗날 둘째 아담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도 이 세가지 시험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광야에서 돌 덩이가 떡 덩어리가 되게 하라. 육신의 정욕이죠. 천하 만국의 다 보여주면서, 안목의 정욕입니다. 성전 꼭대기에 뛰어 내리라. 천사가 살짝 들어올리면 넌 내일 아침 신문에 나. 슈퍼스타가 돼. 이게 이생의 자랑에 관한 것입니다. 악한 자는 이 3가지 시험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영적 청년이 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시험에 번번히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말씀으로 강해진다고 했습니다. 영적 청년의 단계에서 경험해야 할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경험하고 계십니까? 말씀과 나의 거리는 나와 하나님과의 거리를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붙들고 묵상하십니까? 날마다 말씀에 비추어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습니까? 말씀을 암송 묵상하십니까? 어느 날 내가 범죄하려 하는데 말씀이 생각나요. 말씀이 나를 컨트롤하고 나를 붙들고 나를 세우고 그래서 내가 이 시험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 청년이라고 해서 항상 이긴다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 청년의 단계에서도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한지 5년쯤 됐을 때 깊은 영적 침체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기도도 안되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인가. 신앙이 막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성경은 계속 붙들고 있었고 성경에 관한 책도 몇 개 읽었습니다. 그 때 로이드 존슨 목사님의 ‘Spiritual Depression’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중에 한 대목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신앙생활의 성숙은 등산하는 것과 같다. 등산하는 사람은 등산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래서 넘어질 수도 있고, 거의 꼭대기에 거의 도착해서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자빠지는 모습은 똑같다. 그런데 다른 것이 있다. 일어서면 달라진다. 9/10 지점에서 넘어졌다 일어나면 저 아래부터 다시 올라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거에요. 그 자리에서 일어서기만 하면 조금만 가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거에요. 지금까지 하나님과 함께 보냈던 시간, 말씀을 위해 투자했던 시간, 엎드린 기도, 이게 하나도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간에 멈추면 가다가 아니간만 못하니라 이런 속담이 있는데 성격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다가 중지해도 간 만큼 이익이니라. 비록 중단할지라도 그 동안 기도로 무릎을 꿇었던 것, 그리고 성경을 경험했던 모든 것들은 하나도 무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일어서기만 하면 됩니다. 이 시간 그 동안 넘어져있던 많은 성도들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일어서면 달라져요.

세번째 단계인 청년의 단계는 말씀을 통해 강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시험하는 자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성경의 기록된 말씀을 붙들고 사셨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서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이 얼마나 더 필요할까요? 이제는 악한 자를 이기시길 주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4. 아비들의 단계는 전도를 통해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더 깊이 아는 것

네번째 단계 아비들의 단계. 왜 어미들이 없느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적 아비들의 단계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아이들의 단계에서도 안다는 것이 나오죠. 아이들의 단계에서는 하나님이 아버지로구나 처음으로 아버지를 알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영적 아비들의 단계는 태초부터 계신 그 분을 아는 것. 태초로 지금까지. 그 분이 어떤 일을 하시며 그 분이 어떻게 역사를 주관하시는지를 알고 그 분이 어떻게 우리를 잡으시는지 알고 하나님의 하나님됨을 깊이 아는 것입니다. 지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경험적을 아는 것입니다.

전 제 아내가 중학교 다닐 때부터 알았습니다. 성경공부 선생이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서 제 아내로 삼았습니다. 제 친구들은 길러서 잡아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잘 알겠어요? 결혼을 했을 때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그녀. 신혼여행갔다와서 제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 게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당신이란 사람 도무지 모르겠다. 내가 안 것은 피상적인 것들 살아보니 전혀 모를 사람. 그런데 10년 20년 지나면서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당신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다 고. 결혼 25주년에 잠시 캐나다로 휴가를 갔는데 처음으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여기서 안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마지막 유언을 합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라 기막힌 유언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평생을 붙들고 씨름했던 내가 평생을 경험해 보니 그 분은 인자하신 하나님이야. 신실하신 하나님이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하나님을 너도 알았으면 좋겠다.

영적 아비의 특성 2가지. 아비는 경험이 많습니다. 자손에게나 후학들에게 할 말이 많습니다. 밤을 새워도 다 못할 이야기들. 또 하나의 특성은 영적 아비에게는 자녀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있어야 영적 아비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육적인 아들은 없었지만 아들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나의 참아들 디도, 나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 갇힌 중에 낳은 아들 오네시모... 감옥에서 전도하고 양육했어요. 영적인 자식들. 요즘 한국 교회가 전도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전도를 안 합니다. 정상적인 교회는 아이를 낳는 교회죠.

저희 교회는 한국 교회 중에 대형 교회에 속하는데도 전도를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대형교회는 주로 수평이동이 많기 때문에 70, 80, 어떤 때는 90%가 다 다른 교회에서 온 사람들이에요. 이것을 부흥했다고 할 수 있는가? 양심의 가책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역자 회의에서 그런 고민을 말했습니다. 이게 부흥인가. 양도둑질한 것이 아니냐. 같이 있던 부목사 한 명이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양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에는 염소들이 많이 옵니다. 염소 같은 사람들이 성경공부하고 구원의 확신 받고 양이 되는 역사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약간 위로가 됐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계속 마음에 부담이 있어서 2년 전 하나님 앞에 결단했습니다. 그래서 선포했습니다. 교회안에서 선포했는데 어떻게 신문에도 나고 그랬는데... 수평이동을 최대한 억제하겠다. 다른 교회 성도들이 오지 못하도록 최대한 억제하겠다. 다른 교회 나가는 성도를 데려올 생각을 꿈에도 하지 말라고. 그대신 전도하라. 작년 한 해 동안. 작년 말에 한 해를 정리하는데 작년에 등록한 사람이 3,850명 정도였습니다. 그 중에 교회 배경이 전혀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되었나. 89.7% 거의 90%였습니다. 진짜 전도됐다는 것입니다. 교인들 말을 들면 쫓겨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전도했다고 하는데... 그리고 목사님 전도하니까 돼데요. 이런 말을 합니다. 그 동안 전도를 할 수 있는데 안 한 것이죠.

워싱턴 교민사회도 아마 60% 이상은 교회에 나오지 않죠? 그들에게 초점을 맞춥시다. 안 믿는 사람들 전도해 보니 너무 재밌습니다.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큰 목사님. 이렇게 부르는 사람은 큰 스님이라고 불렀던 사람이겠죠. 어떤 분은 주지 목사님. 너무 재밌습니다. 워싱턴 교회들이 정말 안 믿는 사람들 전도하는 교회들이 됩시다. 전도하면 아비의 심정을 압니다. 자식 잘 키워볼려고 기러기까지 하면서 고생하잖아요.

자식을 향한 애틋한 마음. 우리 마음속에 그런 보람과 환희와 삶의 의미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전도해야 영적인 아비의 심정을 알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1970년 초 유학 올 때 장학금을 주셨던 분이 있습니다. 미국 CBMC 회장을 지냈던 분이고, 오하이오에서 최고 부자로 많은 돈을 벌기도 했던 분입니다. 이 분으로 인해 유학을 올 수 있었기에 이 분이 궁금하잖아요. 디트로이트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 분 내외가 친히 차를 몰고 오셨습니다. 굉장히 좋은 차를 가지고 나오실 줄 알았는데 아주 수수한 차 올스모빌을 타고 오셨습니다. 그 차가 정말 좋아 보여서 미국 사는 동안 내내 올스모빌을 올드모빌이 될 때까지 탔습니다. 여름철에 도착했는데 굉장한 대저택을 상상했는데 평범한 집에서 사셨습니다. 더워도 에어컨을 안 틀고 선풍기를 틀어서 삼 일을 별러서 물었습니다. 간신히 영어를 만들어서. 왜 에어컨을 안 트시나요? 기도해봤는데 아직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서. 그러면서 그 돈을 아끼셔서 전도하고, 선교하는데 유능한 장학생들을 키우는 데 많은 돈을 쓰시는 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할머니가 키친 테이블에서 쇼핑 리스트를 죽 적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이렇게 리스트를 안 적고 가면 충동구매할까봐 리스트를 작성한 물건만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 할아버지가 저를 CBMC모임에 데리고 갔습니다. 미국 CBMC는 회원들끼리 모여서 돌아가면서 간증을 해요. 그 날은 할아버지가 간증할 차례였는데 어느 젊은 사업가에게 전화를 해요. 꼭 거기서 만나자고 12시 15분 전에 도착했습니다. 젊은 사업가가 와 있어서 반갑게 인사하고 식사를 15분 정도에 다 마치고 간증을 합니다. 그 분이 예수를 어떻게 믿게 됐는지 간증을 하고 마지막에 초청을 해요. 예수님을 영접할 분 손 들어 보라고. 젊은이가 손을 들었어요. 가서 안아주고 그 다음부터는 이틀마다 맥도날드나 버거킹에서 그를 만나 간단한 성경공부를 해요. 성경구절 가르쳐주고 한 5번쯤 만난 후에는 그 청년이 사는 집 가까운 곳의 교회 담임 목사와 미팅을 해요. 청년을 인계해 주는 거에요. 또 그 분은 흑인 가정에 복음을 전하고…

저는 미국 생활을 이 할아버지의 옆모습을 지켜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신학교에서 배울 수 있었던 그 어떤 것보다 이 할아버지의 모습이 영향이 컸습니다. 이 분이 제일 먼저 도왔던 분이 김장환 목사님. 그 다음에 제가 도움을 받았죠.

이 분이 수 년 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전에 할머니가 먼저 치매에 걸리셨었는데 요양원을 방문했었는데 좋은 요양원이 아니라 평범한 요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왜냐면 거기는 전도할 사람이 많데요. 요양원 게시판에 성경공부한다고 붙이면 2-30명 모이는데 성경공부가 너무 재밌대요. 할머니 옆에 두고 아침에 뽀뽀하시고 저녁에 가서 안아주시고 할머니 먼저 가시고 할아버지 몇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잊을 수 없는 장례식이었습니다. 유언을 따라 알리지도 않았는데 장학생들 전도를 받았던 사람들 3-400이 자리를 메웠습니다. 마이크 하나 놓고 할아버지에 대해서 생각나는 데로 말하면 된다고 해서 저도 나가서 말했습니다. 거의 80%가 똑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잠자고 누워있는 분을 가르키며 이름이 월더 예거였습니다. 예거 장로님은 저의 영적인 아비였습니다. 이분을 통해서 저는 진정한 사랑을 알았습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또다른 장례식을 생각했습니다. 바로 나의 장례식. 나에게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저분은 나의 영적인 아비였습니다라고.

여러분이 살다간 그 자리에 무엇을 남기고 가겠습니까. 성경은 성격적 생명을 남기고 간 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이 바라는 영적 정상에 설 영적인 아비요. 어미라고. 오늘 저는 이 성회를 마무리하면서 사람을 찾습니다. 영적인 어비와 아비를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