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서 초라한 성적을 거둔 홍명보 감독이 사퇴후 입국했다. 여론이 험하다. 한국 대표팀의 축구 경기력은 너무 안타까웠다. 남아공과 시합하던 날 옆자리에 앉았던 아저씨는 육두문자로 감독과 선수들을 욕했다. ‘축구 경기를 관람하면서 왜 욕을 하시냐?’라고 항의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그 아저씨와 공감하고 있었다. 한국국가대표 축구팀은 엉망이었다.
한국국가 대표팀은 큰 사랑을 받았다. 국가적인 지원과 팬들의 응원 그리고 온 국민의 성원! 열렬한 응원과 지원이 부메랑 되어 분노로 홍명보 감독을 강타했다. 홍명보 감독에 대한 비판 여론은 사뭇 험악하다. 축구 애호가들은 물론 전문적인 축구 해설가들과 전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한목소리로 홍명보 감독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홍명보를 1991년 가을에 만났다. 고려대를 졸업한 홍명보 선수는 K리그 드래프트에 응하지 않고 상무팀(군대)에 입대했다. 당시 필자는 상무팀 군종 목사였다. 상무 축구팀은 1991년 가을철 실업 축구 연맹전에서 우승했다. 골키퍼 김병지와 리베로 홍명보가 활약했던 상무는 김학범등이 있었던 국민은행을 꺾고 우승했다. 그때 홍명보는 우리들의 영웅이었다.
2002년 월드컵을 거치며 홍명보는 대한민국의 희망이었고 자랑이었다. 2002년 한국 축구가 4강에 오를 때 마지막 승부차기에 성공하고 두 팔을 들고 환하게 웃던 홍명보를 기억한다. 폴란드, 이탈리아, 그리고 포르투갈 등의 유럽 강호를 차례로 꺾을 때 홍명보는 든든한 리베로였다.
당시 홍명보는 아시아 최고의 리베로라는 칭송을 받았다. 홍명보는 안정된 수비 조율과 뛰어난 빌드업 능력으로 한국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다고 평가받았었다. 아니나 다를까 홍명보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에서 활약을 인정받아 아시아 선수 최초로 FIFA 월드컵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이상은 최우수 선수상(골던볼), 실버볼에 이어서 개인상으로 대회 3위에 해당하는 상이다. 이것이 과거 홍명보의 위상이었다.
우리 영웅 홍명보 선수는 지도자로도 승승장구했다. 국가대표팀을 맡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일본을 침몰시킨 박주영과 구자철의 슛 장면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도 홍명보는 한국 축구를 이끄는 영웅이었고 한국 축구의 희망이었다. 이런 홍명보가 월드컵의 초라한 성적에 물러났고 심각한 비난을 받는다. 졸전을 거듭하던 한국 대표팀이 32강에 탈락하자 홍명보는 사퇴했다. 사퇴 소식을 알리고 퇴장하던 홍명보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고 비난받는다. 모든 것이 미운 모양이다. 영웅의 초라한 추락이다.
사퇴 기사에 등장하는 홍명보 얼굴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의 얼굴이 보였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신문선 교수나 박문성위원 등등 축구 전문 해설가들은 홍명보 감독이 연구하지 않았고 주장한다. 우리 팀 전술 연구도 없었고 상대 팀 전술도 연구하지 않았단다. 더 뼈아픈 지적은 홍명보는 경고와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단다. 이런 실패를 예측했단다.
우리 영웅 홍명보의 추락을 보며 쇠락해 가는 한국교회를 생각했다. 부흥과 성장의 상징으로 이름을 날렸던 한국교회는 옛 영광에 매달려 있다. 도덕적 해이나 만성적 부조리도 여전하다. 그런데 이런 경고에 반응하는 몸짓이 보이지 않는다. 날카로운 경고도 애타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지경에 아무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비겁함과 초라함이 부끄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