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영국 출신의 선교사 시드니 그랜빌 엘튼(Pa Sydney Elton)의 글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The foundation of true ministry is not a microphone, but the altar.” 우리말로 번역하면 이런 말이다.
“참된 사역의 기초는 마이크가 아니라 제단이다.” 이 문장의 핵심은 “사역의 능력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는 삶에서 나온다”라는 것이다.
[2] 여기서 사용된 두 단어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마이크’(Microphone)는 ‘설교, 강의, 영향력, 대중성, 말솜씨, 플랫폼’ 등을 뜻하고, ‘제단’(Altar)은 ‘기도, 헌신, 회개, 예배,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를 뜻한다. 즉 “하나님의 일은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말을 잘하느냐보다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깊고 많이 엎드렸느냐에 의해 결정된다.”란 의미이다.
사도행전에는 사도들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3]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행 6:4).
그들은 먼저 조직을 세우거나 영향력을 넓히는 것보다 기도를 우선순위에 두었다. 또한 예수님도 공생애의 능력 있는 사역 이전에 늘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예수님 능력의 원천은 군중 앞의 사역보다 하나님 앞의 교제에서 흘러나왔다.
[4] 오늘 많은 사람들이 마이크 앞에 서기를 원한다. 그들은 대부분이 말을 잘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제단을 원하는 이는 많지 않다.
설교는 하고 싶지만 기도는 하기 싫고, 사람들 앞에서 말재주로 칭찬받고 찬사받기는 원해도 눈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서 능력 받는 이는 심히 드물다.
젊은 시절, 내가 아는 탁월한 설교자가 있었다.
[5] 그분은 말 잘하는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기도가 필요 없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작은 성경책 한 권만 달랑 들고 가서 마이크 앞에서 설교를 하곤 했다. 워낙 말의 재능이 탁월해서 그의 설교를 좋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마침내 그는 무너졌다. 목회를 더 이상 하지 못한 채 교회에서 좋지 않은 모습으로 나갔다. 이후 그에 대한 얘기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잊힌 존재가 되고 말았다.
[6] 그때 난 무섭게 깨달았다. 마이크는 좋아하면서 기도의 제단 쌓기는 꺼리는 설교자가 되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아침에 제자가 목회하는 교회에 말씀을 전하러 갔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교회로 가면서 옆에서 핸드폰으로 페이스북을 스크롤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참다 못해 한마디 했다.
“설교하러 가는 사람이 기도해야지!”
[7] 정신이 번쩍 들었다. ‘페이스북’(Facebook)은 즐기면서도 ‘하나님의 얼굴’(Face)은 찾지 않았으니 말이다. 회개했다. ‘이러다가 나도 위에 소개한 그 목사님 꼴 난다!’라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그렇다. 페이스북(Facebook)은 열심히 들여다보면서도 하나님의 얼굴(Face)은 등한시하는 설교자가 되어선 안 된다. 카톡에 오는 ‘문자’(Text)는 하나도 거르지 않으면서 ‘성경 본문’(Text)은 깊이 묵상하지 않는 설교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8] 사람들 앞에 서고는 싶지만,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는 싫어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간다. 그러나 성경의 원리는 정반대이다. 제단이 마이크를 만든다. 하나님은 위대한 설교자를 찾으시기 전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을 찾으신다. 기도가 위대한 설교를 낳고, 은밀한 골방이 능력의 말씀 선포를 만들어 냄을 놓치지 말자. 이것은 목회자, 교수, 선교사, 교회 리더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됨을 늘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