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교회를 돌아보며 한국이 선교지가 되어 버린 것을 느낀다. 분주히 살다가 문득 돌아본 조국이 척박한 선교지가 된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한국의 젊은 세대 사회는 웬만한 선교지보다 훨씬 척박하다. 복음화율이 2% 미만이란다. 한국 교회 쇠락의 증거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리가 사는 미국의 한인 사회는 더 심각할 것 같아 마음이 더욱 무겁다.
50여 년 전 영국 이야기다 35년간의 인도 선교를 마치고 조국인 영국으로 돌아온 레슬리 뉴비긴이 큰 충격에 빠진다. 자신을 낳고 자신을 키웠던 영국 교회가 너무 쇠락하였고, 자신의 조국 영국이 냉랭한 선교지가 되어 버린 현실과 마주한 것이다. 선교사로 인도에서 평생을 보낸 그가 만난 조국 영국이 선교지보다 더 척박한 땅이 된 것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레슬리가 본 영국은 이미 근대 과학적 세계관에 잠식돼 버렸고, 교회는 질식 상태였다. 영국 교회는 교회의 정체성과 본질을 상실한 채 무기력한 상태였다. 세계 선교를 감당하는 기독교 국가라고 여겼던 영국이 근대 과학적 세계관에 삼켜져 선교지 인도보다 훨씬 더 척박했다. 영국이 '선교지'가 되어있었다. 이러한 현실을 직면한 레슬리 뉴비긴은 영국을 포함한 서구를 선교 대상지로 보자고 주장했다.
선교지로 여겼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기독교가 눈부시게 성장하는 데 ‘기독교 세계(Christendom)’라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서구 세계가 복음을 배격하고 있었고, 교회는 추락하고 있었다. 이에 레슬리 뉴비긴은 사명감을 잃고 추락하는 영국 교회에 선교적 사명을 회복하라며 “선교적 교회론”을 주창했다. 선교적 교회는 선교적 공동체인 교회의 정체성 회복 운동이다.
현재 한국의 상황은 레슬리 뉴비긴이 경험했던 1970년대 영국보다 훨씬 더 열악하다. 한국 출장 중 우연히 방문한 교회들에서 초소형 교회의 참모습을 보았다. 외형적으로 번듯한 건물을 가진 교회에 들어가면 널따란 예배당에 소수가 앉아 있었다. 교회 건물 유지도 어려워 보였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초소형 교회들이 예외로 많았다.
한국교회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급격히 쇠락하였다. 코로나 시기에 작고 어려운 교회들이 많이 문을 닫았다. 정확한 통계가 있지는 않지만, 상당수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 초소형 교회가 사라지는 것은 교회 생태계 파괴를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 풀뿌리 교회들이 사라짐으로 한국 교회는 국내 전도의 손발을 잃은 것이다. 요컨대 한국 사회는 매우 척박한 선교지가 되었고, 한국 교회는 무기력한 상태가 되었다.
수년 전 강변교회 원로 목사이시자 합동 신학원 전 총장이신 김명혁 목사님께서 떡 보따리를 들고 작은 개척교회를 방문하셨다는 기사를 읽었다. 또 원로의 방문에 큰 위로를 받은 목회자도 만났다. 무너지는 조국 교회를 섬기시는 원로의 수고에 가슴 뭉클했다. 지금은 온 교회가 힘을 모아 선교지를 섬기듯 농어촌 교회를 돌보고 작은 교회를 돌보고 섬겨야 할 때다.
한국 교회가 다시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영국교회는 세계 선교 200년을 섬겼고, 미국교회는 세계 선교를 100년 섬겼다. 한국교회는 겨우 30년 섬겼는데 쇠락한다. 통탄할 일이다. 조국의 대학가와 군부대에 선교적 생기를 불어넣어 젊은이를 선교하자! 작은 교회를 찾아 돕고 섬겨 선교적 생기를 불어넣자. 조국이 선교지가 되었다는 통탄할 소식에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선교적 열정을 불태우기를 기도한다!





































