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세미나를 하는 중에 성령과 은사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조금 신앙에 열심을 내시고 은혜를 체험한 분들이라면 이제 더 깊은 신앙의 세계를 경험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는 성령과 은사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각기 객체로 존재하시듯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누구의 아래 있거나 속해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분은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입니다. 물론 창조 사역에도 동참하셨고,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시기 전, 구약 시대에도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장 구체적으로 활동하신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실 때, 인류의 구원과 돌봄을 위해 보내주시고 남겨주신 분이십니다.

쉽게 이해 하기가 어려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그분의 형체를 보면 조금 이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모습을 불, 바람,비둘기, 기름 등으로 표현 합니다. 이 말씀은 곧 성령은 어떤 특정한 형태의 모습을 갖지 않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단어는 ‘바람(프뉴마)’ 같습니다. 바람은 느낌으로 알고 환경에 일어나는 변화로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도 이와 같이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변화와 마음에 믿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성령을 우리가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때가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입니다. 혹 건성으로 주위의 권유에 예수님을 받아 들였다고 해도,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경험하고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성령이 우리 안에서 계심을 확인하고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성령은 우리가 지적으로 알아갈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삶 속에 자연스럽게 존재하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 상황에서는 더 강한 체험을 할 때도 있습니다. 혹은 더 깊은 신앙 생활을 위해 그분이 주시는 선물(은사-Gift)을 받으므로 더 분명하게 경험하고 인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을 경험하고 싶은 분을 위해 성경은 다른 방법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저 마음에 간절히 ‘사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하시는 일은 어떤 일 일까요 ?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창조에 함께 하신 성령은 인류를 십자가로 구원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시고, 도우시며, 인도하시는 모든 일들을 하십니다. 그러나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죄인들을 거듭나게 하시는 일입니다(중생). 그리고 중생(born- again)하여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각자 사모하는 대로 은사를 주셔서 더 열심히 세상을 이기고,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잘 따라가며 살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이제 성령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 하시는 분들이 갖는 오해를 풀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어려움 없이 신앙 생활을 하시다가 어떤 기회가 되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분들이나 성경의 도전을 받아 ‘성령의 은사’를 받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갖는 오해입니다. 나는 성령을 받은 것 같은데 왜 ‘방언’을 못하는 가 ? 왜 병이 낳지 않는 가 ? 왜 내가 구하는 은사는 주시지 않는가?하는 것입니다. 여기 ‘사모하라’는 말에서 오는 오해 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간절히 사모하면 주시는 것이 맞습니다만 내게 그 선물이 맞는가 아닌가는 성령이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어린 자녀가 칼을 갖고 싶어 한다고 칼을 선물할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어린 자녀에게 가장 잘 맞고, 그의 성품에 합당한 것으로 어린 자녀가 생각지 못하는 더 좋은 선물을 준비해 줄 것입니다. 우리 성령께서도 우리가 원하고 구하는 것이 내게 합당하면 주시지만 그렇지 못하고 그보다 내게 합당한 것이 다른 것이라면 그분이 내 평생에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선물, 하나님을 내 인생에 가장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것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은사에는 우열이 없습니다. 비교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님, 다른 것은 안 되나요 ?
이제 은사를 받고 경험한 분들이 범하는 실수를 생각해 봅시다. 먼저 은사를 불같이 사모하고 원하다가 은사를 받은 이후에는 잠시 기뻐하고,누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은사를 잃어버리거나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은사와 비교하며 더 많은 은사만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은사를 주신 성령에 대한 무지와 불신 입니다. 선물은 받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주는 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을 받았을 때는 감사함으로 누리고 부지런히 사용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과 비교하며 가치를 논하면 주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주신 분은 그것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 보고 계시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고, 불평만 하고 있다면 그 선물의 능력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작년 연말에 우리교회 집사님으로부터 분홍색 넥타이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 다음 주에 그 넥타이를 메고 교회엘 갔습니다. 그분은 시종 제게서 눈을 때지 못하셨습니다. 아마 그날 말씀의 은혜보다 제가 멘 넥타이에 은혜를 더 받으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국 집으로 가시면서도 ‘목사님, 넥타이가 너무 잘 어울려요’라고 칭찬도 해주고 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선물을 받으면 그 선물이 어떤 것이든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선물을 준 분에 대한 예의 이기도 하고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됩니다. 선물을 하신 분이 종일 저만 바라봤듯 성령도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면 그 선물을 어떻게 했는지 지켜보십니다. 거기에 입이 나오고, 퉁명하면 성령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에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말의 의미를 그래서 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더 큰 은사를 사모하는 것은 각종 은사집회를 찾아 다니며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게 주신 은사를 찾아보고 그것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섬김과 베풂으로 더 큰 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나 우리와 같은 인격을 가지고 계시며, 하나님과 같은 분이 십니다. 그분은 우리 구원과 이 땅에 살면서 이루어가는 신앙의 성장과 가장 가깝게 역사하는 분이 십니다. 그분을 느끼길 원하신다면 먼저 마음에 진정한 예수님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내 안에 성령이 역사하심을 의심 없이 믿으며 맘껏 세상을 승리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매거진 Tea Time '신앙살롱'에 연재된 손 목사의 글 중 한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