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부나 선행을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사연 없는 분들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연에도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어려울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을 수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며 갚아 간다는 것입니다.

32살의 잘나가는 ‘경영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가진 청년이 매스컴에 소개 된 일이 있습니다. 이유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재산 317만원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버는 돈들에서 생활비 월세포함 60만원 정도만 쓰고 나머지는 모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쓴다는 것입니다. 쉽게 결단하고 행동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의 가치는 그가 가진 것이 많은 것이 아니기에 더 빛나는 일인지 모릅니다. 많이 가진 사람들의 기부나 도움 보다 자신의 있는 모든 것을 나누는 마음, 요즘같은 세상에 본이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사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이 어려울 때, 방황 할 때 노점상을 하는 한 분으로부터 흔쾌히 등록금을 도움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자기도 어려운데 남을 도와줄 수 있구나’하고 생각하며 앞으로 자신도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향한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없이는 가능하지 못한 일입니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 자비심’입니다.그런데 이런 행동들이 값싼 휴머니티나 동정으로 전락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긍휼의 본질을 잃어 버릴 때 생깁니다. 진정한 긍휼은 내가 능력이 있거나 도울 만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긍휼을 받은 사람이기에 베푸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끊임 없이 무언가로부터 공급 받을 때 그것이 넘쳐 흘러 지속적으로 사랑과 긍휼을 베풀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 인간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긍휼을 베풀 만한 위치에 있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태생적으로 자신만 생각하고 자신이 우선시 되어지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것 챙기는 사람보고 우리는 손가락질 할 수 없습니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끊임없는 사랑과 자기를 베풀 수 있는 길은 내가 먼저 그 끊임없는 긍휼을 얻고 누릴 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나에게 그런 긍휼을 경험하게 할 수 있습니까? 오직 한 분 예수님 만이 우리에게 마르지 않는, 다함이 없는 사랑과 긍휼을 공급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환경이나 조건에 관계 없이 자신의 목숨을 나를 위해 내어주시기 까지 나를 사랑해 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장소나 대상이 어떠하든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영원한 긍휼을 베풀 길 원한다면 그분의 사랑과 긍휼을 먼저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긍휼이 내 안에 넘쳐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인생과 사물들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내 상황에 매이지 않고 지속적인 긍휼을 베풀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내 코가 석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가만 생각해 보면 남 돌보고 신경 쓸 여력이 없을 때 사용합니다. 이 말은 내 안에 긍휼의 샘이 말랐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긍휼이 여기는 자는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 내 코가 석자가 아니라 넉자, 다섯 자라도 내 안에 긍휼의 샘이 넘쳐나면 주변의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사랑과 긍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먼저 내 안에 긍휼의 샘을 파야 합니다. 이는 자신을 가장 비참한 존재로 만들 때 가능해 집니다. 긍휼의 원천이신 예수님 앞에 ‘나는 연약한 존재이고, 은혜 받을 만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임을 인정할 때 얻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분의 무한하신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그 긍휼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시 세상을 향해 그 긍휼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들여다 보시길 바랍니다. 혹여 내 생활에 쫓겨 다른 어떤 것, 누구 하나 생각할 겨를 없이 살아 오지 않았습니까 ? 내 마음에 긍휼이 메말라가고 있음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긍휼의 원천이신 예수님께 은혜를 구하시길 바랍니다. 그 분이 우리 인생에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알게 하시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리게 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