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Photo : ) 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1] 얼마 전, “왜 사람들은 JYP의 강의에 매료될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바 있다. 그 글을 읽은 분들로부터 요청이 쇄도했다. 박진영 강의의 장점이 뭔지는 알겠는데, 이번에는 그가 자신 있게 내놓은 강의의 문제점이 뭔지에 대한 글도 좀 써달라는 부탁이었다.
박진영의 강의에 매료되는 이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의 강의가 많은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2] 일단 그는 유명 인사다. 그리고 그가 늘 진지하고 진솔하고 겸허한 자세를 취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호감을 갖게 된다. 특히 그는 어려운 개념을 쉬운 언어로 설명하는 능력이 있고, 법정·계약·비즈니스 등의 현실적 예화를 잘 사용하고, 복잡한 개념을 하나의 논리적 이야기로 구성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아쉬운 점은 그가 신학이나 성경 해석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다는 점이다.

[3] 복음은 단순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교리들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구약과 신약 전체를 꿰뚫는 실력에다 각 성경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은 물론,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을 독파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 믿을 만한 신학교에서 정상적인 신학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머리가 비상해서 독학으로 성경을 연구해서 통달했다는 사람보다 더 위험한 사람은 없다.

[4] 과거에 성경을 1,000독 했다는 분과 교제한 적이 있다. 성경을 성구 사전처럼 달달 외우는 모습에 많이 놀라긴 했다. 하지만 신학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독했기에 거의 이단 수준의 위험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 박진영의 모습이 그와 흡사하다.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강의와 집회 외에는 계속해서 성경만 연구하는 걸 최고의 행복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다.

[5] 구약과 신약을 전공하고 늘 성경 해석과 난제 풀이에 몰두하고 있는 나로서도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늘 절감하며 살고 있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단의 가문에 장가를 가서 다소간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박진영이, 신학교 문턱에도 가지 않은 채 ‘복음’이나 ‘삼위일체론’과 같이 거대한 기독교의 교리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자기가 정리한 지식까지 호기롭게 가르치고 있으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6] 앞으로 계속해서 그가 ‘복음 세미나’와 ‘삼위일체론 강의’에서 펼친 내용들을 가지고 성경적으로 하나씩 비평할 예정이다. 오늘은 그의 한 가지 명백한 이단성에 관한 얘기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성경을 읽다 보면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듯한 구절들이 적지 않게 나온다. “하나님의 사람은 심판받지 않는다”(요 5:24)라는 내용도 나오고 “우리는 반드시 심판받는다”(고후 5:10) 라는 얘기도 나온다.

[7] 또 요한일서에는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요일 3:9)라는 내용도 나오고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요일 1:8)라는 구절도 나온다. 성경을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는 성도들이 이런 구절을 대하게 되면 크게 당황하게 된다. 성도들 중에서 성경을 읽다가 의문을 가져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누구에게도 자기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8] 그런 점에서 박진영은 남다른 사람이다. 그는 성경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나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교리 중 틀렸다고 생각하는 점들에 대해서 숨기지 않고 지적하면서, 자신이 정리한 새로운 깨달음의 내용을 대중에게 과감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가 성경을 읽다가 부딪힌 내용 중에는 롬 4:2와 약 2:21이 있다. 바울의 주장과 야고보의 주장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듯한 내용이다.

[9] 바울은 롬 4:2절에서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라고 했고, 반면 야고보는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라고 했다. 한 사람은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했고, 한 사람은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10] 문자 그대로 읽으면 완벽한 모순이다. 둘 중 하나만 진리여야지 둘 다 진리가 될 순 없다. 그래서 박진영은 고민했을 것이다. 성경이나 바울과 야고보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볼 순 없었기에 자기 나름의 고민을 한 끝에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다. “성경에 나오는 복음 중 바울 서신은 우리와 같은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이요, 야고보서를 비롯한 나머지 복음은 유대인을 위한 복음이다.”

[11] 다시 말하면, 성경에는 대상에 따라 서로 다른 내용의 두 가지 복음이 있다고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박진영의 급소가 뭔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짧은 지식에 맞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 새로운 복음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그의 강의 속에서 박진영의 아킬레스건이 뭔지를 잘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기본적인 신학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약점이요 위험성이다.

[12] 바울이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할 때의 ‘행위’(ἔργον, works)와 야고보가 아브라함이 행함으로써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할 때의 ‘행함’(ἔργον, works)이 전혀 다른 의미임을 박진영은 알지 못했다. 바울이 언급한 ‘행위’는 ‘율법의 행위’이고, 야고보가 언급한 ‘행함’은 ‘믿음의 행위’를 의미한다. 바울이 전한 대상과 야고보가 전한 대상도 달랐고, 그 의미도 달랐음을 박진영은 전혀 몰랐다.

[13] 바울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는 공로로서의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고 한 반면,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믿음이 원인이 되어 드러난 행함’으로 구원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롬 4:2에서 말한 바울의 내용과 약 2:21에서 말한 야고보의 내용은 충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두 사람의 말은 종합해야 완벽하고 건전한 복음을 이루는 요소가 되는 내용들이다.

[14]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 그 대상에 따라서 상반되는 두 복음으로 나뉜다”라는 주장만큼 위험하고 이단적인 교리는 없을 것이다.
박진영은 이 한 가지 주장만으로도 이단성이 있는 사람이라 평가할 수 있다.
신뢰할 만한 신학교에서 신학 교육을 제대로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박진영이 모범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15] 무림의 날고 기는 고수들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짧은 자기의 무술 실력을 겁도 없이 함부로 선보이고 있는 박진영에게 꼭 부탁하고 싶다.
태권도 초단이 짧은 실력으로 고수한테 대들다가 쌍코피 터지는 꼴을 더는 당하지 말고, 제발 신학교에 가든지 성경의 전문가에게 가서 정확하게 배워서 제대로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길 간곡히 바라고 충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