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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 그러나 오늘날 교회와 신학교에서 삼위일체는 성경 읽기와 동떨어진 채 '1이면서 동시에 3'이라는 딱딱한 수학 공식이나 추상적인 교리로 여겨지곤 한다.  

역사학자이자 신학자인 매튜 베이츠의 신간 『삼위일체론의 탄생』은 이러한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이 책은 삼위일체가 그리스 철학의 산물이나 후대에 억지로 끼워 맞춘 교리가 아니라,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생동감 넘치는 '성경 읽기'에서 비롯되었음을 흥미롭게 밝혀낸다. 

그리스 철학이 아닌 '위격론적 주해'에서 탄생하다 

저자는 삼위일체의 기원을 찾기 위한 핵심 열쇠로 고대의 독특한 성경 읽기 방식인 '위격론적 주해(prosopological exegesis)'를 제시한다. 

이는 화자가 누구인지 애매한 구약성경의 특정 구절에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배역(prosopon)을 배정하여 대화체로 읽어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주께서 내 주에게 이르시되"(시 110:1)라는 다윗의 노래를 하늘에서 오가는 성부와 성자의 대화를 엿들은 것으로 해석하는 식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약의 시편과 예언서는 과거의 죽은 문자가 아니라, 삼위 하나님이 사랑과 기쁨으로 나누시는 대화의 대본인 '테오드라마(theodrama, 하나님의 드라마)'였다. 

"예수는 나중에 신격화된 것이 아니다" 

현대 성서비평학계의 일부 학자들은 예수가 원래 평범한 인간이었으나 세례나 부활 때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을 뿐이며(양자 기독론), 신성(神性)은 후대에 덧입혀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베이츠는 복음서와 바울 서신, 초기 교부들의 글을 치밀하게 추적하여 이러한 '양자론'을 단호히 논박한다. 초기 교회는 시편의 여러 구절을 테오드라마로 읽어내며, 십자가 위에서 버림받는 순간조차 예수가 성부와 인격적 대화를 나누는 선재(先在)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었다. 즉, 기독교는 처음부터 예수를 신적 존재로 고백하는 고(高)기독론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건조한 공식을 넘어 '사랑의 사귐'으로 

이 책은 단순히 교리사를 파헤치는 지적 유희에 머물지 않는다. 성서학과 조직신학이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하며 단절되어 있던 한국 신학계에 두 학문이 어떻게 아름답게 융합될 수 있는지 실천적 모범을 보여준다. 

나아가 무한 경쟁과 관계의 파편화로 지쳐가는 현대 사회, 그리고 그리스도를 기복 신앙의 도구로 소비하려는 세태를 향해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서로를 존중하고 끊임없이 사랑하며 자신을 내어주시는 삼위 하나님의 '인격적 사귐'이야말로 교회가 회복해야 할 참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머리로만 동의해 온 메마른 교리에서 벗어나 성경 곳곳에서 생생히 박동하는 삼위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목도하고 싶은 신학생과 목회자, 성도들에게 이 책은 가슴 벅찬 신앙의 여정을 여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