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매일 자신을 성찰하는 글을 남겼는데, 오늘 우리에게 <명상록>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글이다. 그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정치적 압박과 배신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밤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문을 썼다고 한다.
그는 로마 황제라는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음에도,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이렇게 다짐했다. "오늘 나는 참견하기 좋아하고, 은혜를 모르며, 오만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상처받거나 화내지 않겠다." 황제는 타인의 결점을 통해 자기 내면을 먼저 돌아보며 성찰한 것이다.
반성 혹은 자기 성찰은 인간의 특권이다. 지구상에 오직 사람만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을 할 수 있는 존재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성찰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성찰을 촉구하는 격언이나 속담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경험상 성찰하는 사람은 성숙한 인격자이거나 성숙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적어도 내가 만나고 경험했던 사람들은 그렇다.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는 일일삼성(一日三省)을 강조했다. 하루에 세 번씩 반성했다. 증자는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나를 살핀다. 남을 돕는 일에 충실했는가? 친구에게서 신의를 지켰는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혔는가?"를 반성했단다. 스스로 돌아보는 성찰은 성숙으로 나가는 지름길이다.
자기 말과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성찰은 처절한 자기 객관화 작업이다. 자신을 객관화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사실 우리는 자기합리화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심지어 심각한 잘못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도 있다. 인식하지 못하는 잘못은 고칠 수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성숙한 삶은 성찰에서 나온다. 성찰은 자신을 단련시킨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돌아보는 삶의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했다. 건강한 삶을 살려면 성찰이 필수다. 성찰은 우리를 겸손케 하고 삶의 본질을 보게 한다.
18세기 영국의 경건한 신학자 존 플래처는 매일 밤 자기에게 던진 일곱 가지 성찰 질문으로 유명하다. 그는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갔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분을 내지 않고 친절히 대했는가? 오늘 나에게 주어진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는가? 낭비하지 않고 검소한 생활을 했는가? 혹시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는가? 오늘 나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전하고 나타냈는가?’ 등 7질문으로 매일 성찰했단다.
성찰이 성숙으로 이끈다. 성찰이 삶의 본질을 보게 한다는 점에서 성찰은 인문학적이다. 인문학적 소양이 깊을수록 깊은 성찰이 가능하다. 성경은 성찰의 차원을 높인다. 성경은 성도에게 신전의식(神前意識)을 가지라고 가르친다. 하나님 앞에 있는 신앙인은 하나님의 시선에 노출된 사람이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 사람은 성찰과 회개를 피할 수 없다.
성찰의 최고봉은 마음 중심을 꿰뚫어 보는 하나님 시선으로 자신을 살피는 것이다. 무명의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받은 다윗 왕이 통렬히 회개한 것은 하나님 시선으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윗의 탁월함은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살피기 위해 왕권을 버린 것이다. 경륜과 지위 그리고 타이틀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삶을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