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키스탄에서 법원이 13세 기독교인 소녀를 납치해 강제 개종과 결혼을 시켰다는 혐의로 기소된 무슬림 남성에게 그 소녀의 양육권을 넘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독교 인권단체와 아동 보호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인권운동가들은 이번 결정이 미성년자인 그 소녀를 추가적인 학대와 강압에 노출시킬 수 있다며 당국에 즉각적인 보호 조치를 촉구했다.
소수민족연합 파키스탄(Minority Alliance Pakistan, MAP) 회장 아크말 바티 변호사와 정의의소리(Voice for Justice) 회장 조셉 얀센 등은 8월 29일(이하 현지시각) 파이살라바드 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독교 소녀 앰버 나딤의 양육권을 피고인 모신 리아카트에게 넘긴 법원의 결정에 항의했다.
얀센에 따르면, 앰버는 지난 6월 12일 리아카트에게 납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신고 이후 당국은 앰버를 구조해 성폭력 전담 보호시설에 머물도록 했으며, 리아카트를 체포했다.
지난 6월 27일 법원에서 열린 첫 심리에서 앰버는 "리아카트의 가족들이 내게 성인이라고 주장하라고 압력을 가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변호인 측은 앰버가 18세이며 2008년 6월생이라고 기재된 개종 증명서와 혼인 증명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앰버의 가족과 법률 대리인은 해당 문서가 위조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앰버의 부모가 2012년에 결혼했다는 점을 근거로, 그녀가 2008년생이라는 기록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당시 나이 기록의 불일치를 확인하고 앰버의 실제 연령을 확인하기 위한 의학적 검사를 명령했으며,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앰버가 정부 보호시설에 머물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얀센은 "이후 라나 소하일 판사가 연령 확인 결과가 법원에 제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앰버의 양육권을 리아카트에게 넘기고 보석을 허가했다"고 주장했다. 판사는 "앰버가 자발적으로 이슬람교로 개종했고 리아카트와 결혼했으며 납치된 사실이 없다"는 내용의 새로운 진술서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부 측 무함마드 안와르 나즈 검사는 보석에 강력히 반대하며 기존 사건 기록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법원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얀센은 "변호인들이 재판 과정에서 앰버에게 개종을 철회할 경우 배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그는 "이 같은 의혹은 앰버의 진술이 협박이나 강압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고 말했다.
앰버의 어머니 나디아 나딤은 가족들이 앰버와 여동생 제니퍼의 나이를 변경하기 위해 위조된 출생 서류가 사용된 혐의와 관련해 형사 고발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논란이 된 출생 기록과 상반되는 내용의 '검증된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했으며, 혼인증명서의 취소와 해당 결혼의 불법성 및 무효 선언을 요구하는 민사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얀센은 "앰버의 사건은 단지 한 아이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파키스탄의 아동 보호법과 헌법적 보장, 그리고 종교의 자유에 대한 약속이 종교와 관계없이 모든 아이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지를 시험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MAP의 아크말 바티 변호사는 최근 제정된 펀자브 아동결혼 제한법이 아동 결혼과 관련 범죄에 대해 강력한 법적 보호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동 납치와 그루밍, 강압, 협박, 또는 조작에 대한 신빙성 있는 의혹이 존재할 경우 단순히 아동의 진술이나 동의만으로 양육권과 보호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며 "아동의 최선의 이익과 안전, 존엄성, 그리고 장기적인 복지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운동가 사다프 아드난은 미성년자가 연루된 강제 개종을 명확히 범죄로 규정하는 포괄적인 법률 제정을 촉구했다. 그는 강제 개종과 납치, 조혼, 성 착취 의혹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도 요구했다.
이번 사건은 최근 파키스탄 내 기독교인을 비롯한 종교적 소수자 여성과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납치와 강제 개종, 조혼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발생했다.
앞서 미국 의회 의원 11명도 지난달 20일 파키스탄 정부에 18세 기독교 여성 네하 파키르 사건과 관련해 보호 조치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국제기독연대(Christian Solidarity International, 이하 CSI)에 따르면, 파키르는 지난 3월 24일 펀자브주 카수르 지역의 집을 나선 뒤 실종됐다. 이후 가족 측 변호사가 라호르의 한 이슬람 신학교에서 그녀를 찾아냈으며, 가족들은 그녀가 실종 후 며칠 만에 이슬람교로 개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파키르의 가족은 그녀가 종교를 바꾸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며 개종의 유효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미국 의원들은 파키스탄 법무부 장관에게 "파키르의 신체적 안전과 복지를 보장하고, 독립적인 법률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가족과 자유롭고 사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향후 사법 절차가 협박이나 부당한 영향력 없이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단체 주빌리 캠페인(Jubilee Campaign)이 지난 7월 유럽의회에 제출한 '도둑맞은 소녀들'(Stolen Girls)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5년까지 파키스탄에서 기독교인과 기타 종교적 소수자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납치와 강제 개종, 조혼, 성폭력 의혹 사례 210건이 기록됐다.
이 가운데 펀자브주에서 186건인 88.6%, 신드주에서 22건, 카이베르파크툰크와주에서 2건이 보고됐다. 피해자의 83% 이상은 18세 미만이었다. 특히 기록된 사례의 평균 피해자 연령은 12.8세였으며,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평균 연령은 35.8세로 나타났다. 일부 사례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연령 차이가 30세를 넘었다.
보고서는 "이러한 사례들이 위조 문서와 법적 절차의 조작, 제도적 보호 장치의 실패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210건이라는 수치는 해당 단체가 직접 기록한 사례에 한정된 것으로,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모든 사건을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파키스탄은 오픈도어(Open Doors)가 발표한 2026년 기독교 박해국 순위에서 8위에 올랐다. 보고서는 조직적인 차별과 폭력, 강제 개종, 강제 노동, 성폭력 문제를 주요 위험 요소로 지적하며, "미흡한 법 집행과 만연한 면책이 반기독교 폭력의 반복을 초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