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 탈북여성이 경험하는 인신매매는 개별 범죄의 반복을 넘어 북한에서의 탈북, 중국 체류와 강제송환, 한국 정착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보호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 구조적 인권 문제라는 분석이 나왔다. 인신매매 피해자로 인정되더라도 안정적인 체류 자격과 전문적인 지원, 실효적인 구제가 보장되지 않는 만큼 피해자 식별과 보호·지원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발간한 보고서 '경계를 넘는 여성들: 북·중 탈북여성의 생존과 선택'은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경험한 탈북여성 30명을 심층면접하고, 북한인권정보센터 통합인권DB에 기록된 인신매매 관련 사건 4,544건을 분석했다. 보고서는 탈북여성의 직접 진술과 북한·중국·한국의 법률·정책, 국제규범을 토대로 인신매매의 발생과 지속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법적·제도적 조건을 살폈다.
보고서에 따르면 발생 시기가 확인된 데이터베이스 기록 4,064건 가운데 2,229건(54.8%)은 2000년대, 1,207건(29.7%)은 1990년대, 620건(15.3%)은 2010년대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이 수치는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사건의 시기별 분포를 나타내며, 전체 탈북여성 인신매매의 실제 발생 규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보고서는 탈북여성의 인신매매 경험을 국제연합 초국가적 조직범죄 방지협약을 보충하는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 이른바 팔레르모 의정서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분석했다. 인신매매의 구성요소인 '행위', '수단', '목적'을 살펴보고, 특히 매매혼과 예속적 혼인이 어떤 조건에서 착취의 한 형태로 성립하는지에 주목했다. 혼인의 외형 아래 성폭력과 재생산 착취, 강제노동 등 여러 형태의 착취가 중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층면접과 중국 법원 판결 사례에서는 매매혼을 목적으로 여성이 거래된 뒤 성폭력, 강제적인 가사·농업 노동, 재생산 착취, 자유 제한, 감시, 재판매 위협 등을 경험한 양상이 확인됐다. 보고서는 "혼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여성의 선택이 자발적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구금과 강제송환, 보복, 지원 상실, 자녀와의 분리에 대한 두려움이 선택을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일부 여성은 중국인 남성이나 해당 가정을 떠나기를 원하는 반면, 다른 여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형성된 자녀와의 관계, 정서적·경제적 유대 등으로 인해 남기를 원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경우에도 거주와 가족생활에 관한 결정은 충분한 정보와 실질적인 자유에 기초해야 하며, 여성은 자신의 결정을 나중에 다시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선택이 최초의 인신매매 피해 인정이나 가해자의 형사책임에 영향을 미쳐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인신매매 피해가 지속되는 원인을 북한·중국·한국의 대응 체계와 연결해 분석했다. 북한에서는 식량 부족과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여성이 탈북하지만, 합법적인 출국 경로가 사실상 제한돼 브로커가 통제하는 비공식 경로에 의존하게 된다. 북한으로 돌아갈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중국 체류 중에도 여성의 취약성을 심화시키며, 가해자가 탈출이나 신고를 막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탈북여성이 주로 '불법 경제이주민'으로 취급돼 인신매매 피해 여부와 난민 보호 필요성, 강제송환 금지 사유 등을 개별적으로 심사받기 어렵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미등록 체류 신분은 합법적인 체류와 취업, 의료 등 기본적인 서비스 이용을 제한하고 혼인과 자녀 등록에도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구금과 강제송환의 위험이 지속되면서 브로커와 중국인 남성 및 그 가족이 이를 통제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중국 법원이 인신매매를 인정하고 가해자에게 형사책임을 묻더라도 피해 여성에게 안정적인 체류 자격과 전문적인 지원, 실효적인 구제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며 "범죄에 대한 사법적 판단과 피해자 보호가 분리돼 있으며, 강제송환에 대한 두려움이 그 간극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 도착한 탈북여성은 북한이탈주민법에 따른 보호·정착 체계를 이용할 수 있으며, 인신매매방지법도 국외에서 피해를 입은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 대상으로 포함한다. 그러나 두 지원 체계의 연계가 충분하지 않아 정착 과정에서 인신매매 피해가 식별되지 않으면 의료·심리사회적·법률·가족관계 지원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북한이탈주민으로서 정착 지원을 받더라도 중국에서 겪은 인신매매 피해가 별도로 인정되거나 필요한 지원과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세 국가에 공통으로 필요한 개선책으로 △피해자 식별 절차 강화 △수사 협조 여부와 관계없는 보호·지원 △전문성을 갖춘 시민사회단체의 참여 △피해자 정보의 비밀 보장 △인신매매 위험에 대한 교육 등을 제시했다. 특히 피해 여부를 한 차례의 면담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의료·복지, 수사·출입국, 초기 보호와 정착 지원 과정 등 여러 접점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별 개선책으로는 북한에 국제적으로 인정된 인신매매의 구성요소와 착취 목적을 반영한 범죄 규정을 마련하고, 허가 없는 국경 출입에 대한 처벌을 중단할 것을 제언했다. 중국에는 체포·송환 절차와 분리된 피해자 식별·지원 경로를 마련하고, 피해자 지원 과정에서 확인한 체류 정보가 단속이나 송환으로 자동 연결되지 않도록 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에는 통일부와 하나원, 지역적응센터 등 정착 지원 기관에 피해자 식별 절차를 도입하고, 인신매매 피해 지원과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을 연계할 것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인신매매 피해자라는 인정이 가해자 처벌의 근거에 그쳐서는 안 되며 피해자의 법적 지위와 보호에도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북한·중국·한국을 함께 포괄하는 인도·태평양 지역 차원의 인신매매 대응 협력 체계를 마련하고, 피해자 보호와 안전한 귀환, 구제 등에 관한 공통 기준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