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문 중에 경미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승합차에 부딪혔다. 사고도 경미했고 사고자도 중국 교포라 조용히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입원하여 건강을 확인하라고 강력히 권했다. 많은 사람의 협박성(?) 충고에 못 이겨 한방병원에 입원했는데, 받았던 경고대로 자고 일어나면 어깨가 결리고, 자고 나면 멍이 드러나 치료를 잘 받았다.
갑작스러운 입원이라 쉴 수 없었다. 할 일이 산더미였다. 한국 사역 정리도 필요했고, 선교회 행정업무도 언론사에 원고 송고도 미룰 수 없었다. 일주일 입원 기간 내내 휴게실 테이블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보냈다. 병원 휴게실에서 보낸 일주일은 영육간 치료와 회복의 시간이었다.
우선 휴게실에서 책을 읽었다. 서울대 의대 명예 교수 정현채 박사의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를 읽었다. 웰다잉(Well Dying)을 살피는 여정을 병원에서 시작했다. 정현채 박사가 전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보람 있게 보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가져다주듯 값지게 쓴 인생은 편안한 죽음을 가져다준다.”라는 말이 마음을 울린다.
<팀 켈러, 죄를 말하다>도 좋았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묵직한 책이었다. 우리 죄를 밝혀주고 죄를 돌아보게 하는 무게 있는 책이었다. 리머디 교회를 목회했던 팀 켈러의 고뇌가 담긴 죄에 관한 설교집이었다. 나의 죄를 구체적으로 살피고 회개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휴게실에서 많은 글을 썼다. 언론사 편집부의 독촉을 받았던 밀린 원고를 거의 모두 송고했다. 한국교회 현실을 생각하며 쓸 글들을 구상하였고, 기도하며 몇 꼭지의 글을 완성했다. 병원 휴게실에서 병든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울러 한국교회의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나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너무 *부박해진 자신을 아파했다.
셋째 휴게실에서 사람을 구경했다. 가장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휴게실을 지키며 많은 사람을 보았다. 좁은 휴게실에는 두 사람이 마주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4개 있었다. 나의 테이블을 제외한 3개의 테이블에서 쉼 없는 만남이 이뤄졌다. 좁은 휴게실에서 그들의 만남과 대화를 듣고 보면서 깨달음이 많은 시간이었다.
좁은 휴게실에서 이웃을 배려하여 목소리를 낮추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큰소리로 대화하고 음식을 나누었다. 박장대소하는 그들의 웃음소리에 몇 번씩 놀란 적도 있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스피커 폰으로 통화했다. 배려가 없는 세상인 듯하다.
음식을 먹으며 옆에 앉은 나에게 음식을 권하는 사람이 꼭 한 사람밖에 없었다. 일주일 내내 휴게실에서 많은 사람이 음식을 나누며 만났지만, 꼭 한 사람이 음식을 나누었다. 장모님과 아내를 만나러 온 면회객이었다. 조용히 기도한 후에 건네준 도너츠가 휴게실에서 받은 유일한 음식이다. 그 도너츠를 먹지 못하고 보관했다. 그 도넛을 먹기가 너무 아까웠다.
병원 휴게실에서 보낸 한 주간을 곱씹어 본다. 이름 모를 얼굴들에 담긴 이 시대의 얼굴을 읽고 숨어 있는 내 얼굴을 본다. 세상은 나처럼 무례하고 나만큼 차갑다. 퇴원하며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말라버린 도너츠를 굳이 갖고 나왔다. 그 도너츠만 보면 왠지 가슴이 따뜻해지고 흐뭇해졌다. 공항으로 나가며 어쩔 수 없어서 그 아까운 도너츠를 버렸다. 너무 서운한 맘으로.
*진부하고 천박해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