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뜨고 있는 스타가 바로 우주인 이소연 씨이다. 그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하면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탤런트 이소연 씨까지 덩달아 떠서 인터넷 화제의 검색순위 상위에 오를 정도였겠는가? 그런데 인기만 뜬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떴다. 우주 무중력 상태에서는 떠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위임목사 투표를 앞두고 있는 내게 어느 집사가 “교인들이 목사님을 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목사님은 좋으시겠어요.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시지요? 저도 그래요”라며 농담 비슷하게 격려가 되는 말을 주었다. 그러고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뜨면’ 좋기는 좋은가 보다.

그래서인지 서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뜨기 위해 실험하다 떨어져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 9세기 안달루시아에는 무어인 필나스, 11세기 영국에는 수도사 올리버, 그리고 15세기 이탈리아에는 조반니 바티스라는 사람들이 그랬다. 아무튼 우리에게는 너나 할 것 없이 ‘떴으면’ 하는 꿈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냥 뜨기만 하면 되느냐는 것이다. 아니다. ‘뜨는 것과 나는 것’, ‘나는 것과 높이 나는 것’의 그 차이와 비전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음을 안다면 그렇게 말 못할 것이다.

우리는 ‘뜬다’라는 말을 잘 쓴다. 그러나 중력이 작용하는 이 세상에서는 뜬다는 말처럼 위험하고 무서운 것도 없다. MB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함께 뜬 한나라당의 실세인 이재오 의원과 이방호 사무총장이 4.9선거로 추락하게 되었다. 과거 IMF의 외환위기 때 우리는 한강의 기적으로 떴던 대한민국 전체가 허망하게 추락하는 모습도 보지 않았던가.

이제는 구름이나 풍선처럼 그저 떠다니다가 사라지는 인생이 아니라 우주정거장까지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아니 그 이상으로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개가 있어야 할 것이다. 독수리의 날개가 불어오는 폭풍을 헤치고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게 하듯이 말이다.

문제는 이소연 씨를 태운 우주선 소유즈호처럼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힘)가 있어야 하는데 그 답은 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앙망하게 될 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냥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BC 680년경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부디 우리 모두가 소유즈호가 아닌 믿음호를 타고 제한된 우주정거장(ISS) 보다 훨씬 자유롭고 넓은 천국을 향해 날아오르는 주의 용사들이 되어지기를 소원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사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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